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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Words 의 탄생, 그리고 CEO를 찾아라
세계 최고의 트래픽을 몰고다니는 서비스가 되었지만, 구글에게는 이제 이런 트래픽을 비즈니스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글의 공동 창업자들은 구글 검색에 과도한 비즈니스적인 요소를 연결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들의 이런 생각은 가장 커다란 투자자인 세콰이어 캐피탈과 KPCB의 마이클 모리츠와 존 도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였으며 꼭 두 창업자를 끌어줄 수 있는 CEO 를 외부에서 영입해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하였습니다.
구글은 2000년 10월, 첫 번째 광고 프로그램인 애드워즈(AdWords)를 테스트 합니다. 350개의 광고업체만 받아서 그들이 선택한 키워드가 검색어로 들어오면 검색결과 옆에 작은 광고가 보이도록 하였습니다. 광고주들은 해당 키워드를 몇 번이나 사용자들이 이용했는지 알 수 있었는데, 분석도구도 엉성했고 생각처럼 쉽게 성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애드워즈는 광고주들이 광고가 화면에 몇번 노출되는지를 기준으로 비용책정을 했는데, 이런 모델은 기존 배너광고에서 이용되는 CPM(Cost-Per-Mille, 1000번 노출당 단가) 방식의 변형이었고 GoTo.com 이 이미 CPC(Cost-Per-Click, 클릭당 단가) 방식의 검색광고를 시작한 상태였고, 그 반응도 좋았기 때문에 기존의 CPM 방식을 채용한 애드워즈는 그렇게 큰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 밖에 다양한 형태의 광고방식이 제안되었지만, 거의 대부분 구글의 창업자들에 의해 광고가 검색과 확실한 연관성을 가지지 않는다면 집어넣을 수 없다는 고집스러운 철학에 가로막혔습니다. 존 도어와 마이클 모리츠는 이대로는 구글의 미래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판단하에, 투자를 했던 당시의 약속인 '새로운 CEO를 영입하라'는 말을 지키라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압력을 가했습니다. 두 공동창업자들은 약속을 지켜야 했기에 마지못해 여러 명의 CEO 후보자들과 미팅을 가지지만, 대부분 장난스러운 인터뷰를 하다가 '기술을 모른다'는 핑게로 대부분 거절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퇴짜를 놓은 CEO 후보들이 15명이 넘어가자, 존 도어와 마이클 모리츠는 이 두 사람이 CEO 를 선임하지 않으려고 그냥 무조건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 한 해가 이런 식으로 CEO 선임을 위한 작업으로 저물어 갔지만, 결국 CEO 는 뽑을 수 없었고, 전문경영인도 없었으며, 회사의 관리체계는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야심차게(?) 내놓은 애드워즈는 그다지 커다란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고, 비용을 수반하는 쓸데없는 트래픽만 자꾸 늘어나면서 과연 구글이라는 회사가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비관론마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나마 해를 넘겨 2001년 1월에 애플, 썬 마이크로시스템스 등에서 운영 부사장으로 일했던 웨인 로징(Wayne Rosing)을 뽑으면서 엔지니어의 문화를 존중하지만 관리가 가능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중책을 맡게 됩니다.
에릭 슈미트와의 인터뷰, CEO 를 찾아내다.
구글이라는 회사의 CEO 를 찾는 작업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지만, KPCB 의 존 도어에게는 구글의 CEO 로 적임자로 떠오른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존 도어의 절친한 친구였던 에릭 슈미트(Eric Schmidt) 입니다. 에릭 슈미트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가 한창 잘 나가던 시절 CTO 로 일하다가, 더욱 큰 꿈을 안고 노벨(Novell)의 CEO 로 적을 옮기게 되는데,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와는 달리 노벨에서는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가 합류했을 때 노벨의 4분기 매출은 목표액에 1,460만 달러나 적었고, 경영진들은 이를 분식회계로 메꾸는 방법을 제안하지만, 에릭 슈미티는 그대로 발표하기로 하고 노벨의 주가는 곤두박질치면서 회사가 바로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큰 꿈을 안고 들어간 회사가 입사하자마자 위기상태에 들어간 것입니다.
존 도어의 추천과 함께 웨인 로징에 대한 평판을 알기 위해 세르게이 브린이 에릭 슈미트에게 전화를 해서 장시간 통화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구글에 잠시 들르기로 합니다. 2000년 12월, 에릭 슈미트는 약속대로 구글을 방문합니다. 2000년 당시 구글이 사용하던 건물은 마운틴 뷰의 빌딩21 이었는데, 이 건물은 에릭 슈미트가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에 재직하던 시절에 썬의 건물로서 일하던 건물이었기 때문에 회사는 달랐지만 장소라는 측면에서는 고향을 방문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CEO 인터뷰를 위해 일부러 만든 자리는 아니었지만, 에릭 슈미트는 존 도어에게 언질을 받은 상태였고, 또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역시 에릭 슈미트가 과연 구글 CEO 가 될만한 사람인지 알고 싶었기에, 이 때의 만남은 서로의 기싸움이 되는 중요한 미팅이었습니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에릭 슈미트를 만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그가 노벨에서 내린 결정에 대한 기술적 비판을 합니다. 노벨이 전략적으로 인터넷 속도를 높이기 위해 개발한 프록시 캐시(proxy cache)라는 기술이 결국 초고속 인터넷이 늘어나게 되면 무용지물이 될텐데 쓸데없는 곳에 투자를 해서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이 아니냐는 날선 비판을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에릭 슈미트는 자신의 논거를 앞세워 거세게 반론을 하였는데, 이런 논쟁이 무려 1시간 30분 가까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보통의 인터뷰였다면 완전히 실패했을 이런 논쟁이, 결국은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에릭 슈미트라는 사람을 구글의 CEO 적임자로 인정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에릭 슈미트 역시 구글의 이런 문화가 싫지 않았습니다. 2001년 2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에릭 슈미트에게 정식으로 구글의 CEO 자리를 제안하였고, 에릭 슈미트는 노벨의 합병을 마무리하고 구글의 CEO 를 맡는 대신 3월 부터 일단 회장의 자리에 취임을 합니다. 그해 8월 에릭 슈미트는 구글의 CEO 자리에 오르면서, 세루게이 브린이 기술부문 사장을 맡고 래리 페이지가 제품부문 사장을 맡는 구글의 3두체제가 완성됩니다. 이때 정해진 연봉과 함께, 에릭 슈미트는 1500만 주에 육박하는 엄청난 주식을 스톡옵션으로 받으면서 구글의 명실상부한 공동책임자가 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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