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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한반도를 지나가는 지난 새벽 애플에서 iOS 4.1과 4.2, 차세대 아이팟 터치와 아이튠즈 10, 아이팟 나노, 그리고 새로운 콘텐츠 렌탈 판매모델과 애플TV 등 여러 가지 새로운 소식이 나왔습니다.  지금 한창 각각의 제품이나 기능 등에 대한 분석이나 이야기들이 활발하게 나오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제 애플의 세계정복 전략의 패가 거의 다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이죠.  과연 그들의 의도대로 세상이 굴러갈 것인가?  아니면, 생각과 달리 연합군(?)의 반격이 매서워지면서 균형을 이루느냐 그것은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애플의 전략과 의도, 그리고 이들이 얼마나 무서운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을 듯 합니다.  앞으로 수년 간만 애플의 의도대로 시장이 반응한다면 정말 1984 광고를 할 때의 "Big Brother"로 성장한 애플을 우리가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와 같이 자중지란에 서로의 이익만 쫓는 조각난 파트너십으로 대응한다면 그들의 전략이 현실화될 수도 있음을 강력히 경고하고자 합니다.


애플,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소셜과 디지털 콘텐츠 마켓을 포함한 시장지배자의 자리를 노린다.

애플은 그동안 하드웨어에서 매출과 높은 이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마켓과 서비스 시장을 활용하는 전략을 썼습니다.  아이팟을 처음 내놓고, 아이튠즈에 디지털 음반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이들의 전략은 일단 콘텐츠를 들고 있는 곳(아이팟의 경우는 소니, EMI, 유니버설 등)을 설득해서 이들에게 디지털 시대에 맞는 적절한 수익모델을 보장하면서 자기편으로 끌어들입니다.  아이팟 당시에는 MP3 공유 사이트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음반사들을 우군으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는데, 그와 함께 소비자와 음반사들 사이에 지나치게 벌어져 있는 간극 (음반사들은 CD 전체로 파는 것을 고집, 소비자들은 MP3 다운로드)을 디지털 싱글을 간편하게 한 곡 단위로 판매하는 타협안을 제시함으로써 훌륭한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승승장구를 시작합니다.

아이폰을 개발하면서는 아이튠즈라는 훌륭한 중앙시장에 소프트웨어 유통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합니다.  이제는 수많은 개발자들이 많들어낸 프로그램을 콘텐츠로 하여 가장 활발한 마켓 플레이스로 아이튠즈를 재정립합니다.  이것이 바로 앱스토어 입니다.  아이패드는 어떤가요?  디지털 콘텐츠 마켓플레이스로서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아이북스를 앞세우면서 전자책과 동시에 콘텐츠 앱이라는 새로운 쟝르를 활성화시키면서 수많은 잡지사, 출판사와 미디어 그룹, 방송사 등을 자신의 우군으로 끌어들이면서 화려하게 개인용 멀티미디어 콘텐츠 소비 시장을 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애플TV를 소개하면서 새로운 비디오 스트리밍 마켓을 열었고, 이를 전체적으로 관리하기 좋도록 아이튠즈 10을 업그레이드 하였습니다.  단돈 $99 달러에 애플TV를 사면 다양한 커넥터를 이용해서 어떤 TV에나 연결이 가능하고, 아이패드에 저장된 영화 등을 간단히 볼 수 있으며, 동시에 애플TV의 저장기능을 없앰으로써 불법복제와 유통에 민감한 TV 제작사와 헐리우드 등을 파트너로 끌어오고 있습니다.  일단 스티브 잡스의 영향력이 강한 ABC와 구글을 워낙에 싫어하는 폭스를 파트너로 삼았는데, 이들의 비즈니스가 잘 된다면 다른 곳들도 속속 합류하는 모양새를 띠게 될 듯 합니다.

결국 아이튠즈를 음악과 소프트웨어, 그리고 책과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와 TV 구독을 대체할 수 있는 종합마켓으로 업그레이드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야망은 이렇게 단순한 수준을 넘는 것 같습니다.


애플, 소셜까지 집어삼키고 전자상거래까지 진출할 듯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소수의 포탈 들이 위력을 떨칩니다.  왜일까요?  결국 군소의 수많은 개미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인터넷의 공로이지만, 이렇게 접근성이 뛰어나지면 사람들이 너무 많은 정보와 선택에 남겨져 있기 보다는 가능하면 간편하게 접근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곳을 찾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른 마켓에 들르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구매하기 위해서 아이튠즈를 들르기만 하면 모든 것을 찾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그 평가를 듣고 동시에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만든 것이 바로 애플이 발표한 Ping 이라는 소셜 서비스의 정체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보통이라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활용하면서 기존의 바이럴 인프라를 이용하고자 할텐데 애플은 과감하게 자사의 서비스를 내놓았습니다.  당장은 이 서비스가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게 될 곳은 마이스페이스(MySpace) 입니다.  주로 뮤지션들을 중심으로 음악을 퍼뜨리고, 이들을 좋아하는 팬들이 활동하는 무대로 자리잡고 있는 마이스페이스의 경우, 가장 커다란 음악 소비처가 되고 있는 아이튠즈에서 제공하는 소셜 서비스를 외면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음악을 소비하는 젊은이들도 친구들과 쉽게 음악을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아이튠즈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잡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문제는 그 뒤입니다.  결국 애플은 충성도가 높은 고객들이 자연스럽게 소셜 그래프를 만들 것으로 보고, 이들이 음악 뿐만 아니라 각종 앱이나 책, 그리고 멀티미디어 콘텐츠와 영화 등에 이르는 다양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거리를 던져주고, 추천하면서 동시에 소셜 서클까지 만들어가는 것을 지원하면서 점점 사용시간이 여기에서 늘어나게 되면 훨씬 다양한 소셜 웹 서비스를 지원하면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공격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물론 그 정도 단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추천과 관련한 인프라를 중심으로 그 영향력은 충분히 키워갈 수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애플의 지지자들의 끈끈한 소셜 서클을 구성하고 이들 간의 강력한 소셜 서비스를 하나씩 제공하면서 전부들 애플 월드에 들어와서 살게 만듭니다.  물론 무척이나 편리하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로 모든 것을 간단히 처리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강력한 소셜 네트워크를 가지게 되고, 이들을 바탕으로 간단히 바이럴 마케팅과 영업이 가능해지며,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중앙집중형 마켓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음은 뭘까요?  이제 애플 아이튠즈에서 아마존의 웹 서비스와 같은 개방형 API를 내놓거나 입점가능한 마켓 플레이스만 열면 무엇이 될까요?  아이튠즈는 거의 모든 물건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바뀔 수 있게 될 것입니다.  Ping 을 통해 여러가지 상품에 대한 평이 오가고, 추천을 할 수 있고,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거래가 활성화된다면 많은 상점들이 입점하게 될 것이고 이들은 아이튠즈에서 편안하게 장사를 하게 됩니다.  아마존도 위기입니다.


하드웨어와 유통을 동시에 이용하여 뭉치지 못하는 연합군을 친다.

시장경제 논리에 따르면 이렇게 잘하는 곳이 잘 나가는 것에 문제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과연 애플의 이런 성장이 소비자들에게 중장기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례로 애플은 초기에 아이팟을 성장시킬 때 소니, EMI 등과 협력을 하면서 가격결정권 등에 대해 최대한 콘텐츠를 가진 곳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떨까요?  이제는 애플이 거의 모든 권한을 가지면서 쥐고 흔듭니다.  왜?  경쟁이 없기 때문이죠.  전세계 디지털 음원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한 아이튠즈는 2004년 정도만 하더라도 잘 나가던 랩소디(Rhapsody) 등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사실 상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서비스 유통에서 자신들의 마진을 적게 가져가더라도 하드웨어만 좋은 가격에 팔면 되기 때문에 일단은 아이튠즈에서의 소비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해주면서 권력을 쥐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하드웨어 판매로 막대한 이득을 내던 애플은 아이폰을 내면서도 비슷한 전략을 펼칩니다.  하드웨어로 승부를 하되, 소비자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앱 스토어와 아이튠즈의 서비스를 바탕으로 시장을 장악합니다.  애플의 아이폰 하드웨어의 판매를 통한 이익에는 우리가 정확히 계산할 수 없는 앱 스토어에 올라가 있는 많은 앱들의 기회적인 가치들이 잘 녹아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던 애플이 아이패드부터 전략을 약간 수정합니다.  $499 달러 (16G모델, WiFi모델) 라는 지금까지의 애플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저가(물론 그래도 다른 회사들의 저가전략 수준은 아니지만)로 내놓으면서 아이튠즈의 콘텐츠 시장을 키울 가능성을 조금씩 비추더니, 이번에는 애플 TV를 $99 달러에 내놓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이패드의 저장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플레이할 수 있는 연계전략을 펼치고, 애플 TV에 HDMI 를 포함한 다양한 TV와의 연결옵션을 제공하는데, $99 달러라면 다중 연결단자의 가치로만 봐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이렇게 되면 굉장히 쉽게 사람들이 아이패드에 저장된 동영상을 보겠다는 생각만으로도 살 수가 있고, 또한 가끔씩 출시된 영화를 비교적 저렴하게, 그리고 아주 간단히 스트리밍으로 볼 수가 있게 되면서 누구나 한 대 정도씩 가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애플TV가 하드웨어에서 돈을 벌 수 있을까요?  물론 좀 벌겠지만, 여기서는 디지털 콘텐츠 마케에서의 수수료 비중이 커지게 됩니다.  콘텐츠 마켓은 소프트웨어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마켓이기 때문에 이 경우의 매출구조 및 비즈니스 모델의 형태는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아이팟터치를 거의 아이폰 4와 유사하게 내놓았습니다.  이 역시 어찌보면 아이폰 4의 수요를 잠식할 수 있는 자기잠식적인 선택인데, 페이스타임을 포함하여 아주 쓸만한 휴대용 인터넷 기기로서 자리매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기기가 된다면 페이스타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멀티미디어 콘텐츠 비즈니스와 소셜을 엮어내는 것에 박차를 가한 셈입니다.  결국 하드웨어 부분에서의 수익화 전략을 거대한 유통마켓 장악 전략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할까요?  생각보다 연합군은 협력을 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거대한 물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애플은 ABC와 폭스를 끌어들였는데, 이들이 이익을 내기 시작하고 콘텐츠 유료화의 가능성이 보인다면 아직 들어오지 않은 많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곳들이 결국 이 마켓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면서 그 시장이 무섭게 크게 될 것입니다.  일단 아이튠즈 디지털 음악과 같이 점유율이 높아지면 이들은 이제 가격결정권을 포함한 애플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저작권을 가진 콘텐츠 업체들이 구글 TV와 협력하고 있지 않은 것은 지나치게 제조업체들의 자율성이 높고, 이들이 저장공간을 많이 가진 장비를 통해 다양한 불법복제가 가능한 방식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터넷에 직접 연결이 된다는 측면에서 구글 TV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리라 생각하고 독자적인 생존방안을 모색하고 싶은 거겠지요.  그러나, 이런 식으로 적전분열을 한다면 결국 애플에게 모두 잡아먹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결국 콘텐츠 업체들도 디지털 음악에서 그랬듯이 애플에게 모든 제어권을 내주게 되고 끌려다니게 되겠지요 ...

또한, 애플은 패를 2가지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저가 하드웨어 공세를 통해 제조사들을 압박할 수도 있고, 마켓에서의 충성도 높은 소비자들을 활용해서 저가의 콘텐츠 서비스 전략으로 콘텐츠 업체들을 압박할 수도 있습니다.  매출구조가 양쪽에서 나오고 비즈니스 모델이 복수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른 유연한 전략을 가져갈 수 있는 것입니다.  상황의 전개에 따라 적절한 전략을 들고 나오리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제조업과 서비스, 그리고 콘텐츠를 가진 곳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다르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어느 한쪽의 협업고리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인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면 애플천하가 될 수 있다.

애플의 시나리오와 같이 모두들 협력하는 협업모델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가치에 기반하여 많은 사람들이 애플을 선택하면서 독점적 지위를 여러가지 분야에서 가지게 된다면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능가하는 무서운 공룡을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소비자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업도 독점의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소비자들에게는 독으로 돌아옵니다.  그런 측면에서 구글 연합군과 마이크로소프트 연합군, 더 나아가서는 페이스북, 트위터, 아마존, 그리고 삼성전자 LG전자, 소니 등과 같은 시장지배적인 플레이어들이 서로 지금과 같이 따로 놀면서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는 생각만 한다면 결국 애플의 커다란 전략적 접근에 대해 우위를 가져가기 힘들게 될 것입니다.  

다행히 국내에는 아직 아이튠즈가 소프트웨어 앱 부분을 제외한 음악이나 책 등의 디지털 콘텐츠의 주도권이 국내업체들에게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와 같이 서로 지리멸렬한 상태로 따로 주머니를 차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나누는 대승적인 협업구조와 개방형 구조가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애플의 야망이 국내에서도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무서운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기를 바라지는 않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요즘의 소비자들은 냉정합니다.  전체를 읽어내고 이에 대비하는 혜안들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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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터앤미디어의 생각

    Tracked from tattermedia's me2DAY  삭제

    <애플의 세계정복 전략, 그 전모를 드러내다> 결국 아이튠즈를 음악과 소프트웨어, 그리고 책과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와 TV 구독을 대체할 수 있는 종합마켓으로 업그레이드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야망은 이렇게 단순한 수준을 넘는 것 같습니다.

    2010/09/02 17:26
  2. Hwan의 생각

    Tracked from drshawn's me2DAY  삭제

    애플이 미국 시장을 지배하게 되더라도 사실상 유료 컨텐츠 가격이 초염가인 국내에는 진출이 어렵죠.

    2010/09/02 17:46


닷컴 버블이 붕괴한 다음 해인 2001년은 많은 뉴스와 사건이 있는 해 입니다.  그 중에서도 애플이 완전히 회사의 비젼과 전략을 새롭게 만들면서, 환골탈태하는 해가 되는데 오늘의 IT 삼국지는 애플의 새로운 운명을 결정하는 2001년 맥월드에서 스티브 잡스가 발표한 "Digital Hub"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같은 해, 이 전략을 바탕으로 애플은 애플스토어(Apple Store), 아이팟(iPod) 등과 같이 과거 수십 년간의 애플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도약하는 실질적인 성공사례들을 만들어 내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애플이라는 회사의 대성공을 이끌어내는 기반이 됩니다.


최악의 실적을 발표한 이후, 미래를 이야기하다.

스티브 잡스가 1997년 복귀이후, 파산하던 애플을 구해내었고 동시에 아이맥의 선전으로 다시 잘 나가는 것으로 보였던 애플에게도 2000년의 닷컴 버블은 극복하기 어려운 시련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CEO 로 복귀한 이후 처음으로 2001년 1월 $2억 4700만 달러에 이르는 분기손실을 보고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주력 제품이었던 큐브 파워맥 제품의 판매부진으로, 비교적 고가였던 이 제품이 닷컴 버블현상과 맞물리면서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것이 고스란히 애플에게 커다란 타격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애플의 미래를 위해 준비한 2001년 1월의 샌프란시스코 맥월드 기조연설은 향후 애플의 향방을 좌우한 중요한 자리가 됩니다.  특히, 2000년 닷컴 버블을 언급하면서 "1976~2000 PC의 전성기가 끝났다" 라는 의미의 묘비를 올린 슬라이드는 굉장히 유명합니다.  그러나, 이 연설에서 그는 PC 의 첫 황금기인 스프레드시트, 어드프로세서, 전자출판 등에 의한 생산성 혁신의 시대에서 인터넷을 거쳐 이제는 디지털 기기들의 증가와 이에 따른 디지털 라이프스타일(Digital Lifestyle)의 시대로 접어들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이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디지털 허브(Digital Hub)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애플은 이 전략을 실천하기 위한 일환으로 같은 해 아이팟을 내놓게 되며, 디지털 허브를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온-라인 서비스와 연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겸 서비스를 추진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애플의 모든 제품군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허브의 역할을 하는 아이튠즈(iTunes) 입니다.  이 날의 기조연설은 이후 애플의 전략을 설명하는 기초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커다란 의미를 가집니다.  아래 유튜브 영상이 화질이 좋지는 않지만, 이 때의 연설 중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는 부분을 뽑아낸 것이므로 시간되시는 분들은 꼭 한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같은 해 CES 에서 빌 게이츠 역시 이와 유사한 전략을 이야기 합니다.  바로 디지털 라이프스타일(Digital Lifestyle) 이라는 것이 그것으로 이후 따로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PC 세상에서 벗어나 콘솔 게임기 시장으로의 진출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면서 XBox 를 선보입니다.  또한, Ultimate TV 라는 이름의 새로운 TV 기술과 다양한 임베디드 장치들을 위한 윈도우 CE(Windows CE)에 대한 지원을 발표합니다.  


이와 같이 같은 시기에 거의 같은 이야기를 하였지만, 애플은 디지털 허브 전략에 맞추어 2001년 부터 차근차근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그리고 유통에 이르는 전 영역에 걸쳐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들을 내놓게 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XBox 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운영체제를 중심으로 전략을 가져가는 한계점을 보입니다.  물론 윈도우 CE가 한동안 유행을 타면서 잘 나가는 듯이 보였지만, 최근의 결과를 보면 거의 비슷한 비전을 보였음에도 그 완성도와 소비자 중심적인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였던 애플이 PC 시장에서의 결과를 뒤집고 한발 앞서나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듯 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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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애플이 디자인의 혁명을 일으킨 기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그 자리에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조너던 아이브(Jonathan Ive)가 있습니다.  오늘의 IT 삼국지는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 최고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세기의 디자이너, 조너던 아이브가 주인공입니다.   


애플의 디자인 심장, 아이맥을 탄생시키다.

조너던 아이브는 1967년생으로 아직도 절정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가 만들어갈 디자인의 혁신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도구와 재질, 그리고 제작 프로세스를 과감하게 시도하면서 혁신적인 디자인들을 내놓았고 성공을 시켜 왔습니다.  1998년의 아이맥이라는 컴퓨터 디자인의 역사적인 제품을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아이북과 파워북 G4, 아이팟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히트작들을 성공시키면서 전세계 산업 디자이너들의 모법이 되고 있습니다.

조너던 아이브는 1967년 런던에서 태어나, 뉴캐슬 폴리테크닉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그 뒤에 탠저린(Tangerine)이라는 회사를 공동으로 설립해서 파워 툴부터 텔레비전에 이르는 다양한 디자인 컨설팅을 하기 시작했는데, 1992년에 그의 고객이었던 애플이 그를 스카웃하게 되면서 애플과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가 애플에서 일을 시작할 때에는 그렇게 큰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다양한 제품개발팀에 들어가서 일을 했지만, 뉴톤(Newton)과 같이 성공하지 못한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었고, 기본적으로 애플이 당시에 쇠락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재능을 펼쳐볼 기회를 잘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애플을 재건하기 위해 스티브 잡스가 다시 복귀하면서 부터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조너던 아이브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보고, 애플의 부활을 이끌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였던 아이맥 디자인의 전권을 그에게 맡깁니다.  스티브 잡스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서 얼마나 그가 조너던 아이브를 신뢰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이맥이 전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아이맥을 디자인한 조너던 아이브는 단숨에 전세계 디자이너들을 찬사를 한 몸에 받게 됩니다.




조너던 아이브와 그의 디자이너팀은 언제나 위계질서보다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문화 속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탄생시켰습니다.  조너던 아이브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에 흥미가 많았다고 합니다.  특히 물건들이나 여러 종류의 제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동작하는지, 그리고 어떤 재질로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아서 항상 그림으로 그리고, 그린 것을 실제로 만드는 작업을 즐겼습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결국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쉽지 않았던 애플이라는 회사에 대한 적응

조너던 아이브가 애플에 입사하게 된데에는, 또 하나의 전설인 하르트무트 에슬링거의 맥(Mac) 디자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거의 컴맹 수준으로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했는데, 대학을 다닐 때 맥을 발견하고 엄청난 감화를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결국 세기의 디자이너들이 맥을 사이에 두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교감을 나눈 것이지요.  그 장면이 눈에 선하지 않습니까?   그 뒤로 조너던 아이브는 애플에 대해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차에 애플에서 입사하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으니 만사를 제쳐놓고 애플로 들어간 것입니다.


조너던 아이브의 아이맥에 이은 히트작, G4 Cube (2000)


그렇지만, 조너던 아이브의 애플 적응은 그다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원래가 자유로운 디자이너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디자인 컨설팅을 하던 그가 갑자기 심오한 제품기획과 풀타임으로 회사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특히, 기술적으로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자유로운 디자인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나 그가 애플에 입사했을 당시, 애플은 사세가 기울고 있었습니다.  초창기 애플의 정체성과 목표를 잃고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난파선과도 같은 신세였지요 ...   

그러다가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면서 상황은 극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애플의 정체성과 핵심가치를 먼저 확립하는 작업을 시작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다른 회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접근방법을 통해 디자인과 혁신을 바탕으로 회사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조너던 아이브의 재능도 빛을 발합니다.


자신의 팀과 파트너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디자이너들이 회사를 자주 옮기는 데에 비해, 조너던 아이브는 상당히 오랜 시간 애플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애플하고만 일을 하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애플의 디자인팀 뿐만 아니라 개발, 마케팅, 영업팀까지도 같은 문제를 풀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는 문화에 의해 자신의 디자인이 탄생하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디자인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애플의 일부로서 자신의 디자인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조너던 아이브는 애플의 디자인 팀이 거의 하늘에서 내린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할 정도로 강한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핵심 디자인팀을 작게 유지하면서 첨단 도구와 프로세스에 많은 투자를 함으로써 협업의 강도를 높이는 전략을 쓰고 있는데, 커다란 스튜디오에 강력한 사운드 시스템으로 디자인 영역을 지원한다고 하니 상당히 독특합니다.  거의 개인 공간을 주지않고, 큰 공간을 공동으로 쓰면서 끊임없이 토론과 회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식으로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2002년형 아이맥


조너던 아이브는 애플의 디자인에 있어서 새로운 재질과 프로세스, 그리고 제품 아키텍처의 혁신이 핵심에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폴리머 기술이 발전하자, 이를 이용한 다양한 기능성을 갖춘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아이맥입니다.  그리고, 프로세스에서 트윈슈팅(Twin shooting) 기법이 나와서 서로 다른 플라스틱을 동시에 사출할 수 있게 되자, 이 기술을 도입해서 만든 디자인이 바로 아이팟(iPod)입니다.  최근에는 레이저를 이용한 접합과 혁신적인 접착제 등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언제나 새로운 재료와 재질, 그리고 프로세스 및 기술의 발달을 끊임없이 도입하고 테스트하면서 탄생한 애플의 디자인은 단순한 미술적 디자인이 아닌 기술과 디자인의 총체적으로 만나 만들어진 결정체인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 이후의 후계 구도를 따질 때, 조너던 아이브(Jonathan Ive)가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것은 바로 이런 그의 카리스마와 창의성 때문입니다.  비록 스티브 잡스와 같은 강렬한 카리스마나 커다란 흐름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이지만, 그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애플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애플의 정체성을 확립하였고,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은 가지고 있지 못한 최고의 차별적 존재가 바로 조너던 아이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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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국지, 오늘은 1997년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의 위기극복 이야기 입니다.  


파산직전의 애플을 구하라!

앞선 포스트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기 이전의 CEO 였던 길 아멜리오(Gil Amelio)는 세간의 일반적인 평가와는 달리 그의 업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욕을 먹을만큼 먹을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을 만들어 놓았지만 결국 애플의 재도약을 위한 밑바닥을 충실하게 깔아놓은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사임과 스티브 잡스의 복귀에 대해서 스티브 잡스가 정치적인 공작을 통해 길 아멜리오를 쫓아내었다는 설과 이사회가 길 아멜리오보다 스티브 잡스에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으면 애플의 중흥이 불가능했었던 것이라는 해석이 팽팽하게 갈립니다만, 어찌 되었든 초창기 어려울 때 애플의 현금흐름과 NeXT의 인수, 그리고 뒤를 이은 구조조정까지 가장 어렵고 하기 싫은 일들을 혼자서 지휘하고 떠나게 된 길 아멜리오의 역할은 반드시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길 아멜리오를 사퇴시킨 애플의 이사회에게는 스티브 잡스 이외에 CEO 를 맡을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사회에서는 스티브 잡스에게 CEO 를 맡아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를 거절하다가 앞에 '임시'라는 타이틀을 단다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합니다.  그로부터 6개월 정도 CEO 직무대행체제로 운영되던 애플은 공식적으로 이사회에서 1997년 8월 스티브 잡스를 iCEO(interim CEO, 대행 CEO)로 임명합니다.  
그렇지만, 당시의 애플의 상황은 정말 좋지 않았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애플이 앞으로 1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고, 과연 쓰러져가는 공룡에게 처방할 수 있는 약물이 있을 것인가?를 모두들 의심하였습니다.  잡스가 CEO의 업무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수익성과 향후 전망이 없는 사업들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애플은 40가지가 넘는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매킨토시 제품군도 굉장히 많았고, 노트북 라인인 파워북, 그리고 심지어는 잉크젯 프린터와 뉴턴(Newton)과 같은 PDA 제품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들 중에서 시장을 주도하는 제품이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엔지니어들이 너무나 우대를 받고 지나치게 자신이 하고싶은 프로젝트를 무작정 진행하는 관행이 보편화되면서 실제로 실현될 수 없는 이상적인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고, 이는 회사의 문화의 왜곡과 함께 실질적인 비용부담으로 다가오면서 애플을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뜨리고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자마자 한 일은 모든 제품과 인력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반드시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상명하달 방식의 구조조정 보다는 모든 제품과 프로젝트에 대해 자신과의 면담과 토의를 거쳐 자신들이 직접 필요없는 프로젝트는 폐기하는 유연한 정리방법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이사진 중에서 대부분을 자신의 사람들로 교체를 하면서 자신의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세력들을 없애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이미 NeXT 에서 자신의 수족들처럼 일하던 사람들을 애플의 요직에 배치하는 작업은 길 아멜리오가 CEO 로 있을 당시에 그에게 조언을 하면서 이미 마친 상태였는데, 영업 총책임은 데이비드 마노비치(David Manovich), 하드웨어는 존 루빈스타인(Jon Rubinstein), 그리고 소프트웨어 부분은 에이비 테바니언(Avie Tevanian)이 담당하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빅딜을 성사시키다.

다음으로 당장 눈앞에 다가온 회사의 재정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단기적으로 애플이 살아남기 위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자존심을 굽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를 찾아갑니다.  불과 수개월 전 길 아멜리오가 같은 이유로 자신을 찾아왔을때 그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했던 빌 게이츠지만 이번에는 전향적인 태도로 스티브 잡스를 만났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오래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윈도우에 대한 특허권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윈도우에 대한 특허권 침해소송을 취하할 것이니, 마이크로소프트가 맥 운영체제에서 동작하는 오피스 프로그램을 개발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여기에 과감하게도 애플에 마이크로소프트가 투자해 달라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비록 금액이 크지는 않더라도 좋으니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에 투자를 한다면 애플에 대해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상당수 긍정적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에 착안을 한 제안이었습니다.  이때 빌 게이츠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맥 OS 의 기본 브라우저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채택해달라는 요구였고, 스티브 잡스는 이를 받아들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는 당시 가장 중요했던 브라우저 전쟁에서 넷스케이프에 승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였고, 이 조건이 받아들여지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주저없이 스티브 잡스의 조건을 받아들입니다.  빌 게이츠는 과거와는 달리 이렇게 스티브 잡스가 겸손한 제안을 해온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맥에서 동작하는 오피스를 개발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동시에 애플에 $1.5 억 달러를 투자합니다.  

애플이라는 회사의 규모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자금여력을 감안할 때 이 정도 금액은 정말 형식적인 것이 불과했지만, 주식시장은 뜨겁게 반응합니다.  애플의 주식은 30% 이상 급등을 하였고, 애플은 파산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이때 마이크로소프트가 거액을 투자해서 애플의 주식을 많이 매입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지금 그 때를 뒤돌아보면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하면 좋았을 걸 ... 하는 후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매킨토시 클론의 중단과 새로운 공급시스템의 정비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해서 가장 먼저 손을 본 것 중에 하나가 전전임 CEO인 마이클 스핀들러가 PowerPC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허용한 매킨토시 시장의 클론허용 정책을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매출은 줄어들었지만, 전선을 윈도우 계열의 컴퓨터들로 단일화하면서 시장의 장악력을 강화하는데 성공합니다.  또한, 당시 애플에게 CPU를 공급하던 IBM과 모토롤라를 경쟁시키면서 보다 좋은 조건에 부품을 조달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제품의 전반적인 라인업도 정비하면서 제품의 종류가 줄어들어, 제품공급 라인이 단순해진 것도 커다란 변화가 되었습니다.  40개가 넘던 제품군은 4~5개 정도로 줄어들었고, 이런 변신은 단기적인 매출감소를 불러왔지만 수익성을 현저히 개선하는데에는 성공합니다.  그 중에서도 존 스컬리가 시작하여 애플의 신성장동력으로 장기간 공을 들여온 PDA 프로젝트인 뉴톤(Newton)을 정리한 것을 두고 애플의 팬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반발을 하였지만 이를 강행합니다.  그렇지만, 이 팀에서 일하던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중용하였습니다.  뛰어난 엔지니어들이라고 판단을 하기도 하였고, 이후 자신이 구상한 최고의 제품에 이들을 투입하려고 했기 때문인데, 이들이 향후 애플의 중흥을 이끄는 제품의 하나인 아이북(iBook)을 탄생시킵니다.  그리고, 그 팀에서 정말 애플을 구원하게 되는 소중한 보석과도 같은 인재를 발견하고 중용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애플의 디자인 심장으로 불리는 조너던 아이브(Jonathan Ive) 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더욱 자세한 이야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뒤를 이어, 마이클 스핀들러가 만들어 놓은 '저렴한 애플 매킨토시'라는 제품군들을 모두 정리하고, 애플의 제품은 가격이 비교적 높아도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가진다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애플의 고전적인 컨셉을 부활시켰습니다.  이러한 스티브 잡스의 정책들은 즉시 효과를 나타내면서 1년 만에 재고가 1/4로 감소하는 성과를 가져오며, 1997년 11월 출시한 전문가용 그래픽 컴퓨터를 모토로 등장한 파워맥 G3는 1년만에 100만 대가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하며 애플이 파산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는 일등공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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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국지, 오늘의 주인공은 마이클 스핀들러(Michael Spindler)에 이어 애플의 CEO 로 선임되어, 이후 스티브 잡스가 복귀할 때까지 애플을 지휘하는 길 아멜리오(Gil Amelio) 입니다.  그는 가장 과소평가 받은 애플신화의 주인공입니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애플의 중흥기는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반도체 회사의 사장, 애플의 이사가 되다.

길 아멜리오는 내셔널 반도체(National Semiconductor) 출신입니다.  적자회사를 흑자회사로 반전시킨 CEO 로서 애플은 그들의 중요한 고객이자 협력업체의 하나입니다.  특히 연구자로서도 스캐너와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의 기본이 되는 CCD(Charge-Coupled Device) 기술을 처음 발명하는데 관여를 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에게 애플은 이사회의 멤버 중의 한명이 되어주기를  제안하였고, 길 아멜리오는 이를 받아들여 1994년 애플의 이사가 되었습니다.

2년간 마이클 스핀들러가 CEO 직을 수행하는 것을 보면서, 애플이라는 회사의 경영 난맥상을 지켜보면서 많은 비판의 소리를 내던 그는, 1996년 2월 애플의 공동설립자 중의 한 명인 마이크 마큘라(Mike Markkula)의 지지를 등에 업고 애플의 CEO 로 500일간 일을 하기로 하고, 이후 커다란 보너스와 연임과 관련한 평가를 이사회에서 받기로 합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들을 애플의 임원들로 입사를 시켜서, 애플의 새로운 미래에 대한 전략을 처음부터 새로 짜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특히 엘렌 행콕(Ellen Hancock)을 CTO 로 기용하는데, 그녀는 IBM 에서 일한 베테랑으로 길 아멜리오를 따라 내셔널 반도체로 옮겼다가 같이 애플로 자리를 옮겨서 중책을 맡았습니다.  전략의 결론은 고급스럽고, 신뢰도가 높은 고마진의 제품을 개발해서 판매하는 것이었습니다만, 이를 위해서는 애플에게 현금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의 애플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을 정도로 취약해져 있었습니다.

기존 경영진과의 미팅은 길 아멜리오에게 상당히 충격적이었다고 합니다.  CEO 는 수주 전에 미팅을 예고하고, 미래계획에 대한 준비를 하라고 공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자신의 부서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앞으로 잘될 것이라는 근거없는 낙관 밖에는 없었고, 매분기 수백만 달러의 적자를 내고 있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이 미팅에서 아멜리오는 이 상태로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는 물론 다른 어떤 회사도 애플을 인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애플은 점차 돈줄이 말라가고 있었고, 빨리 어떤 형식으로든 매각을 하거나 자금수혈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위기에 몰리고 있었습니다.  피말리는 스케쥴이었지만 길 아멜리오와 그가 데려운 CFO 인 프레드 앤더슨(Fred Anderson)은 회사채를 발행하기로 하고, 골드만 삭스를 설득해서 총 $6억 6100만 달러에 이르는 규모의 회사채를 매각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를 통해 최소한 1997년까지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자금의 숨통을 트게 되는데, 이것이 길 아멜리오가 CEO 로서 애플에게 안겨준 최고의 성과가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위기, 출구가 없다.

당장 급한 자금문제는 해결했지만, 윈도 95의 출시와 함께 완연히 밀리기 시작한 PC 사업부문의 전망은 어두웠습니다.  거기에 새로 출시하는 제품들의 불량이 많아지고, 심각한 디자인의 오류까지 발견되면서 그동안 쌓아둔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Performa 6400 의 경우 가장 중요한 허브 맥으로 개발되어 수많은 번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컴포넌트로 구성된 최초의 미니타워 제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리얼 포트를 하나 밖에 내장하지 않아서 모뎀과 프린터를 동시에 사용할 수 없는 최악의 디자인 실수를 저지릅니다.  또한, 톰 크루즈까지 기용하면서 화려한 마케팅을 준비하고 기대를 모았던 파워북 5300은 출시를 앞두고 싱가폴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나면서 제품의 생산이 중지되는 사건과 함께 초기 선적된 1,000대의 파워북 전체가 리콜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소니에서 납품한 리튬이온 배터리가 문제가 되었던 것이지만, 애플의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힙니다.

애플의 또 하나의 걱정거리는 운영체제였습니다.  맥 OS 는 줄곧 마이크로소프트를 앞서 왔지만, 윈도 95 출시 이후에 이런 격차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다시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시스템 7 을 능가하는 혁신적인 운영체제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코플랜드(Copland)라는 코드명을 가진 운영체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시킵니다.  그러나, 애초 예정되었던 완료시기인 1995년을 훌쩍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는 완성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길 아멜리오는 500명이 넘는 엔지니어들이 작업을 하고는 있지만, 아마도 이 프로젝트는 실패할 것이라는 강한 의심과 함께 대안을 찾기 시작합니다.  첫번째 대안은 코플랜드 프로젝트와 별도로 새로운 시스템 8  운영체제를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스템 7의 업그레이드로 대안을 찾아보려고 한 것으로, 스티븐 글래스(Steven Glass)에게 책임을 맡깁니다.  


외부에서 파트너를 찾아라

다른 대안은 외부에서 수혈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길 아멜리오가 처음 구상한 것은 전격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NT 를 채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PowerPC 워크스테이션에서 동작하는 윈도 NT를 개발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윈도 NT 를 채용한다면 애플 스타일의 하드웨어만 제조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관계도 좋게 만들고, 많은 비즈니스 사용자들도 애플 제품을 구매할 것을 고민하도록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름 일리가 있는 아이디어였습니다.  길 아멜리오는 즉시 이 아이디어가 실현가능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빌 게이츠와 통화를 시도합니다.  빌 게이츠는 길 아멜리오의 생각에 즉시 화답을 하면서, 애플의 중요한 자산인 QuickDraw 를 포팅하기 위해 수백 명의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를 보내주겠다는 제안까지 합니다.  그러나, 몇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존의 맥 커뮤니티가 대부분 반마이크로소프트 진영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자신이 없었고, 또한 현재 맥 운영체제에서 동작하는 많은 소프트웨어를 새로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안으로 길 아멜리오가 생각한 것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솔라리스(Solaris) 운영체제를 채택하는 것 이었습니다.  CTO인 엘렌 행콕이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는데, 운영체제의 완성도가 높았고, 유닉스 기반의 검증된 운영체제였지만, 애플의 강점인 QuickDraw 를 솔라리스 위에서 동작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인원의 추가 투입이 불가피하였습니다.  그런데,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는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달리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을 거절하였습니다.   

이때 애플에서 쫓겨난 쟝 루이 가시(Jean-Louis Gassée)가 부각됩니다.  그는 애플에서 사임한 이후에 Be Inc. 라는 회사를 설립하였는데, 7년 동안 상업적인 제품을 내놓지 못했지만 상당히 인상적인 운영체제를 하나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BeOS 로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하였고, 무엇보다 애플 내부의 엔지니어들이 가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가시는 길 아멜리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에게 BeOS 를 이용해보라는 제안서를 제출합니다.  동시에 데모를 준비했는데, 애플의 Power 타워 맥에서 BeOS를 동작시켰는데 실행속도가 놀라울 정도여서 길 아멜리오가 탄복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시와 아멜리오 사이의 인수를 위해 생각하는 가격차이가 너무 컸습니다.  협상은 결렬되었지만, 이 이야기의 일부가 언론에 흘러들었고, 애플의 파워북 1400의 성공과 맥월드에서의 길 아멜리오의 키노트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애플에 새로운 서광이 비치는 듯 하였습니다. 


스티브 잡스와의 만남

Be 와의 협상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스티브 잡스가 움직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난 이후 NeXT 와 픽사(Pixar)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맥월드를 통해 자신의 마케팅 매니저가 엘렌 행콕과 이야기를 한 뒤에 NeXTstep 운영체제의 애플탑재와 관련한 컨퍼런스 콜 일정을 잡는데 성공합니다.

첫번째 컨퍼런스 콜 일정을 순조롭게 마친 이후에, NeXT 와 애플은 거의 매일 만나서 NeXTstep 이 맥 OS를 대체하는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합니다.  애플은 NeXT 의 수백 명의 개발자와 고객, 직원들에 대한 인터뷰를 실시하여 NeXT 가 가지고 있는 기술 및 인원들이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 긍정적인 협상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애플과 NeXT 의 만남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맥의 판매도 증가하는 좋은 소식의 와중에 길 아멜리오 개인에게 커다란 문제가 생깁니다.  길 아멜리오는 아마추어 파일럿으로 제트 비행기를 좋아했는데, 그는 Aero 라는 독립회사를 하나 설립해서 자신으 비행기 운용을 합니다.  그런데, 이 회사의 연료비용이나 유지보수 비용을 모두 애플에게 맡긴 것이 언론에 의해 집중적으로 파헤쳐지면서 도덕성에 많은 상처를 입게 됩니다.

새로운 애플의 운영체제의 자리를 놓고, 스티브 잡스와 쟝 루이 가시라는 두 명의 애플 출신 사업가들과의 담판은 1996년 12월 10일에 이루어집니다.  길 아멜리오는 두 사람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자신들의 제안을 하도록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NeXTstep 의 미래지향적인 기술들을 중심으로 설득을 하였고, 가시는 이미 데모를 통해 보여줄 것은 보여주었다면서 새로운 것은 없다는 식의 PT를 합니다.  길 아멜리오는 가시의 성의없음과 스티브 잡스의 성실한 준비를 비교해보고 주저없이 NeXT 를 파트너로 지목하고, 뒤이어 열린 이사회에서 NeXT를 인수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사회에서는 NeXT 인수가격에 대한 걱정을 하였지만, 모든 것을 길 아멜리오에게 일임하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인수결정과 함께 길 아멜리오에게 자신이 작더라도 애플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하나 마련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길 아멜리오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스티브 잡스를 새로운 운영체제와 관련한 책임을 맡기겠다고 하고, NeXT를 $4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결정합니다.  결코 싼 가격이 아니었지만, 길 아멜리오는 새로운 운영체제와 함께 스티브 잡스를 얻었고, 300명의 뛰어난 직원들과, 매해 $5천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뛰어난 소프트웨어인 WebObject와 OpenStep을 같이 얻었기에 그 비용이 결코 아깝지 않았습니다.

이런 종류의 협상은 보통 현금으로 지불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길 아멜리오는 스티브 잡스에게 애플에 대한 충성도를 요구하면서 애플의 주식 150만 주를 주고, 현금은 $1.2억 달러만 지급합니다.  협상이 거의 마무리되고 발표만 남은 순간,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새로운 엔지니어 부분 책임자로 임명하는 것을 거절합니다.  마음이 급해진 길 아멜리오는 회장인 마이크 마큘라의 자문직을 요청하게 되고, 스티브 잡스는 이를 수락하면서 애플은 NeXT와 스티브 잡스를 얻게 되었습니다.


시련의 시작, 스티브 잡스의 반란

NeXT 는 얻었지만, 애플이 치러야할 대가는 컸습니다.  길 아멜리오는 자금을 위해 상당한 수의 직원들을 정리하였고, 수익이 나지 않는 많은 프로젝트를 정리하면서 회사의 구조조정을 단행합니다.  제품 기반의 회사구조는 단순하면서도 의사결정이 쉬운 형태로 재정비되었고, 중복이 있는 프로젝트는 거의 모두 정리합니다.  이 과정에서 애플에 오래 몸을 담았지만, 더 이상 혁신의 가능성이 없는 오래된 임직원들이 대거 쫓겨나게 되는데, 한해 동안 거의 6,000명에 이르는 직원들이 정리해고 되거나 자발적으로 애플을 떠납니다.

이 과정에서 길 아멜리오는 애플 내부의 인심을 잃었습니다.  반대로, 스티브 잡스는 NeXT 의 엔지니어들을 회사의 주요한 부서에 위치시키면서 조금씩 회사를 장악해 나갑니다.  특히 CTO 였던 엘렌 행콕은 스티브 잡스의 가장 중요한 정적으로, 결국 그 자리는 스티브 잡스가 가장 신뢰하는 개발자이자 NeXTstep의 가장 중요한 마이크로커널을 개발한 에이비 테바니언(Avi Tevanian)이 차지하였으며, NeXT의 하드웨어를 맡았고, 향후 팜의 CEO를 거쳐 현재는 HP의 요직을 맡고 있는 존 루빈스타인(Jon Rubinstein)가 하드웨어 총책임자 자리에 오르도록 지원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길 아멜리오는 미국정부로부터 애플의 대주주 중의 한 명이 150만 주에 이르는 애플 주식을 팔아치웠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이 사건으로 애플의 주식은 급락을 하였는데, 길 아멜리오는 스티브 잡스를 의심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처음에는 이 사실을 부인하지만, 결국에는 길 아멜리오의 지배체제 하에서의 애플은 미래가 없어서 주식을 모두 팔았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길 아멜리오를 공격합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길 아멜리오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빅딜을 추진합니다.  빌 게이츠에게 연락을 해서 매킨토시용 오피스의 개발을 간청하고, 동시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모든 매킨토시에 번들로 도입하겠다는 나름 파격적인 제안을 하지만 빌 게이츠는 이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약속된 500일을 하루 남겨둔 애플의 CEO 로서의 499일이 되던 날, 길 아멜리오는 애플의 이사회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애플 이사회는 길 아멜리오의 연임을 허락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CFO 인 프레드 앤더슨이 적당한 인물을 찾을 때까지 임시로 회사를 운영하라는 결정과 함께 애플을 떠나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길 아멜리오는 짧았지만, 가장 어려운 시기의 애플을 최선을 다해 이끌어간 좋은 CEO 였다는 생각입니다.  초기 자금유동성 위기를 겪을 때 골드만삭스와의 회사채 발행협상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성장동력을 만들어갈 초석을 다졌고, 무엇보다 NeXT의 인수를 통해 오늘날 애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사실 상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그리고, 악역을 자처하고 과거의 관료화된 조직을 모두 쳐내면서 그 역풍을 온몸으로 받게 되었는데, 이런 그의 작업들은 이후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새로운 애플의 시대를 열어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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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식과 지혜를 나눌 수 있는 ‘나비효과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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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최근 아주 흥미로운 누리집(홈페이지)이 문을 열었습니다. 아직 실험 사이트(베타 버전)이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관심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사이트 이름은 버터 플라이가 아니라 베터플라이(Betterfly). 1995년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진화를 거듭해 소통과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웹2.0’ 시대가..

    2010/07/1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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