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런저런 이유로 미래의 교육과 관련한 강의나 글들을 많이 찾아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TED.com 에 소개되었던 켄 로빈슨(Ken Robinson)의 "학교가 창의력을 죽인다."라는 유명한 TED Talk 을 주제로 글을 쓸까 합니다. 아래에 강연내용 링크하였습니다. 상당부분 내용은 강연의 스크립트에서 내용을 따가지고 와서 블로그에 맞도록 정리하였습니다. 달리 말하면 원문이 이 강연내용이 되겠고, 한글자막 있습니다. "subtitle"에서 "Korean" 선택하시면 됩니다.
실수와 창의성과의 관계
켄 로빈슨도 이야기하지만, 저 역시도 교육에 관심이 있습니다. 아니 많습니다. 아마 한국에 사는 부모들이 이야기하는 주제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교육과 관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에는 엄청난 이해관계가 걸려있습니다. 그리고, 미래가 여기에 걸려있습니다. 현재 초등학교 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의 경우 15~20년은 지나야 그들이 이 사회를 위해 일을 하면서 무엇인가 공헌을 적극적으로 하게 될 것이고, 그로부터 30~4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은퇴하는 라이프 사이클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그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인생을 더욱 잘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를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이해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앞으로 5년 뒤의 세상도 알기 힘든데 어떻게 15~20년 앞을 내다보고 교육을 정확하게 할 수 있을까요? 참 어려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최선일까요? 바로 미지의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무한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의 재능을 찾아내 거기에 남다른 노력을 더한 사람은 누구나 대단한 성취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이런 재능을 가차없이 억누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켄 로빈슨의 강의에서 예를 든 학교에서의 일화입니다.
그림 수업에 어느 한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여섯 살이었고 교실 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선생님 말로는 다른 수업에서는 거의 집중을 안 하는 애인데 그리기 수업에서는 유독 집중했다고 해요. 선생님은 신기해서 아이한테 "너 무엇을 그리니?"라고 물어 봤더니, "신을 그리고 있어요"라고 하더래요. 선생님이 "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모르잖아?"라고 하니까 어린이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곧 알게 될 거에요!"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어떤 시스템과 프레임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추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이 강하면 모르는 것은 시도를 하지 않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런데, 보통 아이들은 이런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시도를 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못하거나 실수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없다면, 신선하고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묘하게도 성인이 될 때쯤이면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그러한 역량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뭔가 실수를 할까봐, 틀릴까봐 걱정을 하면서 살게 됩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실수에 대해서는 비난을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육제도는 실수라는 안하도록 강요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사람들의 창의적인 역량을 말살시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세계의 교육제도와 과목구성은 거의 비슷하다.
정말 묘하게도 전세계의 교육과목들과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를 보면 큰 틀에서 거의 비슷합니다. 맨 위에는 수학과 국어, 외국어 등이 있고 그 아래는 인문학, 과학이고, 마지막으로 예술이 들어갑니죠. 전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는 예술과목 사이에도 계층이 존재합니다. 학교에서는 보통 미술과 음악을 드라마나 춤보다 비중을 더 두고 있습니다. 켄 로빈슨은 어린이들한테 수학을 가르치듯이 매일 춤을 가르쳐 주는 교육제도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과도한 교육의 쏠림현상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결국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목표를 거의 대학 교수들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느냐는 분석을 내놓습니다. 특히 상위권 성적으로 졸업하는 사람들이 모두들 원하는 삶을 그런 쪽으로 유도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우리나라는 여기에 의사, 변호사 등의 전문직에 대한 선호도 높습니다. 그런데, 이런 직업의 공통점은 주로 머리로 일한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교육제도는 학습 능력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19세기 이전에는 세계 어디에도 공교육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산업사회의 수요에 의해 생긴 것들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제가 다른 포스트에서도 글을 쓴 바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과목구성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과거 직장을 구하기 위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과목들이 우위에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음악이나 미술 같은 경우 음악가나 미술가가 되면 어떻게 먹고 살려고 하냐는 말을 듣기 딱 좋습니다. 그런데, 이 역시도 공감이나 놀이와 같은 하이터치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유리한 미래에는 사실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되려 학습능력 위주로 공부만 한 사람들이 불리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둘째로 대학들이 대학의 시스템을 본떠 교육제도를 설계했기 때문에 지성은 ‘학습능력’이라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결국 모든 교육 제도들은 대학입시를 위한 절차로 전락해 버린 것이 가장 커다란 문제입니다. 결과적으로 훌륭한 재능과 창의력을 가진 사람들은 스스로가 그렇지 않다고 착각을 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학교를 다니면서 재능 있었던 것들은 별 가치가 주어지지 않았던가 심지어는 비난을 받고 이를 억누르라고 교육을 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성의 대한 3가지 시각, 그리고 질리안 린 이야기
켄 로빈슨은 지성에 대한 3가지 시각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로, 지성은 다양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관을 가지게 됩니다. 둘째, 지성은 역동적입니다. 우리의 뇌는 작은 구역들로 구획되어 있지 않습니다. 창의력이란 결국 가치를 끌어낼 수 있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서로 다르게 발달된 관점들의 상호작용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세째로 지성은 독특함입니다. 켄 로빈슨은 세기의 뮤지컬인 '캣츠'와 '오페라의 유령'의 안무를 한 질리안 린의 예를 들고 있는데 그 이야기가 상당히 많은 것을 시사하기 때문에 직접 인용을 하겠습니다.
어느 날 질리안과 점심을 같이 먹고 있었는데, "어떻게 해서 댄서가 되셨어요?"라고 물어 봤더니 흥미롭게 도, 학창 시절 때 점수가 엉망이었다고 합니다. 1930년 대였는데, 학교에서 "질리안은 학습장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라고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집중을 못하고 안절부절했다는 것인데, 오늘날이라면 ADHD(주의결핍 과잉행동장애)로 진단을 받았을 겁니다.
그래서 의사를 찾아 갔는데, 어머니와 통나무 판자로 된 방에 들어가서 의사가 어머니와 학교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20분 동안 방 한 끝에서 손을 깔고 앉아 있었어요. 문제라는 것이 숙제를 늦게 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귀찮게 굴고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얘기가 끝나자, 의사가 질리안 옆에 앉아 "어머님이 하신 얘기들 다 들었는데, 잠깐 어머님과 따로 얘기를 나누어야 될 것 같아, 잠깐만 나갈테니, 잠깐 기다려줘."라고 하고 그녀를 두고 방을 나갔어요. 그런데, 방을 나가면서 의사는 책상 위에 있던 라디오를 켜고 나갔습니다. 방을 나가자, 어머니에게 "잠깐 여기서 따님을 관찰해 보세요."라고 했어요. 방을 나오는 순간 길리안은 일어나서 음악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어요. 몇 분 관찰하다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을 해드렸습니다. "린 어머님, 질리안은 문제아가 아니고, 댄서입니다. 댄스 학교로 보내주세요."
그 후에 어떻게 되었냐고 제가 물었더니 그녀가 "결국 보내주셨어요. 얼마나 환상적이었는지 표현할 수가 없어요. 저 같은 사람들이 있는 교실에 들어 갔는데, 저처럼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사람들, 생각을 하기 위해 몸을 움직여야 되는 사람들로 꽉 차있었죠." 몸을 움직여야 생각을 하는 사람들. 발레, 탭댄스, 재즈 댄스, 모던 댄스나 현대적 댄스를 하는 사람들 이었죠. 그녀는 로얄 발레학교에 오디션을 하게 되었고, 솔로댄서로서 로얄 발레학교에서 훌륭한 커리어를 쌓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로얄 발레 학교에서 졸업을 하고, 질리안 린 댄스 컴퍼니라는 회사를 세우고, 엔드류 로이드 웨버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그녀는 역대 최고의 여러 뮤지컬을 책임지게 되었고, 수백만 명에게 즐거움을 가져왔고, 백만장자가 됐습니다. 의사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냥 약을 처방하고 진정하라고 꾸짖기나 했겠죠.
고등교육 시스템의 위기
유네스코에 의하면, 역대 대학졸업생의 숫자 보다는 앞으로 30년 동안의 대학졸업생 숫자가 더 많을 것이라고 합니다. 요즘 학위의 가치는 옛날의 가치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박사학위는 사회에서 견고한 자리를 차지하는데 보증수표와도 같았지만, 10년 전부터는 유리함은 있을지는 몰라도 보증수표의 자리는 잃어버렸고, 앞으로는 되려 안하니만 못한 경우도 많아질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투자대비 효용성이 급격히 감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전체적인 변화는 석사나 학사학위를 바라보는 관점도 바꾸어놓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교육제도의 전체적인 구조의 변화를 유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교육제도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미래를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기본원칙들에 대해 재고해봐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재능이며, 우리는 이 재능을 현명하게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창의적인 능력을 보며 그 풍부함을 깨닫고,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들이 미래에 맞설 수 있도록 전인교육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정확히 볼 수 없겠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미래를 보게될 것이고, 자신의 미래를 열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있는 교육이 정말로 중요한 교육이 아닐까요?
초등 6학년, 2학년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내부/외부 개발자를 지원하는 일을 하는 저에게 커다란 감동을 전해준 이야기입니다.켄 로빈슨 선생님은 창의력 전문가 이며 대단한 유머를 가진 분입니다.19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공교육, 창의력, 재능의 발견, 미래 만들기에 대해생각하도록 도와 줍니다. http://www.ted.com/talks/lang/kor/ken_robinson_says_schools_kill_creativity.html만일 우리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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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수업 중간중간 가지는 스트레칭과 같은 간단한 운동이 학생들의 수업에 있어서 집중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아시나요?
독일의 울름대학(University of Ulm)의 Sabine Kubesch 박사팀은 집중력이 매 30분마다 간단한 에어로빅 운동을 할 경우에 증가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수학등과 같이 집중력이 중요한 공부를 할 때에는 간단한 운동 스케쥴도 같이 집어 넣는 것이 좋다고 주장을 한바 있습니다.
뒤이어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는 인지와 학습능력에 대한 검증을 뇌의 전기적 활동을 연구함으로서 학생들의 집중력을 보다 체계적으로 검증했습니다. 이 논문은 Brain Research 2009년 5월호에 실렸는데요, 아래에 논문을 링크합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물리적인 활동과 에어로빅 운동이 건강도 증진하지만, 뇌의 인지기능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서 연구팀은 행동과학적인 임무완수와 관련한 연구와 전기생리학적인 연구를 병행했는데, 35명의 13~14세 정도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운동을 많이 하는 그룹과 적게하는 그룹으로 나누어서 조사를 하였습니다. 연구결과 운동을 많이 하는 그룹에서 CNV 수치가 높게 측정이 되었는데, 이는 작업 준비과정이 효율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N2 수치는 낮게 나왔는데, 이는 실행제어 프로세스가 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체적으로 간단한 운동이 인지기능과 처리과정을 증진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전기생리학적 연구결과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학교에서 수업 중간에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운동방법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와 같이 뇌과학 연구는 단순히 뇌의 신비를 밝혀내는 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지만, 일상생활에 응용될 수 있는 부분들도 많습니다. 학교에서 공부에 찌든 학생들을 위해, 짬짬히 스트레칭이나 간단한 운동으로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굳이 강제적인 단체활동으로 만들기 보다, 강의나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의 재량으로도 충분히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수업의 흐름을 깬다고 생각하지 말고, 20~30분 정도 진행하고 한번쯤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서 가볍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발상의 전환을 해본다면 어떨까요?
대학에 들어갔을때, 등록금도 비쌌지만 엄청난 책값에 깜짝 놀랐습니다. 전공책 한권에 몇 만원은 우습고, 일부는 추가적인 책을 더 사야 했기에 책값으로 지불되는 비용이 상당했지요. 의과대학이다 보니 특히나 책값이 비싸서, 어떤 친구들은 부모님께 책값을 올려받아 용돈을 챙긴다는 이야기도 있었구요 ...
우리나라 통계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미국의 경우 대학생들 평균적으로 교과서 구입에 사용하는 비용이 4년간 약 $1,077 달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이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교과서라고 해도, 몇 년이 지나면 바뀌는데다가 저자들도 들쭉날쭉하고 어떤 교과서가 더 좋은지도 잘 모르는 등 단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위키북스 프로젝트
교과서를 집단지성의 힘으로 공짜로 제공하겠다는 위키북스(Wikibooks) 프로젝트는 2003년에 시작되었습니다. CC(Creative Commons) 라이센스로 교과서가 많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작성이 됩니다. 현재 38,000 페이지 분량의 교과서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이 채워지지 않고 있으며, 교과서라는 특성상 비전문가 자원봉사자들에 의한 작성방식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한 논란까지 겹쳐져 생각보다는 활성화 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Flat World Knowledge
또 다른 공짜 교과서 프로젝트를 지향하는 것이 오늘 소개하는 Flat World Knowledge 입니다. 위키북스와 마찬가지로 CC 라이센스 교과서와 공부교재를 공짜로 제공하지만, 혹시라도 인쇄를 해서 책으로 보내줄 경우에는 돈을 받습니다. 저자들도 해당분야의 회사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거나, 대학교수 등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져 있어 신뢰성 문제도 위키북스와는 달리 많이 제기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실제 교과서로 채택이 되기 시작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SUNY(State University of New York)의 여러 대학들과 UW(University of Wisconssin) 등과 같은 유명대학들을 포함한 미국 내 여러 주립대학 및 사립대학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현재까지는 주로 회계와 경제, 경영, 마케팅과 관련된 교과서들이 많이 올라와 있고, 과학이나 공학 분야의 참여는 저조한 편입니다. 그렇지만, 활용도가 높아지고 동시에 MIT 등에서 참여하고 있는 OCW(Open CourseWare) 강의와 함께 맞물리면서 점점 관심도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많은 대학교수들이나 전문가들의 참여가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쉽게 교과서들을 접근할 수 있고, 무료 강의가 늘어난다면 교육의 평등화에 있어서도 큰 혁신이 일어나게 되겠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코노미스트 2009년 7월자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려서 소개할까 합니다. 보통 흔히들 별다른 의심이 없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사실 중에 "경쟁이 치열하면 일의 효율의 증가한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절대적인 진리로 신봉되는 시장의 논리도 일부 포함되어 있는 개념이죠?
그런데, 이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여기에는 경쟁과 함께 동기부여(motivation)이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의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경쟁자의 수가 늘어나면 경쟁을 포기하고 희망을 잃는 경우가 늘면서 전반적인 경쟁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미시건 대학교의 Stephen Garcia와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의 Avishalom Tor라는 행동과학자들이 2005년 미국에서 치루어진 SAT(미국판 수학능력시험) 시험의 결과를 바탕으로 분석을 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미국의 각 주마다 서로 다른 수의 학생들이 시험을 치루고, 특히 시험을 보는 장소마다 시험을 치루는 학생의 수가 다르다는 점에서 착안을 했습니다. 재미있게도 다른 요소들과는 상관없이 평균 테스트 점수가 많은 학생들이 모여서 치룬 곳일 수록 떨어진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서 SAT와는 별도로 Cognitive Reflection Test라고 하는 또다른 형태의 분석적 사고에 대한 시험을 치루었는데, 이 시험의 결과 역시 동일했습니다.
사실 이 결과를 놓고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경쟁자의 수가 많다는 것을 감지한 경우 심리적으로 위축이 되거나, 혹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집중이 잘 안된다거나 하는 정도의 해석을 해볼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두 연구자는 74명의 대학생들에게 쉬운 일반적인 상식으로 구성된 퀴즈를 정해진 시간 내에 가능한 빨리 끝내는 시험을 수행했습니다. 각각의 학생들이 혼자서 시험을 치루도록 했는데, 절반의 학생들에게는 이 시험이 10명의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100명과 경쟁을 하고 있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빨리 푸는 순서대로 상위 20%에 들면 $5 달러의 상금이 주어진다고 알렸습니다.
테스트 결과 10명과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한 학생들은 평균 28.95초에 시험을 마쳤습니다. 그에 비해 100명과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한 학생들은 33.15초가 걸렸습니다. 약 15%에 가까운 시간의 차이가 난 것이죠? 이는 단순히 경쟁자의 수가 좀더 많다는 생각만으로도 개인의 능력을 제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해석을 하자면, 경쟁자의 수가 많으면 신경을 좀 덜 쓰고, 적으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한다(?)는 해석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많은 부분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기는 하지만, 나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느낌입니다. 과연 우리 아이들의 교육이나 사회적인 이슈에 있어서 과연 시장논리에 의한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것이 진실로 효율적인 것일까?에 대한 근본적인 이슈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강남에서의 환경적인 부분, 그리고 주변의 분위기에 의해 자연스럽게 공부하고 경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도 조금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1800년대 말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당시만 하더라도 아이들도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 가서 일을 할 수 있는 중요한 노동력이기 때문 이었습니다. 그런데, 학교가 힘을 얻게 된 것은 가정에 의한 요구가 아니라,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집단화와 객관적 비인격성 등과 같은 조직의 문화를 아이들에게 세뇌를 하고 근면, 정확, 정리정돈과 같은 미덕을 가르친다면 향후 공장에서 문제를 일으킬 소지도 적고, 생산성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비즈니스맨들이 서로 연합을 해서 공동으로 학교를 설립하고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이민자들에 대한 교육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워낙 다양한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신대륙으로 몰려 들었고, 이들은 문화와 언어가 완저히 달랐기에 당연히 공장에서의 생산성은 최악을 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미국의 지배문화에 동화될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학교입니다.
학교는 안정된 정권의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결국 19세기와 20세기 학교의 역할은 청년이 된 이후 대규모 산업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양성소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고, 정부 입장에서도 젊은 혈기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거나 이들에 의해 우발적인 사고 및 범죄 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학교 시스템을 통한 대량생산식 교육은 대세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어리고 젊은 인력이 혹시라도 고용의 안정을 헤칠까 두려워했던 노동조합 역시도 이러한 대중교육과 획일화된 시스템에 동조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학교라는 시스템의 근간이 형성된 것입니다.
산업시대의 대량생산과 대중교육, 그리고 대중매체와 대중문화 등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고 당연시 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이러한 산업혁명 이후 산업사회의 몰개성적인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인터넷과 "웹 2.0" 철학이 가져오고 있는 변화의 물결은 단순히 몇몇 회사들의 위기와 미디어의 변화 정도 만으로 바라볼 수 없는 심각한 근본적인 화두를 담고 있습니다.
이제는 개인의 역량이 중요한 시대 ...
미래의 세계에는 창의적인 인재를 필요로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시도를 해 보아야 합니다. 현재의 학교 시스템과 사교육 열풍에 의해 공장형으로 똑같은 인재상을 찍어내는 풍토가 얼마나 갈까요? 결국 20년 뒤에 어떤
사람들이 더 성공했고, 본인들이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는지에 의해서 결론이 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들부터 공부를 해야하고
동시에 아이들의 재능을 파악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유심히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재능이 파악되었다면 이를 어떻게
키워줄 수 있으며, 과연 아이들이 커서 어떻게 자신들의 경제적인 안정과 행복한 생활을 모두 거머쥐면서 살아가게 될지를 먼저
고민해야 될 것입니다. 이제는 정보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아이들의 재능을 꽃 피우게 할 방법과 이렇게 가지게 된 재능을 어떤
방식으로 생업(?)으로 연결시킬 것인지에 대해 부모도 같이 고민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생업과 직업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아이가 좋아하는 분야와 해당 재능만으로는 안될 것입니다. 소통능력이나 사회관계, 경제에 대한 개념, 또는 과학이나 수학
같은 것들이 필요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아이들은 자신들의 꿈을 위해 공부를 해야하는 당위성을 파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공교육 시스템이 필요없고, 이를 무너뜨리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학교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이러한 의도에 의해 시스템화 되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창의성과 능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이들 스스로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와 시간, 그리고 부모를 위시한 주변사람들, 그리고 앞으로는 인터넷에서 만나게 될 소셜 네트워크의 친구들입니다. 이들에게 보다 큰 자유와 자유로운 미래상을 그리도록 허영해 주는 것이, 무조건적인 공부를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아이들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 아닌지 고민해 봅니다.
P.S. 그래도 저도 학교에서 아들래미가 안 좋은 성적표를 들고오면, 버럭 화를 내게 되더군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