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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는 여러가지 면에서 공통점이 참 많습니다.  두 회사를 지휘했던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는 55년생 동갑나기였으며, 각각 2명의 공동창업자들과 함께 회사를 커다랗게 키워나갑니다.  비록 앞의 2명의 창업자들만큼 전세계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들 못지않게 두 회사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 2명의 다른 공동창업자인 폴 알렌과 스티브 워즈니액이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떠난 이야기가 오늘과 다음 편의 주제입니다.


빌 게이츠의 영원한 형님, 폴 알렌

폴 알렌은 1953년 생으로 빌 게이츠의 레이크사이드 스쿨 선배로서 학교 컴퓨터 클럽을 같이 하면서 여러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였고, 빌 게이츠가 하버드 대학에 진학했을 때 PC 의 등장을 보고 빌 게이츠를 꼬셔서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는 현재 세계에서 37번째로 돈이 많은 부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기도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폴 알렌은 워싱턴 주립대학으로 진학을 했다가, 보스톤의 허니웰(Honeywell)에서 일을 하기 위해 대학을 그만 둡니다.  그렇지만, 그가 허니웰로 간 진짜 이유는 하버드에 빌 게이츠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폴 알렌은 빌 게이츠가 하버드 대학을 그만두게 만들고 같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였고,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처음부터 키워갔습니다.  특히 그는 1981년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의 QDOS 의 권리를 사들여서 MS-DOS를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고, 이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회사가 될 수 있는 초석을 다졌습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로 나아가던 1983년 그는 혈액암의 일종인 호지킨병(Hodgkin's Disease, 임파종의 일종)으로 진단을 받고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납니다.  그는 수 차례에 걸친 방사선 치료와 골수이식을 통해 완쾌가 되지만, 그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로 복귀하지는 않습니다.  가끔씩 이사회에 참석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정도로 마이크로소프트 경영에 관여를 했지만, 2000년 11월에는 이사회에서도 공식 사임을 하였습니다.  2009년 11월에는 또 다른 비호지킨 임파종 진단을 받았고, 현재도 암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폴 알렌은 호지킨 병으로 치료를 받은 후 인생관에 많은 변화를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 이후의 인생을 다양한 자선활동을 펼치면서 보내게 되는데, 특히 의료와 인간,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기관들에게 기부도 하고 자신의 역량도 활용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1986년 자신의 가족들의 이름을 딴 폴 알렌 가족재단(Paul G. Allen Family Foundation)을 설립하고, 이 재단을 통해 매년 약 3천만달러 정도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는데, 특히 자신이 살고 있는 시애틀과 워싱턴 주에 60%를 그리고 12% 정도를 인접한 오레곤 주의 대표적인 도시인 포틀랜드에 사용하고, 나머지도 역시 미국 북서부 태평양 연안 도시들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등 지방의 발전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폴 알렌이 또 한가지 유명한 것이 그의 벤처자선(venture philanthropy)이라고 이름 붙여진 프로젝트 들입니다.  여러 가지 활동이 있지만, 음악경험 프로젝트(Experience Music Project), SF 박물관과 명예의 전당(Science Fiction Museum and Hall of Fame), 비행유물 컬렉션(Flying Heritage Collection) 그리고 UC 버클리/SETI 와 함께 한 알렌망원경배열(Allen Telescope Array, ATA) 프로젝트 등이 있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대학, 특히 의과대학에서 진행하는 의학연구에 많은 돈을 기부하였습니다.

이렇게 오랜  NGO 활동과 기부로 폴 알렌은 국내에서는 빌 게이츠에 비해 훨씬 덜 알려져 있고,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많지만, 미국 사회에서는 대단히 존경받는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서북부 프로스포츠의 대부

폴 알렌은 또한 많은 프로스포츠 팀의 구단주이기도 합니다.  그가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개인적인 관심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오레곤과 워싱턴 주의 프로스포츠 팀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못해서 시작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고향과 인근 지역에 공헌하기 위한 방법을 언제나 고민해온 사람입니다.  1988년 그는 오레곤 주를 대표하는 NBA 농구팀인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를 $7천만 달러에 사들입니다.   그 이후에도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는 포틀랜드를 위해 아낌없이 돈을 투자하고는 했는데, 포틀랜드 시장은 언제나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그에 화답해서 그는 2007년 4월 2일에 있었던 포틀랜드 로즈가든(Rose Garden)의 매입완료를 선언할 때에는 자신의 노력이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가 앞으로 오랜 시간 지역주민들의 걱정없이 스포츠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건강하게 만드는 초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1997년에는 NFL 팀인 시애틀 시호크스(Seattle Seahawks)를 사들입니다.  이는 전임 구단주였던 켄 베링(Ken Behring)이 연고를 시애틀에서 LA를 목표로 한 남부 캘리포니아로 옮기려고 하는 시도를 막기 위했던 것으로 역시 시애틀 지역의 많은 주민들을 위한 투자였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시호크스의 새로운 경기장인 퀘스트 필드(Qwest Field)를 신축하는데에도 커다란 기여를 합니다.  그 이후에는 시애틀 지역의 MLS 축구팀인 시애틀 사운더스 FC(Seattle Sounders FC)의 구단주가 되어 명실상부한 미국 서북부 프로스포츠의 대부로 등극하였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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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애플그라를 복용중인 대한민국

    Tracked from 제너시스템즈 기업블로그 제너두입니다.  삭제

    애플이라는 특효약 아이패드가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꿀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기업에서 업무 효율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언론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IT 업계에 계신 분들은 잘 알고 있으시겠지만 정작 그 기술을 받아들이는 주체인 우리들은 FMC가 무엇인지, 모바일 오피스를 사용하면 무엇이 달라질지 걱정부터 앞서기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 소비자들은 애플그라(?)라는 약에 조금씩 길들여지며 눈높이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러..

    2010/04/12 10:41

from Wikipedia


IT 삼국지, 지난 포스트에 이어 오늘도 변방국가 최고의 장수 한명을 소개합니다.  바로 8비트 최강의 운영체제인 CP/M을 만들었던 게리 킬달(Gary Kildall)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면서 디지털 리서치(Digital Research, Inc.)라는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오늘날의 마이크로소프트를 있게 만든 MS-DOS 역시 CP/M의 아류작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만큼 시대를 앞서간 최고의 컴퓨터 과학자였습니다. 한순간의 선택으로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게리 킬달과 바늘 틈과도 같은 기회를 포착하고 여우처럼 낙아챈 마이크로소프트의 운명은 IBM의 기분에 따라서 결정되고 맙니다.  게리 킬달은 죽을 때까지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를 용서하지 못했다고 하는 오늘의 삼국지 이야기 시작합니다.


시애틀의 컴퓨터 천재, 세계 최초의 PC용 운영체제를 개발하다.

게리 킬달은 여러모로 빌 게이츠와 비교가 됩니다.  그 역시 시애틀 토박이로 대학 역시 시애틀의 명문인 워싱턴주립대학(University of Washington)을 나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실리콘 밸리 인근 해안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로 유명한 몬터레이의 미국 해군 대학원에서 미해군을 가르치면서 군복무를 대신했습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인텔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4004 마이크로프로세서입니다.  그는 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구입하여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이것저것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의 프로그래밍 실력을 눈여겨 본 인텔은 일과가 마친 이후에 그가 컨설턴트로 일을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게리 킬달은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UW로 돌아와 1972년 컴퓨터 과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합니다.  그리고, 컴파일러의 최적화와 관련된 데이터 플로우 분석방법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는데, 그의 방식은 아직도 현대의 컴파일러에서 이용될 정도로 영향력있는 논문입니다.  인텔과 계속 일을 하면서, 그는 플로피 디스크가 세상을 바꿀 것으로 예측하고 8008과 8080 프로세서를 이용하여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동작할 수 있는 최초의 고수준 프로그래밍 언어를 1973년에 개발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PL/M 입니다.  같은 해 인텔의 8080 프로세서를 이용해서 플로피 드라이브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범용 디스크 운영체제를 개발합니다.  이것이 바로 8비트 운영체제를 천하통일한 CP/M 입니다.  애플 II가 1977년 발표되었고, 스티브 워즈니액이 개발한 애플 II의 DOS(Disk-Operating System)인 Disk-II 와 애플 도스가 그보다 약간 뒤에 개발되었음에도 CP/M의 정교함과 편리함을 따를 수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가 얼마나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천재적인 사람이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진정한 보석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인텔, CP/M의 대성공

게리 킬달은 CP/M을 개발한 뒤, 자신을 컨설턴트로 써준 인텔에 제일 먼저 데모도 하고 중요성도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인텔에서는 CP/M이라는 운영체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신 그가 개발한 PL/M 프로그래밍 언어와 컴파일러의 판매권만을 사서 시장에 내놓는 우를 범합니다.

인텔이 CP/M을 냉대하자, 게리 킬달은 그의 와이프인 도로시와 함께 Intergalactic Digital Research 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이 회사는 이후 Digital Research, Inc.로 이름을 바꾸고 CP/M 운영체제를 컴퓨터나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취미잡지에 광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제일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은 세계 최초의 PC로 간주되기도 하는 Altair 8800을 복제한 IMSAI 8080 이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수 많은 회사들이 서로 다른 컴퓨터에 CP/M을 포팅해주기를 원했는데, 이때 킨달이 정립한 개념이 바로 BIOS(Basic Input/Output System) 입니다.  컴퓨터 하드웨어에 내장된 BIOS만 수정하면 CP/M은 어느 컴퓨터에서나 동작을 하였고, 이러한 강점을 등에 업고 CP/M은 8비트 운영체제로서 거의 독점적 위치를 얻게 됩니다.

CP/M은 놀랄만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디지털 리서치는 무려 3,000개가 넘는 컴퓨터 모델에서 CP/M을 동작시켰고, 매년 수백 만불이 넘는 매출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때 디지털 리서치가 유일하게 정복을 하지 못한 컴퓨터 모델이 있었으니, 그것아 바로 애플입니다.  애플은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애플만의 독자적인 디스크 운영체제를 고수했고, CP/M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Z-80이나 8080과 같은 CPU가 장착된 카드를 사서 확장슬롯에 꽂아야 했습니다.  


IBM PC의 등장과 CP/M, 그리고 MS-DOS 

1980년 컴퓨터 업계의 거인 IBM이 PC 사업을 시작하는 결단을 내립니다.  플로피 디스크가 기본으로 내장된 IBM-PC에 있어 가장 중요했던 것 중의 하나가 운영체제를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운영체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던 빌 게이츠는 IBM 측에 디지털 리서치의 CP/M을 라이센싱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합니다.  이에 따라 IBM은 16비트용 CP/M 운영체제인 CP/M-86을 자사의 기본 운영체제로 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디지털 리서치를 방문합니다.

당시 게리 킬달은 자신의 자가용 비행기를 몰고 소프트웨어를 다른 파트너 회사에게 전달하기 위해 떠나면서, 계약은 그의 아내 도로시에게 일임을 하고 갔습니다.  이는 게리 킬달이 흔히 하던 방식인데, IBM의 실무진들은 디지털 리서치와의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언제나와 같이 비밀준수계약을 하기를 원했는데 도로시는 게리 킬달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비밀준수계약을 거절합니다.

이에 단단히 화가난 IBM은 디지털 리서치와의 계약을 포기하고,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합니다.  시애틀로 돌아온 IBM은 빌 게이츠를 만나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체제를 개발하거나 대안 운영체제를 찾아줄 것을 부탁합니다.  당시 빌 게이츠는 이미 IBM에 BASIC 언어의 인터프리터를 포함한 몇 종류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납품하기로 합의를 한 상태였고, 시애틀에 위치한 한 작은 회사가 CP/M을 복제한 86-DOS라는 운영체제를 개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폴 알렌은 즉시 이 운영체제의 사용권을 단돈 5만 달러에 구매해서 IBM과의 협상에 임합니다.  86-DOS는 IBM의 하드웨어에 성공적으로 포팅이 되고, IBM은 이를 PC-DOS로 명명합니다.

PC-DOS를 본 게리 킬달은 이것이 CP/M을 복제한 것임을 바로 알게 되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컴퓨터 소프트웨어 저작권에 대한 체계가 완비되지 않은 탓에 게리 킬달은 IBM이 협상안으로 제시한 CP/M-86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중재안에 합의를 합니다.  이에 따라 처음 IBM-PC를 출시하면서 IBM은 운영체제를 별도옵션으로 출시합니다.  PC-DOS를 선택하면 $40 달러를 더 내면 되었고, CP/M-86은 $240 달러를더 내야 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PC-DOS라는 이름 대신 MS-DOS라는 이름으로 IBM의 호환기종에게 운영체제를 판매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CP/M-86 역시 다른 호환기종 시장에서 경쟁을 했는데, 오리지널 IBM-PC 모델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MS-DOS의 시장지배력을 당할 수 없었습니다.  MS-DOS의 성능과 기술은 CP/M보다 떨어졌고, 버그도 많았지만 워낙 싼 가격을 내세운 MS-DOS가 승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디지털 리서치의 경영에서 손을 떼다.

IBM과의 협상을 통해 게리와 도로시는 자신들의 불찰과 잘못된 경영적 판단을 반성하고, 회사의 직접 경영에서 영향력을 점차 줄여나갑니다.  그러면서, 다양하고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CP/M을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도록 진화시켰고, BASIC에 대항하기 위해 Logo 프로그래밍 언어를 구현했습니다.  또한, 애플의 Lisa의 데모를 보고난 뒤에는 GEM(Graphical Environment Manager) 데스크탑이라는 GUI도 개발하였습니다.

결국 게리 킬달은 디지털 리서치를 당시 최고의 네트워크 회사였던 노벨(Novell)에 1991년 매각하고, 자신은 PC의 트렌드를 전하는 공중파 방송활동과 광학 디스크 기술을 컴퓨터에 적용하는 KnowledgeSet라는 회사, 최초의 컴퓨터 백과사전이었던 Grolier's American Academic Encyclopedia, 가정용 PBX 시스템을 이용한 유선전화와 휴대폰을 통합하는 시스템 등을 개발하는 벤처사업을 하였습니다.


게리 킬달은 언제나 창의적이고 호탕했으며, 모험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비행기 조종, 스포츠 레이싱과 보트를 사랑했고 바다를 사랑하였습니다.  IBM과의 사건 이후에 그는 언제나 빌 게이츠와 비교했으며, 빌 게이츠를 싫어 했다고 합니다.  특히 1992년 자신의 모교인 UW의 컴퓨터 과학 프로그램의 기념일에 초청을 받았는데, 하버드 대학 중퇴 출신인 빌 게이츠가 키노트 강연을 하는 것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디지털 리서치를 노벨에 매각을 하고, 그는 텍사스 오스틴 인근의 West Lake Hills라는 곳에 이주를 해서 그가 사랑한 스포츠 카와 비디오 스튜디오, 그리고 자가용 비행기와 보트를 타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그가 사랑했던 도시인 몬터레이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추락해서 사망합니다.  미확인 정보에 의하면 당시 그는 알콜중독으로 많은 시간 술에 취해 있었고, 사고 역시 음주에 의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습니다.

게리 킬달이 이룩한 컴퓨터 과학에서의 업적은 정말 눈이 부실 지경입니다.  그 중 중요한 것만 나열해도 다음과 같습니다.

  • PC 최초의 디스크 운영체제 개발
  • 선점형 멀티태스킹과 윈도우 기능을 가진 운영체제 개발 및 소개
  • 메뉴기반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발
  • 최초의 디스크 트랙 버퍼링 스키마, Read-ahead 알고리즘, 파일 디렉토리 캐쉬, RAM 디스크 에뮬레이터의 개발자
  • 1980년대 바이너리 리컴파일러를 처음으로 소개
  •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처음으로 동작하는 컴파일러 및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
  • 오늘날 쌍방향 멀티미디어 기술의 기초가 된 최초의 비디오 디스크에 대한 비선형 플레이가 가능한 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 개발
  • 세계 최초의 소비자용 CD-ROM에 대한 파일 시스템 및 데이터 구조 개발
  • 컴퓨터 하드웨어와 운영체제를 개방형으로 만들 수 있는 시스템 아키텍처를 위한 BIOS 개발

그는 진정한 PC의 혁명가였고, 오늘날의 혁명을 있게 한 최고의 과학자였습니다.  비록 신은 그에게 빌 게이츠와 같은 명성과 부를 주지 않았고, 경영능력도 뛰어나지 못했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히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을 것입니다.


참고자료: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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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dore 64 : from Wikipedia


IT 삼국지, 장수와 변방국가들도 좀 나와야 겠지요?  오늘은 애플이 혁신을 하던 시기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등장했던 코모도어가 주인공입니다.


애플 II 최대의 라이벌 코모도어 (Commodore)

애플 II 가 맹위를 떨치며 PC 시장을 장악해가는 과정에 가장 커다란 라이벌이 된 회사가 바로 코모도어(Commodore) 입니다.  코모도어는 1954년에 캐나다 토론토에서 설립된 역사가 오래된 회사로 타자기와 관련된 사업으로 시작을 해서, 1970년대초 막 형성되기 시작한 전자계산기 사업을 통해 성장을 하였습니다.  

전자계산기 사업을 하면서 코모도어는 1976년 애플 시리즈의 메인 CPU 인 6502 칩을 생산한 것으로도 유명한 MOS Technolgy를 인수합니다.  그리고, 회사도 MOS Technology에 가까운 펜실베니아의 웨스트 체스터로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PC 시장을 공략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1976년 애플-1 이 6502 칩을 이용해서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본 코모도어는 본격적으로 PC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합니다.  CPU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에 상당한 자신감도 있었던 듯하고, 당시 애플이라는 회사는 신생벤처회사에 불과했기 때문에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코모도어와 애플은 한 차례 만남이 있었습니다.  코모도어의 자회사 CPU를 애플이 사용했기 때문에, 애플 II를 제작할 때에는 스티브 잡스가 마이크 마큘라에게 했듯이 자신의 차고로 코모도어의 경영진들을 데리고 와서 만들고 있는 컴퓨터를 보여주었습니다.  코모도어는 당시 개인용 컴퓨터 시대가 온다고 확신을 하고 대비를 하고 있었기에 애플 II에 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 마큘라처럼 일정 정도의 투자를 받고 지분을 좀 떼어줄 생각이었는데, 코모도어는 그러지 말고 회사 자체를 넘기라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야망이 있는 스티브 잡스는 이 제안을 거절하였고, 코모도어는 조그만 회사가 인수합병 제안을 거절하자 투자를 하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개인용 컴퓨터 개발에 나섭니다.

애플 II가 발매된 1977년, 코모도어도 애플 II의 라이벌이 되는 제품을 내놓습니다.  PET 라는 이름의 컴퓨터가코모도어의 첫번째 개인용 컴퓨터로 애플 II 와는 달리 케이스를 모두 금속으로 만들었고, 같은 6502 CPU를 이용했지만 단색의 푸른 화면만 제공하는 등 가정용으로 이용하기에는 거리가 먼 제품이었습니다.  PET가 실패하자, 코모도어는 애플 II의 성공이 화려한 컬러를 지원한 것에 원인이 있다고 보고 컬러를 지원하되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이런 전략에서 탄생한 컴퓨터가 1981년에 발매된 VIC-20 입니다.  이 컴퓨터는 $299 달러라는 파격적인 소매가격과 공격적인 광고를 같이 실으면서 야심차게 등장합니다.  특히 당시 최고의 히트 시리즈이자 미래에 대한 동경을 심어주는데 최고의 영향력을 가졌던 스타트렉의 주연배우였던 윌리엄 샤트너(William Shatner)가 "왜 비디오 게임기를 구입하시나요? (Why buy just a video game?)" 이라는 카피 문구와 함께 등장하는 TV 광고가 대히트를 하면서, 동시에 애플 II의 고가전략(당시 $1000 달러가 넘었음)과 맞물려 애플 II를 제치고 판매대수로는 가정용 컴퓨터 사상 처음으로 100만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합니다.  VIC-20 은 최종적으로 250만대 정도가 팔린 가정용 컴퓨터 역사에 남는 베스트 셀러 중의 하나가 되었고, 코모도어라는 이름을 가정용 컴퓨터의 역사에 뚜렷이 남깁니다.  후속으로 1982년에 발매된 코모도어 64는 사운드와 그래픽 지원이 뛰어난 컴퓨터로 $595 달러의 가격에 발매가 되는데, 이 제품은 무려 2300만대가 팔리는 엄청난 히트 상품이 됩니다.  특히 사운드와 그래픽이 좋았기 때문에, 많은 수의 게임 타이틀이 발매가 되었기 때문에 아직도 미국에서는 코모도어 64에 대한 추억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가전략을 내세워서 판매한 후유증은 컸습니다.  판매는 많이 했지만, 이익율은 형편없었고 공격적인 광고와 마케팅을 하느라 비용지출도 많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애플 II는 고급 컴퓨터이고, 코모도어의 컴퓨터는 싸구려라는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주면서  IBM-PC의 등장과 함께 더 이상의 히트상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코모도어의 수장, 기인 잭 트래미엘 (Jack Tramiel)

코모도어를 이끌던 사람은 폴란드 출신의 잭 트래미엘입니다.  1928년 생으로 유태인이기 때문에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찌의 침공으로 어려운 환경을 겪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특히 가족들이 모두 아우슈비츠에 끌려가서 이슬처럼 사라지기 전에 살아돌아온 유태인 중의 한명입니다.  1945년 기적적으로 구조가 된 그는 1947년 11월 미국으로 이민을 갑니다.  미국에서 육군에 입대하여 타자기를 비롯한 다양한 기계들을 고치는 방법을 배운 뒤에 제대를 하여 택시 운전사로 일하면서 1954년에 창업한 회사가 바로 코모도어 입니다.  이런 개인사를 가지고 있기에 경영에 있어서 모든 부분에 관여하고, 일본식의 관리경영 및 비용절감을 통한 저가전략을 잘 펼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197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컴퓨터를 제조한다는 생각자체를 하지 못했을 때, 값싼 노동력과 기술력을 믿고 일본에 공장을 설립할 정도로 일본을 잘 아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의 이런 성격을 잘 대별한 것이 코모도어의 개인용 컴퓨터 제조 및 판매전략입니다.  그러나, 엄청난 대수의 컴퓨터를 팔아치웠지만, 수익이 저조했던 것이 빌미가 되어  1984년 1월 코모도어에서 쫓겨납니다.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난 트래미엘은 차세대 가정용 컴퓨터를 디자인하고 판매하기 위해  Tramel Technology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그런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오게 되는데, 비디오 게임으로 승승장구하였고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이 가정용 컴퓨터의 꿈을 가지게 만든 여러 계기를 제공했었던 아타리 컴퓨터가 가정용 컴퓨터 시장의 약진으로 비디오 게임 시장이 붕괴되어 경영난에 허덕이면서 매물로 나온 것입니다.  트래미엘은 1984년 아타리에서 아케이드 게임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인수합병하고 회사의 이름도 아타리로 변경합니다.

트매미엘이 인수한 아타리는 공격적으로 다양한 가정용 컴퓨터 라인업을 내놓고 비디오 게임에서 가지고 있었던 게임관련 타이틀 등을 많이 제공하는 니치 마켓에 안착을 하면서 재기에 성공합니다.  1989년까지 비교적 착실한 매출과 순이익을 내던 아타리는 1989년 또 하나의 예상치 못했던 일본의 닌텐도 게임보이에 밀려서 결국에는 1996년 하드디스크 제조업체였던 JTS에 매각됩니다. 

잭 트래미엘은 1980년대 후반 아들인 샘에게 경영권을 넘겼었지만, 1995년 아들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면서 결국 아타리라는 회사를 자신의 손으로 정리를 하였습니다.  그는 IT 산업의 전설로서 남지는 못했지만 코모도어와 아타리라는 굵직한 회사를 경영하면서, 그것도 당대 최고의 회사들과 맞서서 싸운 용장이라고 할만 합니다.  1955년 동갑나기들에 비해 무려 27살이 많았지만, 그가 시도했던 비디오 게임과 가정용 컴퓨터에 대한 철학은 나름의 매니아 층도 형성하였고, 아직도 코모도어와 아타리는 올드 컴퓨터 매니아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참고자료:
Wikipedia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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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애플 아이패드가 공식적으로 출시된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참 우연인지 필연인지 지난 해에 루머가 나왔다가 사라져버린 마이크로소프트의 태블릿인 쿠리어(Courier)의 사진과 동영상이 다시 같은 날 흘러나왔습니다.  실제로 동작한다기 보다는 그림과 컨셉 동영상만 계속 공개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개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굉장히 여러가지 설이 존재하는 가운데, 공식적으로 배포하지도 않는 사진과 영상들이 아이패드 출시에 맞춰서 흘러나오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 아이패드가 지나치게 빠르게 태블릿 PC 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크롬을 이용한 태블릿을 여러 하드웨어 업체들과 준비하고 있는 구글 역시 쿠리어에 대한 소문과 영상이 나오는 것이 아이패드로 자칫 쏠릴 수 있는 시선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리 나쁠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쿠리어의 컨셉 영상이 처음 소개된 것이 작년 9월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6개월이 지난 것인데, 아직도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 개발이 되고 있다는 가정하에 흘러나오는 몇가지 루머를 정리하면 윈도우 7이 아니라 윈도폰 7과 유사한 Zune 계열의 운영체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CPU는 Tegra 2 를 이용하고, 접을 수 있으며 접고나면 5x7 인치 크기의 소형 태블릿이 된다고 합니다.  인터페이스는 기본적으로 펜을 기반으로 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기능과 스크랩을 하는 것과 같은 노트에서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아이패드와는 다른 형태의 UX 를 제공합니다.  카메라가 들어가 있으며, 전자책을 겸하게 되는데, 올해 연말을 타겟으로 출시할 것이라는 것이 루머의ㅡ 전체적인 내용입니다.  

아래 임베딩한 화면은 이번에 새로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동작 컨셉 동영상입니다.







오늘 공개된 그림들과 컨셉 동영상이 실제 개발되는 것과는 무관하게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의 아이패드에 대한 김빼기 작전을 펼치는 것이라는 시각도 많습니다.  실제로 쿠리어 영상이 작년 9월에 인터넷에 흘러나온 이후 공식적인 내용은 없었고 이번에도 그냥 새어나온 정보로만 퍼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도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이런 개념의 프로젝트를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서 실제로 연구목적으로 진행한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트위터 정우석(@laple)님이 소개해주신 마이크로소프트 CODEX 라는 프로젝트의 데모를 보면 하드웨어 스펙이나 동영상 데모의 수준은 아니지만, 컨셉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유사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좋은 기술들이 경쟁적으로 개발된다면 좋은 것이기 때문에, 나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빨리 이를 공식화해서 발표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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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직 출시도 안된 아이패드를 따라다니는 '아이패드 킬러' 루머들

    Tracked from Insight & Perspective  삭제

    애플이 드디어 아이패드의 정식 출시날짜를 발표를 했습니다. 최근, 아이패드의 프로덕션에 차질이 있는 거 같다는 루머가 돌았었는데.. 3월말이라는 스티브잡스의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되었지만 4월3일은 생각보다 빠른 날짜네요. 우선, 미국의 소비자들만 그 날짜에 기다리던 아이패드를 만질 수 있긴 하지만요. 아이패드 공식 발표 이전의 루머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iPhone OS 기반의 iPad 가 아닌 Mac OS 기반의 Mac Tablet 을 예상했다...

    2010/03/06 21:45

from Wikipedia


1955년에 태어난 또 한명의 거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1955년에 태어난 동갑나기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IT 삼국지의 남은 하나의 제국인 구글을 현재 이끌고 있는 CEO 에릭 슈미트(Eric Schmidt) 역시 1955년 생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현재 전세계를 움직이는 세 회사의 총수들이 모두 한 해에 태어났다는 것은 어찌보면 역사의 필연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구글의 창업자들은 그보다 훨씬 어리지만 말이죠 ...

에릭 슈미트는 1955년 4월 27일, 버지니아주 폴스처치(Falls Church)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워싱턴 DC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살기좋은 도시로 그의 아버지 윌슨 슈미트는 존스 홉킨스 대학의 국제경제학 교수였고, 닉슨 대통령 시절 미국 재무부에서 일을 했으며, 어머니인 엘리너는 심리학 석사 출신으로 전업주부로 가정에 충실한 전형적인 엘리트 집안입니다.  

에릭 슈미트 역시 중고등학교 다닐 때 대형 컴퓨터를 이용한 프로그래밍에 푹 빠져 살았다고 합니다.  천공카드로 구멍을 뚫어서 시간을 나누어 써야 했던 컴퓨터였지만, 그 역시 컴퓨터와의 운명적인 사랑은 외면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어렸을 때부터 창업의 길을 걷지는 않았습니다.  공부도 잘했지만, 운동역시 잘했던 에릭 슈미트는 특히 장거리 육상에 소질이 있어서 최고의 육상선수이기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에릭 슈미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 프린스턴 대학의 건축학과에 입학합니다.  그렇지만, 워낙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좋아했던 그는 전기공학과로 전과를 합니다.  특히 대학의 컴퓨터가 밤만 되면 빨라졌기 때문에, 거의 밤마다 잠을 자지 않고 프로그래밍을 하였으며, 여름이 되면 당대 최고의 연구소의 하나였던 벨 연구소에서 일을 했는데, 벨 연구소는 1969년에 현재까지도 가장 위대한 운영체제의 하나이자 수많은 다른 운영체제의 원형이 된 Unix 운영체제가 탄생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에릭 슈미트는 대학생 신분으로 역사에 남을 프로그램을 하나 완성시키는데, 그것이 바로 컴파일러를 만들 때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도구인 lex 라는 소프트웨어 입니다 (lexical analyzer, 구문해석기).  1979년 프린스턴 대학 전기공학 학사학위를 취득한 에릭 슈미트는 같은 해 캘리포니아로 떠납니다.  보다 깊은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버클리를 선택한 그는 여름이면 제록스 파크(Xerox PARC) 연구소에서 다양한 연구를 경험하며 컴퓨터 공학의 이론과 실제를 꾸준히 공부하고 수련하면서 착실히 내실을 다져나갑니다.  그는 1982년 버클리에서 대학졸업 3년만에 초고속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데, 그 기간동안 바로 옆동네인 실리콘 밸리에서는 동갑나기 천재인 스티브 잡스가 이끄는 애플이 그리고 시애틀에서는 빌 게이츠가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신생회사가 세상을 바꾸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소처럼 꾸준하게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커리어를 쌓아나가던 에릭 슈미트는 결국 두명의 천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회사의 CEO 자리에 오르면서 현재 가장 뛰어난 미래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소프트웨어의 한 길을 걸어가는 마이크로소프트

대담하게 세계 최초의 PC 인 Altair 8800 에 공급할 BASIC 언어 인터프리터(이하 BASIC으로 표기)를 개발하겠다며 MITS를 졸랐던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은 가능성을 인정받고 약속한 8주만에 BASIC을 하버드 대학에서 완성을 하고 뉴멕시코 앨버커리로 날아갔습니다.  이들이 개발한 BASIC은 완벽하게 동작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앨버커키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합니다.

빌 게이츠는 아버지의 도움도 받고, 과거 레이크 사이드 고등학교 시절에 함께 했던 동료들을 속속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시키며 회사를 키워나갑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BASIC은 이용하기도 쉽고,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에 컴퓨터 매니아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습니다.  또한 당시만 해도 전문 소프트웨어 회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실력을 신뢰한 여러 하드웨어 회사들이 많은 일을 의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창업하자마자 1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고, 그 다음해에도 성장가도를 달렸지만, 이제는 MITS가 걸림돌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직접 판매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에 딸려나가면서 로열티를 받는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MITS 라는 회사의 하드웨어 생산능력과 판매량에 따라 회사의 성장성이 제한받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더구나 독점적 계약을 미끼로 다른 회사의 하드웨어에는 BASIC을 탑재하지 못하도록 했던 MITS 의 정책을 참을 수 없었던 빌 게이츠는 1년 뒤인 1977년 결국 MITS 와의 계약을 파기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계약파기에 불복한 MITS는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게 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MITS 측이 자사의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맞상대를 합니다.  법원은 빌 게이츠의 손을 들어주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들이 개발한 BASIC 을 다른 회사에도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하면서 때마침 불어닥친 PC 시대와 함께 회사가 급성장을 하게 됩니다. 

1978년 11월에는 일본의 하드웨어 업체들에게 BASIC 을 공급하기 위해 ASCII Microsoft 라는 법인을 일본에 설립하게 되는데, 이 회사는 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일본지사가 되며 일본을 중심으로 결성하게 되는 MSX 컴퓨터 연합을 이끄는 중심이 됩니다.  전 세계의 PC 하드웨어 업체들을 고객으로 맞게 된 빌 게이츠는 뉴멕시코를 떠나 자신의 고향인 워싱턴주 시애틀 인근의 벨뷰(Bellevue)로 회사를 옮기는데, 이 때가 1979년 1월 1일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애틀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1979년 동부에 있었던 에릭 슈미트는 캘리포니아로 넘어오게 되고, 1977년 애플 II를 발표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1979년 전 세계를 애플 II 로 호령하면서 떵떵거리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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