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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애플이 디자인의 혁명을 일으킨 기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그 자리에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조너던 아이브(Jonathan Ive)가 있습니다.  오늘의 IT 삼국지는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 최고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세기의 디자이너, 조너던 아이브가 주인공입니다.   


애플의 디자인 심장, 아이맥을 탄생시키다.

조너던 아이브는 1967년생으로 아직도 절정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가 만들어갈 디자인의 혁신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도구와 재질, 그리고 제작 프로세스를 과감하게 시도하면서 혁신적인 디자인들을 내놓았고 성공을 시켜 왔습니다.  1998년의 아이맥이라는 컴퓨터 디자인의 역사적인 제품을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아이북과 파워북 G4, 아이팟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히트작들을 성공시키면서 전세계 산업 디자이너들의 모법이 되고 있습니다.

조너던 아이브는 1967년 런던에서 태어나, 뉴캐슬 폴리테크닉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그 뒤에 탠저린(Tangerine)이라는 회사를 공동으로 설립해서 파워 툴부터 텔레비전에 이르는 다양한 디자인 컨설팅을 하기 시작했는데, 1992년에 그의 고객이었던 애플이 그를 스카웃하게 되면서 애플과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가 애플에서 일을 시작할 때에는 그렇게 큰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양한 제품개발팀에 들어가서 일을 했지만, 뉴톤(Newton)과 같이 성공하지 못한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었고, 기본적으로 애플이 당시에 쇠락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재능을 펼쳐볼 기회를 잘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애플을 재건하기 위해 스티브 잡스가 다시 복귀하면서 부터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조너던 아이브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보고, 애플의 부활을 이끌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였던 아이맥 디자인의 전권을 그에게 맡깁니다.  스티브 잡스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서 얼마나 그가 조너던 아이브를 신뢰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이맥이 전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아이맥을 디자인한 조너던 아이브는 단숨에 전세계 디자이너들을 찬사를 한 몸에 받게 됩니다.




조너던 아이브와 그의 디자이너팀은 언제나 위계질서보다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문화 속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탄생시켰습니다.  조너던 아이브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에 흥미가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물건들이나 여러 종류의 제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동작하는지, 그리고 어떤 재질로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아서 항상 그림으로 그리고, 그린 것을 실제로 만드는 작업을 즐겼습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결국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쉽지 않았던 애플이라는 회사에 대한 적응

조너던 아이브가 애플에 입사하게 된데에는, 또 하나의 전설인 하르트무트 에슬링거의 맥(Mac) 디자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거의 컴맹 수준으로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했는데, 대학을 다닐 때 맥을 발견하고 엄청난 감화를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결국 세기의 디자이너들이 맥을 사이에 두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교감을 나눈 것이지요.  그 장면이 눈에 선하지 않습니까?   그 뒤로 조너던 아이브는 애플에 대해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차에 애플에서 입사하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으니 만사를 제쳐놓고 애플로 들어간 것입니다.


조너던 아이브의 아이맥에 이은 히트작, G4 Cube (2000)


그렇지만, 조너던 아이브의 애플 적응은 그다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원래가 자유로운 디자이너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디자인 컨설팅을 하던 그가 갑자기 심오한 제품기획과 풀타임으로 회사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특히, 기술적으로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자유로운 디자인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나 그가 애플에 입사했을 당시, 애플은 사세가 기울고 있었습니다.  초창기 애플의 정체성과 목표를 잃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난파선과도 같은 신세였지요 ...   

그러다가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면서 상황은 극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애플의 정체성과 핵심가치를 먼저 확립하는 작업을 시작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다른 회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접근방법을 통해 디자인과 혁신을 바탕으로 회사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조너던 아이브의 재능도 빛을 발합니다.


자신의 팀과 파트너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디자이너들이 회사를 자주 옮기는 데에 비해, 조너던 아이브는 상당히 오랜 시간 애플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애플하고만 일을 하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애플의 디자인팀 뿐만 아니라 개발, 마케팅, 영업팀까지도 같은 문제를 풀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는 문화에 의해 자신의 디자인이 탄생하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디자인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애플의 일부로서 자신의 디자인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조너던 아이브는 애플의 디자인 팀이 거의 하늘에서 내린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할 정도로 강한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핵심 디자인팀을 작게 유지하면서 첨단 도구와 프로세스에 많은 투자를 함으로써 협업의 강도를 높이는 전략을 쓰고 있는데, 커다란 스튜디오에 강력한 사운드 시스템으로 디자인 영역을 지원한다고 하니 상당히 독특합니다.  거의 개인 공간을 주지않고, 큰 공간을 공동으로 쓰면서 끊임없이 토론과 회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식으로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2002년형 아이맥


조너던 아이브는 애플의 디자인에 있어서 새로운 재질과 프로세스, 그리고 제품 아키텍처의 혁신이 핵심에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폴리머 기술이 발전하자, 이를 이용한 다양한 기능성을 갖춘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아이맥입니다.  그리고, 프로세스에서 트윈슈팅(Twin shooting) 기법이 나와서 서로 다른 플라스틱을 동시에 사출할 수 있게 되자, 이 기술을 도입해서 만든 디자인이 바로 아이팟(iPod)입니다.  최근에는 레이저를 이용한 접합과 혁신적인 접착제 등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언제나 새로운 재료와 재질, 그리고 프로세스 및 기술의 발달을 끊임없이 도입하고 테스트하면서 탄생한 애플의 디자인은 단순한 미술적 디자인이 아닌 기술과 디자인의 총체적으로 만나 만들어진 결정체인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 이후의 후계 구도를 따질 때, 조너던 아이브(Jonathan Ive)가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것은 바로 이런 그의 카리스마와 창의성 때문입니다.  비록 스티브 잡스와 같은 강렬한 카리스마나 커다란 흐름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이지만, 그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애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애플의 정체성을 확립하였고,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은 가지고 있지 못한 최고의 차별적 존재가 바로 조너던 아이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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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국지, 오늘은 1997년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의 위기극복 이야기 입니다.  


파산직전의 애플을 구하라!

앞선 포스트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기 이전의 CEO 였던 길 아멜리오(Gil Amelio)는 세간의 일반적인 평가와는 달리 그의 업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욕을 먹을만큼 먹을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을 만들어 놓았지만 결국 애플의 재도약을 위한 밑바닥을 충실하게 깔아놓은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사임과 스티브 잡스의 복귀에 대해서 스티브 잡스가 정치적인 공작을 통해 길 아멜리오를 쫓아내었다는 설과 이사회가 길 아멜리오보다 스티브 잡스에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으면 애플의 중흥이 불가능했었던 것이라는 해석이 팽팽하게 갈립니다만, 어찌 되었든 초창기 어려울 때 애플의 현금흐름과 NeXT의 인수, 그리고 뒤를 이은 구조조정까지 가장 어렵고 하기 싫은 일들을 혼자서 지휘하고 떠나게 된 길 아멜리오의 역할은 반드시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길 아멜리오를 사퇴시킨 애플의 이사회에게는 스티브 잡스 이외에 CEO 를 맡을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사회에서는 스티브 잡스에게 CEO 를 맡아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를 거절하다가 앞에 '임시'라는 타이틀을 단다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합니다.  그로부터 6개월 정도 CEO 직무대행체제로 운영되던 애플은 공식적으로 이사회에서 1997년 8월 스티브 잡스를 iCEO(interim CEO, 대행 CEO)로 임명합니다.  
그렇지만, 당시의 애플의 상황은 정말 좋지 않았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애플이 앞으로 1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고, 과연 쓰러져가는 공룡에게 처방할 수 있는 약물이 있을 것인가?를 모두들 의심하였습니다.  잡스가 CEO의 업무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수익성과 향후 전망이 없는 사업들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애플은 40가지가 넘는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매킨토시 제품군도 굉장히 많았고, 노트북 라인인 파워북, 그리고 심지어는 잉크젯 프린터와 뉴턴(Newton)과 같은 PDA 제품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들 중에서 시장을 주도하는 제품이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엔지니어들이 너무나 우대를 받고 지나치게 자신이 하고싶은 프로젝트를 무작정 진행하는 관행이 보편화되면서 실제로 실현될 수 없는 이상적인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고, 이는 회사의 문화의 왜곡과 함께 실질적인 비용부담으로 다가오면서 애플을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뜨리고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자마자 한 일은 모든 제품과 인력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반드시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상명하달 방식의 구조조정 보다는 모든 제품과 프로젝트에 대해 자신과의 면담과 토의를 거쳐 자신들이 직접 필요없는 프로젝트는 폐기하는 유연한 정리방법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이사진 중에서 대부분을 자신의 사람들로 교체를 하면서 자신의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세력들을 없애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이미 NeXT 에서 자신의 수족들처럼 일하던 사람들을 애플의 요직에 배치하는 작업은 길 아멜리오가 CEO 로 있을 당시에 그에게 조언을 하면서 이미 마친 상태였는데, 영업 총책임은 데이비드 마노비치(David Manovich), 하드웨어는 존 루빈스타인(Jon Rubinstein), 그리고 소프트웨어 부분은 에이비 테바니언(Avie Tevanian)이 담당하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빅딜을 성사시키다.

다음으로 당장 눈앞에 다가온 회사의 재정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단기적으로 애플이 살아남기 위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자존심을 굽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를 찾아갑니다.  불과 수개월 전 길 아멜리오가 같은 이유로 자신을 찾아왔을때 그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했던 빌 게이츠지만 이번에는 전향적인 태도로 스티브 잡스를 만났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오래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윈도우에 대한 특허권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윈도우에 대한 특허권 침해소송을 취하할 것이니, 마이크로소프트가 맥 운영체제에서 동작하는 오피스 프로그램을 개발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여기에 과감하게도 애플에 마이크로소프트가 투자해 달라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비록 금액이 크지는 않더라도 좋으니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에 투자를 한다면 애플에 대해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상당수 긍정적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에 착안을 한 제안이었습니다.  이때 빌 게이츠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맥 OS 의 기본 브라우저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채택해달라는 요구였고, 스티브 잡스는 이를 받아들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는 당시 가장 중요했던 브라우저 전쟁에서 넷스케이프에 승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였고, 이 조건이 받아들여지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주저없이 스티브 잡스의 조건을 받아들입니다.  빌 게이츠는 과거와는 달리 이렇게 스티브 잡스가 겸손한 제안을 해온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맥에서 동작하는 오피스를 개발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동시에 애플에 $1.5 억 달러를 투자합니다.  

애플이라는 회사의 규모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자금여력을 감안할 때 이 정도 금액은 정말 형식적인 것이 불과했지만, 주식시장은 뜨겁게 반응합니다.  애플의 주식은 30% 이상 급등을 하였고, 애플은 파산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이때 마이크로소프트가 거액을 투자해서 애플의 주식을 많이 매입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지금 그 때를 뒤돌아보면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하면 좋았을 걸 ... 하는 후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매킨토시 클론의 중단과 새로운 공급시스템의 정비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해서 가장 먼저 손을 본 것 중에 하나가 전전임 CEO인 마이클 스핀들러가 PowerPC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허용한 매킨토시 시장의 클론허용 정책을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매출은 줄어들었지만, 전선을 윈도우 계열의 컴퓨터들로 단일화하면서 시장의 장악력을 강화하는데 성공합니다.  또한, 당시 애플에게 CPU를 공급하던 IBM과 모토롤라를 경쟁시키면서 보다 좋은 조건에 부품을 조달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제품의 전반적인 라인업도 정비하면서 제품의 종류가 줄어들어, 제품공급 라인이 단순해진 것도 커다란 변화가 되었습니다.  40개가 넘던 제품군은 4~5개 정도로 줄어들었고, 이런 변신은 단기적인 매출감소를 불러왔지만 수익성을 현저히 개선하는데에는 성공합니다.  그 중에서도 존 스컬리가 시작하여 애플의 신성장동력으로 장기간 공을 들여온 PDA 프로젝트인 뉴톤(Newton)을 정리한 것을 두고 애플의 팬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반발을 하였지만 이를 강행합니다.  그렇지만, 이 팀에서 일하던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중용하였습니다.  뛰어난 엔지니어들이라고 판단을 하기도 하였고, 이후 자신이 구상한 최고의 제품에 이들을 투입하려고 했기 때문인데, 이들이 향후 애플의 중흥을 이끄는 제품의 하나인 아이북(iBook)을 탄생시킵니다.  그리고, 그 팀에서 정말 애플을 구원하게 되는 소중한 보석과도 같은 인재를 발견하고 중용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애플의 디자인 심장으로 불리는 조너던 아이브(Jonathan Ive) 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더욱 자세한 이야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뒤를 이어, 마이클 스핀들러가 만들어 놓은 '저렴한 애플 매킨토시'라는 제품군들을 모두 정리하고, 애플의 제품은 가격이 비교적 높아도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가진다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애플의 고전적인 컨셉을 부활시켰습니다.  이러한 스티브 잡스의 정책들은 즉시 효과를 나타내면서 1년 만에 재고가 1/4로 감소하는 성과를 가져오며, 1997년 11월 출시한 전문가용 그래픽 컴퓨터를 모토로 등장한 파워맥 G3는 1년만에 100만 대가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하며 애플이 파산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는 일등공신이 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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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대학의 유명한 개방형 플랫폼(open platform) 지지자 중의 한 명인 조너선 지트렌(Jonathan Zittrain)은 인터넷과 웹의 창조적인 힘은 결국 개방형 플랫폼에서 나오며, 누구에게 허락을 받거나 통제를 받지 않고 어떠한 형태의 아이디어나 생각 또는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으며, 국경이 없는 인터넷의 개방성의 힘에 대한 강의로 유명합니다.  그의 TED 강연 내용은 이런 측면에서 꼭 한번 들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은 명강입니다.  한국어 번역도 존재하기 때문에 혹시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아래 링크를 걸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링크:


이와 같은 개방 지상주의가 최근 인터넷의 주류적인 사상이라는 것은 모두들 인정할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전체적인 변화에 제동을 걸고 있는 회사가 일으키는 실험이 모두에게 다시 한번 새로운 고민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회사가 어디냐구요?  바로 애플 입니다.  이 글은 지난 번 "애플의 앱스토어 생태계"와 관련한 글과 연관이 되어 있으니, 앞선 포스트도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연관글:

통제가 개방을 이긴다?

애플의 앱 스토어는 역사상 가장 통제가 강력한 소프트웨어 플랫폼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모든 애플리케이션들이 판매에 앞서 애플이라는 회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구매행위 역시도 애플이 제공하는 방법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이제는 개발도구 제한까지 있으니, 개발하는 방법까지도 애플이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통제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플랫폼은 또 한가지 역사상 최고의 성공적인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미 18만 개가 넘는 앱들이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쏟아져 나왔고, 아이폰은 전화기라는 틀을 넘어서 전자책 리더이자 여러가지 기계들에 대한 컨트롤러, 전자음악 악기, 게임기 등의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글자 그대로 대박신화를 계속 써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과거라면 마땅히 비난받아야 할 통제적인 정책에 대해서도 수많은 개인 및 소규모 기업들의 개발자들은 별다른 저항없이 잘 적응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막연히 개방형 플랫폼(open platform)이 우수하고, 통제하는 방식은 결국 창조성과 혁신에 방해가 된다는 기존의 믿음과는 반대되는 결과입니다.  어쩌면 적당한 통제와 갇힌 구조가 되려 창조성과 혁신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에 충분합니다.


단순한 의사결정과 인간의 심리구조

이러한 앱 스토어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올까요?  현재까지의 성공을 바탕으로 "통제가 개방을 이긴다"고 말하는 것은 더욱 잘못된 판단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우리나라 대기업들처럼 통제에 익숙한 곳들에게 통제가 좋다는 잘못된 오해를 하게 만들어서는 더욱 문제일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앱 스토어의 경쟁력은 인간의 심리구조상 복잡함을 싫어하고, 단순한 결정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에 핵심이 있다고 봅니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단일 지불구조를 채택한 애플 아이튠즈를 통해서 한번의 터치와 패스워드 입력만으로 앱을 구매할 수 있으며, 특히나 가격이 비싸지 않은 $3 달러 이내의 앱들 같은 경우에 사람들이 쉽게 구매를 결정하여 크게 부담되지 않게 이용하다가 버리기도 하고, 다시 생각나면 추가적인 비용없이 재설치 할 수 있는 과정이 크게 어필을 합니다.  또한, 앱 스토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랭킹 및 선택의 고민을 줄여주는 요소를 도입했는데, 여기에 베스트셀러만 많이 팔리는 히트 구조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짧은 주기의 실시간 랭킹 변화와 다양한 카테고리 도입을 통해 판매가 되는 앱의 수를 다변화시킬 수 있도록 함으로써 중소규모 개발회사 및 개발자들에게도 앱 스토어 활성화의 과실을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눈에 띕니다. 다시 말해, 원 터치로 싼 앱을 실시간으로 간단하게 다운받아서 쓸 수 있도록 하고, 중소 개발사들이 쉽게 이익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 세심한 배려가 잘 나가는 원동력이 아닐까 합니다.


소비자 중심의 사고가 중요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싼 가격의 신기한 앱이 눈에 보이면, 쉽게 사서 테스트할 수 있는 믿음이 앱 스토어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애플의 검열를 통해 아마도 바이러스나 사용자에게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이상한 앱들이 올라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으며, 최소한 시스템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하드웨어 플랫폼이 아니라 하나의 하드웨어 플랫폼과 개발방법을 적용하면 된다는 것도 비용 측면에서 큰 이익이 됩니다.  그렇지만, 앱의 승인 과정이나 매출 등에 대한 분배과정, 그리고 개방형 혁신을 쉽게 적용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통제 자체를 좋아할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개방에 의한 혁신 가능성이 차단된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애플이라는 회사의 이익에 반하거나 상당히 정치적인 이유가 통제에 악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깔아놓은 안정된 시장과 구조에 있어 개발자나 소비자 모두  통제된 플랫폼이라도 애플의 품을 벗어나서 그를 뛰어넘는 편익이 없다고 판단되는 동안에는 애플의 정책은 별로 바뀌지도 않을 것이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개방형 플랫폼은 여전히 강력하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앞으로도 앱 스토어와 애플의 지배력이 지속적으로 강화될 것으로 읽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필자는 개방형 플랫폼의 철학은 여전히 강력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무리 애플이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전세계를 한 회사가 장악할 수 있을만큼 세상이 우습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을 통제된 환경에서 만들고, 유통시키는 한 애플의 성장성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안드로이드가 설치된 스마트 폰과 태블릿들이 점점 시장에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말이 된다면 아마도 상당히 많은 기기들이 설치가 될 것이며, 현재 애플의 앱 스토어에 참여하고 있는 개발사들이나 개발자들이 지나치게 많아진다면 그만큼 나눠먹을 파이는 적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2차 마켓을 노리는 개발자들이 늘어날 수 밖에 없고 현재도 그 수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개방형 플랫폼 특유의 개방형 혁신을 일으키는 기업이나 소프트웨어 등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고, 하드웨어 제조사들 중에서도 정말 뛰어난 회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제 안드로이드가 제대로 시장에서 승부를 시작한지 단지 1년입니다.  현재까지의 결과만으로 "애플에는 안되네, 애플이 최고네" 하면서 속단하는 것은 초창기 국내의 스마트폰 시장을 놓고 전문가들이 "아이폰이 국내에서는 잘 안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던 것과 별 다를바 없습니다.  언제나 미래를 볼 때에는 흐름으로 보아야지, 현 상황의 우월한 지위에 있는 것, 지금 좋아보이는 것에 의한 '우상의 착시'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면 잘못된 전망을 하기 쉽습니다.

물론, 이런 변화를 가속화하기 위해서는 애플의 앱스토어가 보여준 모범사례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하고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개방의 철학 만으로 승부하기에는 비즈니스와 소비자들은 훨씬 까다로운 상대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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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5/04 19:31



영원한 괴짜 스티브 워즈니액

애플 II의 아버지인 스티브 워즈니액은 사실 상 애플 II의 모든 것을 창조한 슈퍼 엔지니어입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디자인과 게임 등 모든 면을 거의 혼자서 다 해치우던 그의 능력은 아직까지도 어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경지에 있었습니다.  그만큼 전설적인 인물이었지만, 다른 모든 사회생활과 관련한 부분은 글자그대로 '괴짜' 인생입니다.  

최근에도 매일같이 세그웨이(Segway)라는 외발 전동차를 타고서 실리콘 밸리 주변에서 출몰하며, 얼마전 아이패드가 출시되는 날에도 이것을 타고 줄을 서서 아이패드를 사가지고 떠나는 그의 모습이 언론에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어찌보면 그처럼 즐겁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애플 II 의 대성공과 함께 1980년 애플의 기업공개로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은 그동안 같이 일을 해온 동료들에게 매우 다른 행동을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스톡옵션을 애플의 다른 직원들과 나누기를 거부하였지만, 워즈니액은 "The Woz Plan" 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스톡옵션의 상당한 양을 거의 공짜에 가까운 수준으로 직원들에게 나누어줍니다.  그만큼 그는 어찌보면 돈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습니다.

1981년 2월, 스티브 워즈니액은 자신의 비행기를 몰고 산타크루즈 스카이파크에서 이륙하는 순간 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사실 스티브 워즈니액은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는 법적인 면허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비행기 조종에 익숙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이 사고는 자신이 자초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사고로 스티브 워즈니액은 병원신세를 지게 되는데, 특히 특이한 형태의 기억상실증을 한동안 앓게 됩니다.  특히 비행을 했던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고, 사고상황도 기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심지어는 자신이 병원에서 머물던 시기의 일도 한동안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단기기억의 문제가 심각해서, 어딘가로 이동한 뒤에 자기가 왜 그곳에 왔는지를 자꾸 잊어버리고, 날짜 감각도 없어졌습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스티브 워즈니액을 극진히 도와주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캔디스 클락(Candice Clark)이라고 하며 애플 창업시절 회계를 맡았던 여직원입니다.  그녀의 정성으로 애플 II 컴퓨터 게임과 과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티브 워즈니액은 결국 기억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두 커플은 그해 연말 결혼에 골인합니다.  그렇지만, 스티브 워즈니액은 캔디스 클락과 결혼하기 전에 이미 한 차례 결혼한 전력이 있으며, 그 이후에도 여러차례 결혼을 합니다.  워낙 성격이 한 여자와 오랫동안 같이 살기는 어려웠던 듯 합니다.


스티브 워즈니액, 애플을 떠나다.

비행기 사고 이후, 스티브 워즈니액은 바로 애플로 복귀하지 않고 UC 버클리로 돌아가서 못 끝낸 학업을 계속합니다.  이 때에도 그의 장난기는 여전해서, 학교에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대신 "Rocky Raccoon Clark" 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씁니다.  여기에서 Rocky 는 그가 기르던 개의 이름이고, Clark 은 부인의 과거 성입니다.  그는 결국 1986년 UC 버클리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합니다.  학교를 2년 정도 다니다가, 다시 애플에 1983년 복귀하면서 학교생활과 병행을 하기로 결심하는데, 애플로 돌아온 뒤에는 더 이상 자신이 엔지니어로서 애플에 별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스티브 잡스가 진행하면서 기존의 애플 II 팀과 라인업에 대한 지나친 공격과 애플 II와 함께 했던 많은 동료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애플에 대한 마음을 슬슬 접기 시작하였습니다.

스티브 워즈니액은 1987년 2월 6일, 12년 동안의 애플에서의 상근 지위를 벗어 던집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는 애플의 파트타임 고용자로 남아있으며, 가장 중요한 주주이기도 합니다.  또한, 스티브 잡스와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자주 만나고 있으며, 후방에서 애플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는 사람입니다.


괴짜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다.

애플을 떠난 스티브 워즈니액은 CL 9 이라는 벤처회사를 설립합니다.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유니버설 리모트 컨트롤러를 1987년에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그와 함께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2001년에는 Wheels of Zeus(WoZ) 라는 회사를 설립해서 무선 GPS 기술을 개발하였으며, 2002년에는 Ripcord Networks 라는 통신관련 벤처회사의 이사회에 참여하는등 독특한 벤처회사들의 경영에 참여를 많이 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전재산을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교육과 관련한 사업에 기부합니다.  이를 통해, 이들 학교에 기술과 관련한 교육과정을 만들었고, 자신이 직접 가르치는 일에도 뛰어들었습니다.  또한, Un.U.Son. (Unite Us In Song) 이라는 기구를 발족하여 2개의 축제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이름을 딴 Stephen G. Wozniak Achievement Awards (흔히 Wozzie Award 라고 합니다) 를 만들어서, 컴퓨터를 이용해서 비즈니스나 예술, 음악 등에 혁신을 일으킨 샌프란시스코 연안 지역 6개 고등학교와 대학교 학생들에게 상을 주고 있습니다.  산호세에는 Children's Discovery Museum 이 있는데, 그는 이 박물관의 주된 기부자이기도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린아이와도 같은 그의 기행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운 기억을 안겨주고는 했습니다.  테트리스와 같은 종류의 게임을 하면 언제나 세계 랭킹 1위에 올랐으며, 하도 그런 경우가 많아서 가명을 많이 쓰기로도 유명했고, 얼마 전에는 "Dancing with Stars" 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멋진 춤실력을 뽐내기도 하였던 스티브 워즈니액, 그는 영원히 역대 최고의 엔지니어로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입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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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Wikipedia (애플의 LISA)


거함 IBM이 PC 시장에 참전을 시작한 1981년, 초기에는 애플의 우세가 지속되었습니다.  애플 II 는 1981년에도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지만, 개방형 아키텍처를 적용한 IBM PC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마케팅을 펼치고 동시에 저가의 호환기종들이 선을 보이면서 애플의 위세는 꺽이기 시작합니다.


IBM을 두려워한 무리한 시도, 그리고 뼈아픈 실패작 애플 III

IBM이 PC를 내놓을 것이라는 움직임을 간파한 애플은 애플 II 의 성공을 이어서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려는 열망이 매우 강했습니다.  물론 애플 II 가 II+, IIe, IIc 와 같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기도 하였지만, 본질적인 업그레이드는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신모델의 출시는 불가피 하였습니다.

애플 내부에서는 애플 II 의 후속작이 2가지 방안으로 진행 되었습니다.  하나는 애플 II 에 대한 직접적인 후속모델이라는 의미의 애플 III 였고, 나머지 하나는 제록스 PARC 연구소의 GUI(Graphic User Interface) 개념을 도입한 새로운 컴퓨터의 혁신을 추구한 LISA 프로젝트 입니다.  둘다 1978년에 프로젝트가 태동하였습니다.  애플 III 프로젝트는 애플의 Dr. Wendell Sander 가 주도를 하였는데, 내부적으로는 Sander 의 딸 이름을 따서 "Sara" 라는 코드명으로 불리웠다고 합니다.  애플 III 는 1980년 5월 19일에 출시가 되는데, 이는 다분히 IBM 이 당시 개발하고 있었던 PC를 의식한 면이 강합니다.

그러나, 애플 III 는 서둘러 내놓은 탓에 하드웨어 설계에 결정적인 결함이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발열과 관련한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또한, 가격 역시 $4,340 ~ $7,800 달러로 결정되었는데 이는 애플 II는 물론 당시에 판매되는 CP/M 기반의 컴퓨터 들에 비해 훨씬 비싼 가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IBM 처럼 16비트 CPU를 채택한 것도 아니었으며, 애플 II 와의 호환성을 강조하였지만 상당 수의 프로그램들은 호환조차 되지 않는 등 수많은 문제점을 부각시키면서 초기에 판매된 14,000 대의 컴퓨터를 모두 리콜하고 새로 교체를 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소비자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결국 총 65,000 대 정도만을 판매하는데 그치면서 1984년 4월 24일 단종되는 운명에 처합니다.  

애플 III 의 실패에 대해서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액은 애플 III가 엔지니어가 아닌 마케팅 부서에서 부실하게 기획된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당분간 애플은 애플 II 라인업을 버릴 수 없었고, 애플 III 에 적용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들은 그 뒤에 출시된 애플 II 컴퓨터의 상위기종들에 조금씩 적용이 되었습니다.


가정용 컴퓨터의 혁신을 일으켰으나 실패한 Lisa

Lisa 프로젝트 역시 1978년에 시작되었습니다.  Lisa 는 앞선 포스팅에서 언급한 제록스 PARC 연구소에 들렀던 스티브 잡스가 그들의 Alto 컴퓨터에 매료되어 시작된 프로젝트로 최초로 GUI 를 상용화하여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표로 진행되었습니다.  1978년 스티브 잡스는 첫번째 딸을 얻게 되는데, 딸의 이름이 Lisa 였고 이를 컴퓨터의 이름으로 정하게 된 것입니다.  애플에서는 공식적으로 Lisa 가 Local Integrated Software Architecture 의 약자라고 발표했지만, 이는 스티브 잡스가 작명을 한 이후에 소위 역공학을 통해 만들어진 컴퓨터 이름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스티브 잡스가 프로젝트 매니저로 직접 참가를 했지만, 지나치게 화를 많이 내고 감정적이어서 팀원들에게서 쫓겨나는 신세가 됩니다.  스티브 잡스는 대신 1979년 LISA 보다 저렴한 GUI 를 구현한 컴퓨터 프로젝트인 매킨토시(Macintosh)를 맡게 됩니다.  매킨토시 개발과 관련해서는 후속편에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Lisa 는 발매당시 당대 최고의 컴퓨터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보호메모리(protected memory), 협업 멀티태스킹(cooperative multitasking), 우수한 하드디스크 기반의 운영체제, 내장형 스크린 세이버, 2MB까지 확장가능한 RAM, 확장 슬롯, 숫자 키패드, 가상 파일명,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등과 같이 그 이후에도 한동안 나타나지 못했던 무수한 기술들의 집합체였습니다.  심지어 혹자는 많은 기능들이 Mac OS X 가 되어서야 구현이 된 것들이 이미 Lisa 에 구현되어 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Lisa 는 이런 화려한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5 MHz 모토롤라 68000 마이크로프로세서를 CPU로 이용했기에 전반적으로 느린 느낌을 주었고,  무엇보다 1983년 1월 19일 발매하면서 무려 $9,995 달러라는 엄청난 가격으로 발매한 것이 커다란 무리수가 되었습니다.  기술자들과 평론가들이 열광했지만, 이 정도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소비자는 거의 없었고, 또한 뒤이어 나온 매킨토시와의 중복문제까지 겹치면서 애플 III 에 이은 또 하나의 실패로 기록되고 맙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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