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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국지, 오늘은 최고의 검색엔진에 등극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날이 갈수록 수익구조는 악화되었던 구글의 수익모델을 찾기 위한 노력과 CEO 선임이 이루어진 2000년 전후의 이야기 입니다.  


AdWords 의 탄생, 그리고 CEO를 찾아라

세계 최고의 트래픽을 몰고다니는 서비스가 되었지만, 구글에게는 이제 이런 트래픽을 비즈니스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글의 공동 창업자들은 구글 검색에 과도한 비즈니스적인 요소를 연결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들의 이런 생각은 가장 커다란 투자자인 세콰이어 캐피탈과 KPCB의 마이클 모리츠와 존 도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으며 꼭 두 창업자를 끌어줄 수 있는 CEO 를 외부에서 영입해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하였습니다.

구글은 2000년 10월, 첫 번째 광고 프로그램인 애드워즈(AdWords)를 테스트 합니다.  350개의 광고업체만 받아서 그들이 선택한 키워드가 검색어로 들어오면 검색결과 옆에 작은 광고가 보이도록 하였습니다.  광고주들은 해당 키워드를 몇 번이나 사용자들이 이용했는지 알 수 있었는데, 분석도구도 엉성했고 생각처럼 쉽게 성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애드워즈는 광고주들이 광고가 화면에 몇번 노출되는지를 기준으로 비용책정을 했는데, 이런 모델은 기존 배너광고에서 이용되는 CPM(Cost-Per-Mille, 1000번 노출당 단가) 방식의 변형이었고 GoTo.com 이 이미 CPC(Cost-Per-Click, 클릭당 단가) 방식의 검색광고를 시작한 상태였고, 그 반응도 좋았기 때문에 기존의 CPM 방식을 채용한 애드워즈는 그렇게 큰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 밖에 다양한 형태의 광고방식이 제안되었지만, 거의 대부분 구글의 창업자들에 의해 광고가 검색과 확실한 연관성을 가지지 않는다면 집어넣을 수 없다는 고집스러운 철학에 가로막혔습니다.  존 도어와 마이클 모리츠는 이대로는 구글의 미래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판단하에, 투자를 했던 당시의 약속인 '새로운 CEO를 영입하라'는 말을 지키라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압력을 가했습니다.  두 공동창업자들은 약속을 지켜야 했기에 마지못해 여러 명의 CEO 후보자들과 미팅을 가지지만, 대부분 장난스러운 인터뷰를 하다가 '기술을 모른다'는 핑게로 대부분 거절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퇴짜를 놓은 CEO 후보들이 15명이 넘어가자, 존 도어와 마이클 모리츠는 이 두 사람이 CEO 를 선임하지 않으려고 그냥 무조건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 한 해가 이런 식으로 CEO 선임을 위한 작업으로 저물어 갔지만, 결국 CEO 는 뽑을 수 없었고, 전문경영인도 없었으며, 회사의 관리체계는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야심차게(?) 내놓은 애드워즈는 그다지 커다란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고, 비용을 수반하는 쓸데없는 트래픽만 자꾸 늘어나면서 과연 구글이라는 회사가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비관론마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나마 해를 넘겨 2001년 1월에 애플, 썬 마이크로시스템스 등에서 운영 부사장으로 일했던 웨인 로징(Wayne Rosing)을 뽑으면서 엔지니어의 문화를 존중하지만 관리가 가능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중책을 맡게 됩니다. 


에릭 슈미트와의 인터뷰, CEO 를 찾아내다.

구글이라는 회사의 CEO 를 찾는 작업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지만, KPCB 의 존 도어에게는 구글의 CEO 로 적임자로 떠오른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존 도어의 절친한 친구였던 에릭 슈미트(Eric Schmidt) 입니다.  에릭 슈미트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가 한창 잘 나가던 시절 CTO 로 일하다가, 더욱 큰 꿈을 안고 노벨(Novell)의 CEO 로 적을 옮기게 되는데,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와는 달리 노벨에서는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가 합류했을 때 노벨의 4분기 매출은 목표액에 1,460만 달러나 적었고, 경영진들은 이를 분식회계로 메꾸는 방법을 제안하지만, 에릭 슈미티는 그대로 발표하기로 하고 노벨의 주가는 곤두박질치면서 회사가 바로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큰 꿈을 안고 들어간 회사가 입사하자마자 위기상태에 들어간 것입니다.

존 도어의 추천과 함께 웨인 로징에 대한 평판을 알기 위해 세르게이 브린이 에릭 슈미트에게 전화를 해서 장시간 통화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구글에 잠시 들르기로 합니다.  2000년 12월, 에릭 슈미트는 약속대로 구글을 방문합니다.  2000년 당시 구글이 사용하던 건물은 마운틴 뷰의 빌딩21 이었는데, 이 건물은 에릭 슈미트가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에 재직하던 시절에 썬의 건물로서 일하던 건물이었기 때문에 회사는 달랐지만 장소라는 측면에서는 고향을 방문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CEO 인터뷰를 위해 일부러 만든 자리는 아니었지만, 에릭 슈미트는 존 도어에게 언질을 받은 상태였고, 또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역시 에릭 슈미트가 과연 구글 CEO 가 될만한 사람인지 알고 싶었기에, 이 때의 만남은 서로의 기싸움이 되는 중요한 미팅이었습니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에릭 슈미트를 만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그가 노벨에서 내린 결정에 대한 기술적 비판을 합니다.  노벨이 전략적으로 인터넷 속도를 높이기 위해 개발한 프록시 캐시(proxy cache)라는 기술이 결국 초고속 인터넷이 늘어나게 되면 무용지물이 될텐데 쓸데없는 곳에 투자를 해서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이 아니냐는 날선 비판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에릭 슈미트는 자신의 논거를 앞세워 거세게 반론을 하였는데, 이런 논쟁이 무려 1시간 30분 가까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보통의 인터뷰였다면 완전히 실패했을 이런 논쟁이, 결국은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에릭 슈미트라는 사람을 구글의 CEO 적임자로 인정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에릭 슈미트 역시 구글의 이런 문화가 싫지 않았습니다.  2001년 2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에릭 슈미트에게 정식으로 구글의 CEO 자리를 제안하였고, 에릭 슈미트는 노벨의 합병을 마무리하고 구글의 CEO 를 맡는 대신 3월 부터 일단 회장의 자리에 취임을 합니다.  그해 8월 에릭 슈미트는 구글의 CEO 자리에 오르면서, 세루게이 브린이 기술부문 사장을 맡고 래리 페이지가 제품부문 사장을 맡는 구글의 3두체제가 완성됩니다.  이때 정해진 연봉과 함께, 에릭 슈미트는 1500만 주에 육박하는 엄청난 주식을 스톡옵션으로 받으면서 구글의 명실상부한 공동책임자가 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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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IT 삼국지 주인공은 워크스테이션과 자바(Java)로 한 시대를 풍미한 썬 마이크로시스템스(Sun Microsystems) 입니다.   비록 현재는 과거의 위세를 잃고, 오라클(Oracle)에 인수되는 신세가 되었지만,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는 현재 구글의 CEO 인 에릭 슈미트(Eric Schmidt)가 CTO 로서 일했던 실리콘 밸리를 대표했던 기술기업입니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탄생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첫번 째 유닉스 워크스테이션인 Sun-1 은 앤디 벡톨샤임(Andy Bechtolsheim)이 스탠포드 대학의 대학원 학생이던 시절에 처음 디자인하였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3M(1 MIPS 속도, 1 MB 메모리, 1 메가픽셀 해상도) 개념을 현실화한 컴퓨터로 유닉스의 가상 메모리를 지원할 수 있는 메모리 관리유닛(MMU, Memory Management Unit)을 가진 모토롤라의 68000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기반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이 프로토타입을 바탕으로 1982년 2월 24일, 앤디와 함께 비노드 코슬라(Vinod Khosla), 스캇 맥닐리(Scott McNealy)가 공동으로 회사를 설립합니다.  뒤를 이어 BSD 유닉스의 메인 개발자였던 버클리 대학의 빌 조이(Bill Joy)가 합류하면서 늦었지만 공동창업자의 일원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였습니다.  SUN 이라는 이름은 Stanford University Network 이라는 문구의 이니셜을 딴 것으로 그만큼 이들은 스탠포드 대학에 대한 애착이 컸습니다.

뒤를 이어 1983년에는 이후 구글의 CEO 가 되는 에릭 슈미트가 입사를 합니다.  그는 초기 썬의 워크스테이션부터 시작해서, 자바 개발과 관련한 프로젝트들을 많이 주도하면서 CTO (Chief Technology Officer)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지만, 1997년 노벨(Novell)의 CEO로 자리를 옮깁니다.

썬은 SPARC (Scalable Processor Architecture) 라고 불렸던 고성능의 RISC(Reduced Instruction Set Computing) 라는 CPU 를 1986년에 발표하면서, 이를 이용한 첨단 워크스테이션으로 당시 대형서버와 PC 사이에 존재했던 워크스테이션 시장을 장악하면서 승승장구 하였습니다.  SPARC CPU는 당시 PC 에서 많이 이용되던 인텔의 286/386 등의 CISC(Complex Instruction Set Computing) 계열 CPU 보다 훨씬 빠른 성능을 보였으며, 썬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유닉스 계열인 솔라리스(Solaris)라는 운영체제와 함께 이용될 경우 성능의 격차가 훨씬 커졌기 때문에 고가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대학이나 연구소를 중심으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워크스테이션으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자바, 인터넷을 만나 꽃을 피우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는 솔라리스라는 운영체제를 탑재한 워크스테이션과 서버를 팔아서 수익을 올리는 하드웨어 회사였지만, IT 역사의 측면에서 바라볼 때 매우 중요한 회사로 여겨지는 것은 오늘날 가장 많은 개발자들이 이용하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자바(Java)를 처음 만들어낸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자바는 제임스 고슬링(James Gosling)이 1991년 시작한 프로그래밍 언어 프로젝트로 원래는 많은 셋탑박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운영체제와 관계없이 한 번만 코딩을 하면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래밍 환경과 언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진행을 하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제임스 고슬링의 사무실에서 보이는 참나무(oak)에서 영감을 받아 Oak 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동료들이 붙으면서 여러 이름들 중에서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Java 로 바뀌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제임스 고슬링은 하드웨어와 관계없이 동작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어떤 하드웨어나 운영체제에서도 동작할 수 있는 가상머신(virtual machine)을 만들고, 이 위에서 동작하게 만들면 한 번만 만들어서 여러 곳에서 쓸 수 있다는(Writing Once, Run Anywhere) 개념을 중요시하였고, 또한 당시 가장 많이 사용하던 C/C++ 프로그래밍 언어와 문법이 비슷하지만 골치거리인 메모리 관리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언어를 디자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자바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를 통해 1995년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후 여러 부침이 있었지만, 자바는 전세계 프로그래머들이 가장 사랑하는 언어로 그 자리를 공고하게 지킵니다.  IBM 역시 자바에 대해 강력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특히 강력한 웹 지원기능과 서버환경에 적합한 도구 및 기능을 제공하면서 WAS(Web Application Server) 소프트웨어들이 대세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썬 마이크로시스템스가 닷컴 버블 시절에 가장 많은 서버 장비를 판매하는 회사 중의 하나로 자리잡게 만드는 일등공신이 됩니다.  또한, 오늘날 아이폰과 함께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역시 자바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자바의 영향력은 정말 계산하기 어려운 수준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구글의 CEO 가 된 에릭 슈미트는 이런 부분에 주목을 하였고, 자바의 활용과 관련한 많은 정책과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CTO의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닷컴버블 기간인 1995~2000년 사이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는 정말 대단한 성장을 합니다.  수요가 많았기에, 투자도 많이 하였고 온통 장미빛 전망에 휩싸였기에 지출도 그만큼 늘어나면서 비약적으로 회사의 규모가 커졌습니다.  이런 성장에는 닷컴버블기간 자금이 풍부했던 벤처회사들이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적절한 서버에 투자를 하기 보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와 같은 회사의 고가의 서버에 과감히 투자하는 사례가 늘어난 측면도 많았기에, 닷컴버블이 꺼지면서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도 x86 계열의 저가 서버에 시장의 주도권을 내주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1997년 에릭 슈미트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가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노벨(Novell)의 CEO로 자리를 옮깁니다.  개인적으로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선택이 없었다면 아마도 오늘날 구글 CEO 로 화려하게 컴백하는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니 어찌보면 새옹지마라고 하겠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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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에 태어난 또 한명의 거인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1955년에 태어난 동갑나기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IT 삼국지의 남은 하나의 제국인 구글을 현재 이끌고 있는 CEO 에릭 슈미트(Eric Schmidt) 역시 1955년 생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현재 전세계를 움직이는 세 회사의 총수들이 모두 한 해에 태어났다는 것은 어찌보면 역사의 필연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구글의 창업자들은 그보다 훨씬 어리지만 말이죠 ...

에릭 슈미트는 1955년 4월 27일, 버지니아주 폴스처치(Falls Church)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워싱턴 DC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살기좋은 도시로 그의 아버지 윌슨 슈미트는 존스 홉킨스 대학의 국제경제학 교수였고, 닉슨 대통령 시절 미국 재무부에서 일을 했으며, 어머니인 엘리너는 심리학 석사 출신으로 전업주부로 가정에 충실한 전형적인 엘리트 집안입니다.  

에릭 슈미트 역시 중고등학교 다닐 때 대형 컴퓨터를 이용한 프로그래밍에 푹 빠져 살았다고 합니다.  천공카드로 구멍을 뚫어서 시간을 나누어 써야 했던 컴퓨터였지만, 그 역시 컴퓨터와의 운명적인 사랑은 외면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어렸을 때부터 창업의 길을 걷지는 않았습니다.  공부도 잘했지만, 운동역시 잘했던 에릭 슈미트는 특히 장거리 육상에 소질이 있어서 최고의 육상선수이기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에릭 슈미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 프린스턴 대학의 건축학과에 입학합니다.  그렇지만, 워낙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좋아했던 그는 전기공학과로 전과를 합니다.  특히 대학의 컴퓨터가 밤만 되면 빨라졌기 때문에, 거의 밤마다 잠을 자지 않고 프로그래밍을 하였으며, 여름이 되면 당대 최고의 연구소의 하나였던 벨 연구소에서 일을 했는데, 벨 연구소는 1969년에 현재까지도 가장 위대한 운영체제의 하나이자 수많은 다른 운영체제의 원형이 된 Unix 운영체제가 탄생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에릭 슈미트는 대학생 신분으로 역사에 남을 프로그램을 하나 완성시키는데, 그것이 바로 컴파일러를 만들 때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도구인 lex 라는 소프트웨어 입니다 (lexical analyzer, 구문해석기).  1979년 프린스턴 대학 전기공학 학사학위를 취득한 에릭 슈미트는 같은 해 캘리포니아로 떠납니다.  보다 깊은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버클리를 선택한 그는 여름이면 제록스 파크(Xerox PARC) 연구소에서 다양한 연구를 경험하며 컴퓨터 공학의 이론과 실제를 꾸준히 공부하고 수련하면서 착실히 내실을 다져나갑니다.  그는 1982년 버클리에서 대학졸업 3년만에 초고속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데, 그 기간동안 바로 옆동네인 실리콘 밸리에서는 동갑나기 천재인 스티브 잡스가 이끄는 애플이 그리고 시애틀에서는 빌 게이츠가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신생회사가 세상을 바꾸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소처럼 꾸준하게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커리어를 쌓아나가던 에릭 슈미트는 결국 두명의 천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회사의 CEO 자리에 오르면서 현재 가장 뛰어난 미래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소프트웨어의 한 길을 걸어가는 마이크로소프트

대담하게 세계 최초의 PC 인 Altair 8800 에 공급할 BASIC 언어 인터프리터(이하 BASIC으로 표기)를 개발하겠다며 MITS를 졸랐던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은 가능성을 인정받고 약속한 8주만에 BASIC을 하버드 대학에서 완성을 하고 뉴멕시코 앨버커리로 날아갔습니다.  이들이 개발한 BASIC은 완벽하게 동작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앨버커키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합니다.

빌 게이츠는 아버지의 도움도 받고, 과거 레이크 사이드 고등학교 시절에 함께 했던 동료들을 속속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시키며 회사를 키워나갑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BASIC은 이용하기도 쉽고,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에 컴퓨터 매니아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습니다.  또한 당시만 해도 전문 소프트웨어 회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실력을 신뢰한 여러 하드웨어 회사들이 많은 일을 의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창업하자마자 1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고, 그 다음해에도 성장가도를 달렸지만, 이제는 MITS가 걸림돌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직접 판매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에 딸려나가면서 로열티를 받는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MITS 라는 회사의 하드웨어 생산능력과 판매량에 따라 회사의 성장성이 제한받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더구나 독점적 계약을 미끼로 다른 회사의 하드웨어에는 BASIC을 탑재하지 못하도록 했던 MITS 의 정책을 참을 수 없었던 빌 게이츠는 1년 뒤인 1977년 결국 MITS 와의 계약을 파기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계약파기에 불복한 MITS는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게 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MITS 측이 자사의 소프트웨어를 판매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맞상대를 합니다.  법원은 빌 게이츠의 손을 들어주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들이 개발한 BASIC 을 다른 회사에도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하면서 때마침 불어닥친 PC 시대와 함께 회사가 급성장을 하게 됩니다. 

1978년 11월에는 일본의 하드웨어 업체들에게 BASIC 을 공급하기 위해 ASCII Microsoft 라는 법인을 일본에 설립하게 되는데, 이 회사는 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일본지사가 되며 일본을 중심으로 결성하게 되는 MSX 컴퓨터 연합을 이끄는 중심이 됩니다.  전 세계의 PC 하드웨어 업체들을 고객으로 맞게 된 빌 게이츠는 뉴멕시코를 떠나 자신의 고향인 워싱턴주 시애틀 인근의 벨뷰(Bellevue)로 회사를 옮기는데, 이 때가 1979년 1월 1일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애틀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1979년 동부에 있었던 에릭 슈미트는 캘리포니아로 넘어오게 되고, 1977년 애플 II를 발표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1979년 전 세계를 애플 II 로 호령하면서 떵떵거리기 시작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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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10월 가트너(Gartner)에서 주최한 Gartner Symposium/ITxpo Orlando 2009 에서 구글의 CEO인 에릭 슈미트의 강연 및 인터뷰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했습니다.  이 블로그 포스트 아래에 45분 정도의 전체 영상을 임베딩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에릭 슈미트의 앞으로 5년 뒤의 웹 세상과 관련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발언들은 중국어의 부상과 소셜 미디어 컨텐츠의 중요성, 실시간 웹을 지원할 수 있는 초고속 통신망의 보강 등이 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RWW의 Marshall Kirkpatrick 가 요점을 잘 정리했는데요.  개조식으로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앞으로 5년 뒤에는 인터넷은 중국어 컨텐츠가 지배할 것이다.
  • 현재의 10대 들이 바라는 웹의 형태가 5년 뒤의 웹의 모델이다.  그들은 앱과 앱 사이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넘나들고 있으며, 서비스 역시 쉽게 바꾼다.
  • 5년 뒤의 컴퓨터는 현재 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초고속 통신망 인프라가 더욱 확대되어 TV, 라디오와 같은 대용량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이용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어질 것이다.
  • 구글은 유튜브에서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될 것이고, 컨텐츠의 중심도 비디오로 넘어갈 것이다.
  • 실시간 정보의 중요성이 증대될 것이며, 구글 역시 실시간 정보검색 기능을 강화할 것이다.
  •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같은 회사들이 많이 나올 것이며, 실시간 웹 서비스 회사들도 많아질 것이다 (이거는 구글의 바램이 아닐지, 춘추전국시대를 바라는 ...)  
  • 5년 뒤에는 전통적인 컨텐츠 제공자(신문, 방송, 잡지 등) 보다 사용자가 만들어낸 정보들이 훨씬 많아지고, 더 많이 소비하는 체제가 확고해지는 근본적인 변화가 가시화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정보들에 랭킹을 어떻게 매기고, 선별을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며, 구글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 구글 크롬 운영체제를 장착한 넷북이 2010년에는 출시가 될 것이며, 여기에는 HTML5 로컬 캐슁 기능이나 오프라인 사용이 원활하게 지원될 것이다.

그 밖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강연을 한번 들어보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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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kywalker의 알림

    Tracked from mktarcadia's me2DAY  삭제

    구글 CEO가 생각하는 5년 뒤의 웹 세상 시간내서 함 봐야지

    2009/11/28 02:45
  2. 비틀액쓰의

    Tracked from beatlx's me2DAY  삭제

    구글 CEO가 생각하는 5년 뒤의 웹 세상.

    2009/11/28 05:24




최근 거대공룡 마이크로소프트를 향한 애플과 구글의 오랜 공조가 흔들리는 수준을 넘어, 완전히 적대적인 수준을 바뀌어 가는 듯한 분위기 입니다.  스마트 폰을 가운데 두고 피할 수 없는 갈라섬의 시기에 온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차세대 IT 기업의 패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싸움이 시작되려 하고 있습니다.

일단 애플이 포문을 열었습니다.  아이폰에서 구글의 주요 앱 2가지(구글 latitude와 구글 보이스)를 등록 거절한데 이어, 애플의 이사회에서 구글의 CEO인 에릭 슈미트를 내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습니다.  안드로이드와 크롬 OS를 중심으로 스마트 폰과 MID(Mobile Internet Device) 시장의 소프트웨어 왕좌를 호시탐탐 노리는 구글이 애플에게는 이제는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더 무서운 경쟁자가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구글, 앱 스토어에 집착하지 않겠다!

일단 애플 앱 스토어에 등록이 거절된 구글 보이스는 현재 다른 방식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아예 구글 보이스를 특수한 웹 애플리케이션의 형태로 개발하는 것인데요.  이 경우 굳이 아이폰에 특화된 앱으로 만들 필요가 없어지는데다가, 다른 플랫폼에서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파괴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아이폰의 경우에도 3.0 버젼 운영체제에서 동작하는 사파리 웹 브라우저가 이미 HTML 스트리밍을 지원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으리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애플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것은 아닌가?하는 느낌도 듭니다.


애플, 잘못하면 독점기업으로 찍힐수도 ...

이번 앱 스토어 거절 사태는 단순히 애플과 구글의 전쟁일 뿐만 아니라, 애플의 폐쇄성이 전면적인 도마에 오르면서 독점기업으로 찍혀서 과거 AT&T나 마이크로소프트 이상의 고난을 당할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마할로의 CEO이자, 웹 로그를 만들었던 제이슨 칼라카니스(Jason Calacanis)는 최근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유명한 1984년도 광고의 빅 브라더가 되어가고 있다며 맹비난을 했고, 여기에는 테크크런치에서는 마이클 애링턴(Michael Arrington), 인가젯의 창립자이자 GDGT.com을 이끌고 있는 피터 로하스(Peter Rojas)까지 가세하고 있어 잘못하면 애플이 공적으로 몰릴 가능성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애플이 구글 보이스와 latitude의 등록을 거절한 사건은 이미 FCC에서도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또한, 아이팟과 아이폰에 경쟁사 브라우저를 올릴 수 없도록 하고 있는 의심(?) 역시도 커다란 이슈가 되어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멀티 플랫폼을 지원하는 PhoneGap에서 개발된 아이폰 앱 역시 뚜렷하지 않은 이유로 등록을 거절하고 있어서 비난의 수위는 점점 높아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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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에서 구글 보이스로 옮겨간 마이클 애링턴

테크크런치의 마이클 애링턴은 7월 말일자로 아이폰과 AT&T에서 구글 보이스 사용이 가능한 모바일 디바이스로 옮겨 가겠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애플의 독재를 눈뜨고 볼 수 없다는 것인데요.  애플은 어찌보면 강력한 지지자를 한 명 잃은 셈입니다.

마이클 애링턴은 전화번호를 구글 보이스 번호로 옮겼고, 구글 보이스의 강력한 기능을 이용해서 집에 있는 전화번호와 T-Mobile 안드로이드 휴대폰 등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T-Mobile에서 테스트 목적으로 제공한 myTouch 3G 안드로이드 휴대폰이 아이폰 3GS보다 훨씬 났다고 자랑하고 있네요.


아직까지 구글 보이스는 주요 얼리어답터 들을 제외하고 일반 대중들에게 소개되지는 않은 듯 합니다.  그렇지만, 현재까지 알려지고 있는 사실들만 종합하더라도 아이폰의 폭발력 이상의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도 충분해 보입니다.  우리나라 이통사들도 구글 보이스 때문에 아이폰 보다 더 심각한 골머리를 앓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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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4/0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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