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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국지, 오늘은 1997년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의 위기극복 이야기 입니다.  


파산직전의 애플을 구하라!

앞선 포스트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기 이전의 CEO 였던 길 아멜리오(Gil Amelio)는 세간의 일반적인 평가와는 달리 그의 업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욕을 먹을만큼 먹을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을 만들어 놓았지만 결국 애플의 재도약을 위한 밑바닥을 충실하게 깔아놓은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사임과 스티브 잡스의 복귀에 대해서 스티브 잡스가 정치적인 공작을 통해 길 아멜리오를 쫓아내었다는 설과 이사회가 길 아멜리오보다 스티브 잡스에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으면 애플의 중흥이 불가능했었던 것이라는 해석이 팽팽하게 갈립니다만, 어찌 되었든 초창기 어려울 때 애플의 현금흐름과 NeXT의 인수, 그리고 뒤를 이은 구조조정까지 가장 어렵고 하기 싫은 일들을 혼자서 지휘하고 떠나게 된 길 아멜리오의 역할은 반드시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길 아멜리오를 사퇴시킨 애플의 이사회에게는 스티브 잡스 이외에 CEO 를 맡을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사회에서는 스티브 잡스에게 CEO 를 맡아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를 거절하다가 앞에 '임시'라는 타이틀을 단다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합니다.  그로부터 6개월 정도 CEO 직무대행체제로 운영되던 애플은 공식적으로 이사회에서 1997년 8월 스티브 잡스를 iCEO(interim CEO, 대행 CEO)로 임명합니다.  
그렇지만, 당시의 애플의 상황은 정말 좋지 않았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애플이 앞으로 1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고, 과연 쓰러져가는 공룡에게 처방할 수 있는 약물이 있을 것인가?를 모두들 의심하였습니다.  잡스가 CEO의 업무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수익성과 향후 전망이 없는 사업들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애플은 40가지가 넘는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매킨토시 제품군도 굉장히 많았고, 노트북 라인인 파워북, 그리고 심지어는 잉크젯 프린터와 뉴턴(Newton)과 같은 PDA 제품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들 중에서 시장을 주도하는 제품이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엔지니어들이 너무나 우대를 받고 지나치게 자신이 하고싶은 프로젝트를 무작정 진행하는 관행이 보편화되면서 실제로 실현될 수 없는 이상적인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고, 이는 회사의 문화의 왜곡과 함께 실질적인 비용부담으로 다가오면서 애플을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뜨리고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자마자 한 일은 모든 제품과 인력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반드시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려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상명하달 방식의 구조조정 보다는 모든 제품과 프로젝트에 대해 자신과의 면담과 토의를 거쳐 자신들이 직접 필요없는 프로젝트는 폐기하는 유연한 정리방법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이사진 중에서 대부분을 자신의 사람들로 교체를 하면서 자신의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세력들을 없애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이미 NeXT 에서 자신의 수족들처럼 일하던 사람들을 애플의 요직에 배치하는 작업은 길 아멜리오가 CEO 로 있을 당시에 그에게 조언을 하면서 이미 마친 상태였는데, 영업 총책임은 데이비드 마노비치(David Manovich), 하드웨어는 존 루빈스타인(Jon Rubinstein), 그리고 소프트웨어 부분은 에이비 테바니언(Avie Tevanian)이 담당하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빅딜을 성사시키다.

다음으로 당장 눈앞에 다가온 회사의 재정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단기적으로 애플이 살아남기 위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자존심을 굽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를 찾아갑니다.  불과 수개월 전 길 아멜리오가 같은 이유로 자신을 찾아왔을때 그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했던 빌 게이츠지만 이번에는 전향적인 태도로 스티브 잡스를 만났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오래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윈도우에 대한 특허권 문제를 들고 나왔습니다.  윈도우에 대한 특허권 침해소송을 취하할 것이니, 마이크로소프트가 맥 운영체제에서 동작하는 오피스 프로그램을 개발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여기에 과감하게도 애플에 마이크로소프트가 투자해 달라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비록 금액이 크지는 않더라도 좋으니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에 투자를 한다면 애플에 대해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상당수 긍정적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에 착안을 한 제안이었습니다.  이때 빌 게이츠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맥 OS 의 기본 브라우저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채택해달라는 요구였고, 스티브 잡스는 이를 받아들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는 당시 가장 중요했던 브라우저 전쟁에서 넷스케이프에 승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였고, 이 조건이 받아들여지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주저없이 스티브 잡스의 조건을 받아들입니다.  빌 게이츠는 과거와는 달리 이렇게 스티브 잡스가 겸손한 제안을 해온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맥에서 동작하는 오피스를 개발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동시에 애플에 $1.5 억 달러를 투자합니다.  

애플이라는 회사의 규모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자금여력을 감안할 때 이 정도 금액은 정말 형식적인 것이 불과했지만, 주식시장은 뜨겁게 반응합니다.  애플의 주식은 30% 이상 급등을 하였고, 애플은 파산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이때 마이크로소프트가 거액을 투자해서 애플의 주식을 많이 매입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지금 그 때를 뒤돌아보면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하면 좋았을 걸 ... 하는 후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매킨토시 클론의 중단과 새로운 공급시스템의 정비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해서 가장 먼저 손을 본 것 중에 하나가 전전임 CEO인 마이클 스핀들러가 PowerPC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허용한 매킨토시 시장의 클론허용 정책을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매출은 줄어들었지만, 전선을 윈도우 계열의 컴퓨터들로 단일화하면서 시장의 장악력을 강화하는데 성공합니다.  또한, 당시 애플에게 CPU를 공급하던 IBM과 모토롤라를 경쟁시키면서 보다 좋은 조건에 부품을 조달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제품의 전반적인 라인업도 정비하면서 제품의 종류가 줄어들어, 제품공급 라인이 단순해진 것도 커다란 변화가 되었습니다.  40개가 넘던 제품군은 4~5개 정도로 줄어들었고, 이런 변신은 단기적인 매출감소를 불러왔지만 수익성을 현저히 개선하는데에는 성공합니다.  그 중에서도 존 스컬리가 시작하여 애플의 신성장동력으로 장기간 공을 들여온 PDA 프로젝트인 뉴톤(Newton)을 정리한 것을 두고 애플의 팬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반발을 하였지만 이를 강행합니다.  그렇지만, 이 팀에서 일하던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중용하였습니다.  뛰어난 엔지니어들이라고 판단을 하기도 하였고, 이후 자신이 구상한 최고의 제품에 이들을 투입하려고 했기 때문인데, 이들이 향후 애플의 중흥을 이끄는 제품의 하나인 아이북(iBook)을 탄생시킵니다.  그리고, 그 팀에서 정말 애플을 구원하게 되는 소중한 보석과도 같은 인재를 발견하고 중용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애플의 디자인 심장으로 불리는 조너던 아이브(Jonathan Ive) 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 더욱 자세한 이야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뒤를 이어, 마이클 스핀들러가 만들어 놓은 '저렴한 애플 매킨토시'라는 제품군들을 모두 정리하고, 애플의 제품은 가격이 비교적 높아도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가진다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애플의 고전적인 컨셉을 부활시켰습니다.  이러한 스티브 잡스의 정책들은 즉시 효과를 나타내면서 1년 만에 재고가 1/4로 감소하는 성과를 가져오며, 1997년 11월 출시한 전문가용 그래픽 컴퓨터를 모토로 등장한 파워맥 G3는 1년만에 100만 대가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하며 애플이 파산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는 일등공신이 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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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IT 삼국지의 주인공은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CEO로 있는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입니다.  한창 인터넷 이야기가 진행되는 1990년대 후반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왠 스티브 발머? 하시는 분들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1990년대 후반 인터넷 기업들이나 구글, 애플은 워낙 많은 변화들이 있어서 그에 대한 이야기 거리가 많지만, 이 시기 마이크로소프트는 워낙 잘 나가고 있어서 특별한 이슈없이 윈도우와 오피스 제품군이 판올림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세상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고, 시가총액과 매출은 계속 늘어가고, 많은 인물들이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는 등 거대기업의 모습을 보여가고 있었기에 그다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인 스티브 발머에 대해서는 의외로 많은 정보가 없어서 따로 그에 대해 다루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최근의 마이크로소프트가 구글이나 애플에 미래 비젼이나 이슈에서 밀리는 양상을 보이면서 그의 역량에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고, 빌 게이츠 이후의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걱정의 시선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역시도 알려진 것보다 훨씬 대단한 역량을 가진 인물입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외향적 비즈니스맨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보다 한살 어린 1956년 생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였습니다.  그는 공부도 잘했지만, 하버드 대학의 미식축구 팀도 관리하고, 하버드 대학 학교신문인 하버드 크림슨(Harvard Crimson)에서도 일을 하는 등 매우 활발한 학교활동을 하였습니다.  빌 게이츠와는 기숙사에서 가까운 위치에 방을 얻어서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많은 접촉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하게 됩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스티브 발머는 2년간 세계적인 소매업체인 프록터앤갬블(Procter and Gamble, P&G)에서 일을 했는데, 그 당시 같은 사무실을 쓰던 제프리 이멜트(Jeffrey R. Immelt)는 훗날 GE(General Electric)의 CEO가 됩니다.  작은 사무실의 신입 동료들이 훗날 세계 최대의 회사의 CEO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P&G에서 나와 스탠포드 대학에서 MBA 과정을 이수하던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의 낙점을 받고 결국 스탠포드  MBA를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작은 회사에 자신의 미래를 거는 결정을 내립니다.

그를 합류시키기 위해 빌 게이츠는 정말 대단한 정성을 들였다고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빌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를 시애틀 친가에 초대를 해서 부모님들과 소개도 하고, 그를 위한 성대한 만찬을 열었습니다.  또한, 시애틀 관광도 같이하면서 하루종일 설득을 하였는데 빌 게이츠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에 홀딱 빠져들게 됩니다.  1980년 6월 11일, 스티브 발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24번째 직원이 되면서 개발자 위주의 조직인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관리를 전담합니다.  스티브 발머는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데 주식소유를 중시하였습니다.  자신도 입사를 하면서 1981년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의 8%를 소유하였고, 이후 스톡옵션을 고안해서 많은 직원들에게 회사에 헌신하고 동시에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심어주는데 그 결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식공개를 하면서 만 명이 넘는 직원들이 백만장자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철저한 원칙주의자, 그리고 불같은 성격

스티브 발머는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원칙에 맞는 경영을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 사람입니다.  그에 비해 빌 게이츠는 엔지니어이고, 또한 엔지니어 답게 기업의 경영관리적인 측면에서는 허술한 측면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많은 싸움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창기 마이크로소프트가 조금씩 성공의 문을 열어가고 있을 시절, 30명 정도의 직원이 있었을 때 여러 사업기회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빌 게이츠는 빚을 얻기 싫어했고, 동시에 직원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안전지향적인 회사운영을 하려고 하였지만, 스티브 발머는 앞으로 다가올 기회를 본다면 적어도 15~20명 정도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을 하면서 대립각을 세운 사건은 유명합니다.  당시 스티브 발머는 시애틀의 빌 게이츠의 집에서 빌 게이츠의 부모들과 같이 살고 있었는데, 빌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가 회사를 망하게 할 것이라며 엄청나게 화를 내었고, 이에 질세라 스티브 발머는 사직서를 쓰고 짐을 모두 챙겨서 집을 나가기까지 합니다.  이런 갈등을 중재한 사람은 변호사였던 빌 게이츠의 아버지 였습니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가 직접 스티브 발머를 찾아와서 중재와 화해를 시키고 나서야 이들의 갈등은 봉합이 되었는데, 결국 스티브 발머의 의견대로 인원을 늘리면서 회사는 더욱 탄탄대로를 달리게 됩니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는 이 사건으로 스티브 발머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스티브 발머와 같이 원칙에 충실하고 창업자의 의견에 반기를 강력하게 들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행운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스티브 발머의 또 하나의 커다란 업적은 바로 스톡옵션을 고안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익숙해진 제도지만, 스톡옵션은 직원들에게 싼 값으로 회사의 주식을 살 수 있도록 권리를 주는 것으로 봉급과는 별도로 미래의 회사가치를 위해 더욱 많은 직원들이 열과 성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자, 정말 회사가 성공할 경우에는 다같이 부자가 될 수도 있게 만드는 제도입니다.  이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상장을 했을 때 백만장자로 등극한 직원이 1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앞서 빌 게이츠와의 갈등에서도 드러났듯이 스티브 발머는 대단한 다혈질로 공개석상에서도 화를 참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스티브 발머의 화내는 모습이 일부 동영상으로 유튜브로 퍼지면서 그의 성격이 도마에 오르기도 하였는데, 성격 탓에 자신의 능력에 비해 많은 부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측면도 있는 듯 합니다.  그에 비해 빌 게이츠는 언제나 밝은 표정에 다정다감하고 행동은 어떨지 몰라도 말을 할 때에는 상당히 겸손하게 이야기하는 편이라 세간의 평판이 좋았습니다.


빌 게이츠와의 권력다툼

이렇게 스타일이 달랐기에 회사 내에서도 은근히 빌 게이츠와 의견대립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호시탐탐 1인자의 자리를 노렸습니다.  그리고, 이사회에서도 빌 게이츠가 뛰어난 인물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함이 빌 게이츠에게만 끌려다녀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있었기에 스티브 발머를 통해 균형을 맞추려는 분위기가 많았습니다. 

물론 회사의 공동의 이득을 위해 같이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였지만, 2000년 스티브 발머가 CEO 로 등극하고 빌 게이츠가 2인자로 내려앉는 순간의 일화는 세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은 2008년 관련기사를 통해 2000년 당시 빌 게이츠가 이사회를 통해 자신을 밀어내려는 스티브 발머와 그의 조력자들을 향해 불같이 화를 내고 뛰쳐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스티브 발머가 약간 후회를 하기도 하였지만, 기자에게 인터뷰를 한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나는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게 기본원칙이다" "그를 이용하는 것은 좋지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I'm not going to need him for anything. That's the principle," Ballmer said. "Use him, yes, need him, no."

비록 스티브 발머가 빌 게이츠처럼 비전을 심어주거나,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창조적인 리더는 아니지만, 두 사람 사이의 경쟁과 소신있는 발언을 통해 발전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모습을 보면서 기업의 오너에게 거의 전권을 주고 휘둘리며, 직위에 약간의 차이만 있으면 할말 거의 못하고 죽어지내는 우리나라의 커다란 기업의 문화가 대비되어 생각나는 것이 저만은 아니겠지요?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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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IT 삼국지 주인공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의력 엔진, 제이 알라드(J. Allard) 입니다.  1969년생인 그는 빌 게이츠, 스티브 발머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의 몇 안되는 스타 중의 한 명입니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현재보다 훨씬 구태의연하고 윈도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조직이 되었을 것이며, 인터넷 세상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현재보다 훨씬 빨리 쇠퇴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빌 게이츠를 일깨운 한 장의 메모

보스톤 대학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공부한 그는, 후에 그의 아내가 되는 레베카 놀랜더(Rebecca Norlander)와 함께 보스톤으로 좋은 학생들을 유치하러온 마이크로소프트의 스카웃 담당자들의 눈에 들어 시애틀의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하게 됩니다.  

대학시절부터 알라드는 인터넷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분위기는 이와는 달랐습니다.  윈도우와 오피스 제품군의 대성공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지만, 인터넷에 대한 태도는 매우 소극적이었습니다.  입사후 3년간 윈도 NT 서버 소프트웨어 사업부분에서 일했던 그는 도저히 이대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하에 1994년 "윈도우: 차세대 인터넷 킬러 애플리케이션 (Windows: The Next Killer Application on the Internet)" 라는 메모를 남깁니다.  이 메모는 빌 게이츠의 눈에 띄게 되고, 빌 게이츠가 구체적으로 인터넷과 웹에 대한 위협과 가능성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5세의 젊은 혁신가는 윈도우와 오피스 엔지니어로 꽉찬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스타로 등극하게 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 대응전략을 세웁니다.  앞서 IT 삼국지에서 언급한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와의 브라우저 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윈도우와 오피스의 함정에서 벗어나라!

제이 알라드는 마운틴 바이크 매니아로 알려져 있습니다.  심지어는 사고로 여러 개의 뼈가 부러졌음에도 그는 이런 스릴을 즐겼습니다.  페라리 360과 포르쉐 911을 모두 소유하고 운전을 즐겼으며, 겨울이면 급경사의 위험한 스키를 즐기는 등 스피드 광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그의 성격이 회사생활에서도 드러나서 언제나 모험을 하는 역할을 맡아서 끌고 나갔고, 빌 게이츠도 그런 그의 재능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와 오피스로 엄청난 매출을 올렸고, 현재도 가장 중요한 제품군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터넷의 등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었고, 인터넷 익스플로러로 브라우저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더욱 중요한 서비스 분야에서는 야후!나 새롭게 떠오르는 신성 구글의 약진에 고전을 하였습니다.  

이에 제이 알라드는 빌 게이츠로부터 1990년대 말에 강력한 웹 서비스를 구축하라는 미션을 부여받고, 프로젝트 42 라는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무려 1,500 명이나 되는 인원이 투입된 대규모 프로젝트 였으나, 되려 지나치게 많은 인원은 관리의 어려움과 지나치게 많은 목표를 가지고 운영되면서 결국 1999년 5월에 중단되는 운명에 처합니다.  제이 알라드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뒤에, 2달 정도의 휴식기를 거치면서 뼈저린 반성을 합니다.  자신의 프로젝트가 "꿈을 추구했어야 했는데, 조직을 꾸리는 것에서 시작" 한 것이 가장 큰 실패요인이었다는 생각에, 그 다음부터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강력한 저항을 하는 투사로 거듭납니다.  그리고, 컴팩트한 조직을 강력하게 끌고 나가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이를 경시했던 것처럼, 마이크로소프트는 여전히 패키지 기반의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 이외의 마땅한 혁신을 거두지 못하고 있을때 빌 게이츠는 이번에는 비디오 게임을 중심으로 PC의 시대를 안방과 거실로 옮겨야 한다는 비전을 만들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는 당연히 윈도우를 운영체제로 하여 새로운 게임 콘솔을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고, 당시 하드웨어 부분 부사장이었던 릭 톰슨(Rick Thompson)은 닌텐도(Nintendo)를 인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제이 알라드는 윈도우가 들어가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혁신적인 게임 콘솔의 개발을 주장하였고, 공식 회의석상에서 윈도우를 채택할 수 없다는 그를 강력하게 비난하던 빌 게이츠는 결국 그의 의견을 수용합니다.  이렇게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Xbox 이며, 그의 고집은 화려한 성공으로 나타나며 윈도우와 오피스 이외에는 성공사례가 거의 없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를 밝혀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데 성공합니다.

제이 알라드는 윈도우에 집착해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혁신을 할 수 없다고 믿었고, 수많은 정적들이 마이크로소프트 내에서 그의 의견에 반기를 들었음에도 새로운 혁신을 위하여 E&D(Entertainment and Devices) 사업부분을 윈도우와 분리하여 개발을 하였습니다.  그는 회사 내에서도 애플의 매킨토시를 이용해서 작업을 많이 하였고, 경쟁을 통해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후 E&D 사업부의 CEO(Chief Experience Officer)겸 CTO(Chief Technology Officer)로 일을 하면서 Zune과 XBox 360과 같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를 좌우할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상당한 성과도 거두었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최악의 실패작인 윈도 모바일이 자신의 사업부로 이관되면서 윈도폰 7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야심차게 진행했던 태블릿 PC 프로젝트인 쿠리어(Courier)가 최종적으로 세상에 태어날 수 없다는 결정이 내려진 뒤에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난다는 발표를 하게 됩니다.  

(후속편에 계속 ...)


참고자료

The Soul Of A New Microsoft from BusinessWeek Dec.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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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IT 삼국지 주제는 그 동안의 딱딱했던 비즈니스 이야기를 살짝 떠나서,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러브 스토리와 가족들에 대한 훈훈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스티브 잡스를 사로잡은 금발의 미녀

애플을 퇴사하고 스탠포드 대학 캠퍼스에 넥스트(NeXT)를 창업한 스티브 잡스는 가끔씩 스탠포드 대학에서 요청하는 강연을 하고는 하였습니다.  1989년의 어느 날, 대학원생들을 위한 강연에서 스티브 잡스는 금발의 한 미녀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고, 당일에 있었던 중요한 출장도 취소하고 그녀에게 데이터 신청을 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로렌 파월(Lauren Powell)이었고, 명문인 유펜(University of Pennsylvania)을 졸업하고, 스탠포드 대학의 MBA 과정을 밟고 있었던 재원으로, 두 사람은 그날 저녁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관련해서도 스티브 잡스는 대단히 공격적이고 즉시 실행에 옮긴 셈입니다.

그날 저녁, 스티브 잡스는 너무나 똑똑하고 명석한 로렌에게 반했고, 더구나 육식을 하지않는 채식주의자(스티브 잡스는 과일을 주식으로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였기 때문에 더욱 잘 어울렸습니다.  이들은 2년간의 열애 끝에 1991년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룹니다.  

사실 스티브 잡스에게는 로렌과의 결혼하기 전에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리사(Lisa)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기 전에 시작했던 GUI 를 탑재한 야심찬 컴퓨터의 이름이기도 하였지요?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부인하지만 딸의 이름을 컴퓨터 이름으로 차용했다는 설을 많은 이들이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유전자 검사를 통해 딸이라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잡스는 그녀를 모른 척하고 만나주지도 않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로렌과의 결혼과 함께 10살이 된 리사를 데려와서 제대로 된 가족으로 맞이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이런 결정에는 그의 아내인 로렌의 역할이 컸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로렌은 빌 게이츠의 아내인 멜린다 게이츠처럼 언론에 자주 노출되지는 않지만, 매우 똑똑하면서도 자신의 의지가 분명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중시하는 성품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애플 시절 기행을 일삼고, 많은 사람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통해 팀웍을 해치는 것이 특기였으며, 고집불통이었던 스티브 잡스가 그녀를 통해 정말 가정적이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화합과 대화, 협업을 중시하는 성품으로 바뀐 것에는 그의 아내의 역할이 컸을 것입니다.  


이기적인 황제, 이타적인 황후를 만나다.

스티브 잡스에 비해 빌 게이츠는 그의 평생 배필을 조금 늦게 만났습니다.  정확하게는 결혼을 늦게 결심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빌 게이츠의 아내가 된 멜린다 게이츠는 1987년 듀크 대학에서 MBA 과정을 마치고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합니다.  그녀가 관여한 프로젝트는 Publisher, Encarta, Expedia 와 같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멀티미디어와 관련한 프로젝트에 많이 참여하였는데, 똑똑하고 명석했던 그녀에게 빌 게이츠는 진작에 반했지만 제대로 된 데이트도 못한 채 수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의 CEO 였던 탓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출장 일정이 많았던 빌 게이츠는 자신의 개인적인 고민과 외로움을 멜린다와의 전화통화를 통해서 해소하였다고 합니다.  주로 같은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보면서 호텔방에 앉아서 전화로 대화를 같이 하고, 가끔 시애틀에서 만나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는 등의 만남을 지속했던 그가 1994년 드디어 프로포즈를 하고 그해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들의 결혼식은 하와이의 라나이섬의 호텔 전체를 예약하고, 골프장 그린에서 야외결혼식의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현재의 마이크로소프트 CEO 로 일하고 있는 스티브 발머가 들러리로 참석 하였습니다.  이들은 3명의 아이를 슬하에 두고, 현재까지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 역시 과거 사리에 밝고, 영리하였지만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돈만 아는 비즈니스 맨이라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는데, 멜린다 게이츠를 만나면서 사람이 180도 변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진정 인류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과 재능, 그리고 네트워크까지 총동원 하겠다는 생각을 아내와 함께 나누던 그는 2000년 빌&멜린다 재단(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을 설립하면서 교육과 의료 등의 자선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는데, 이들의 재단은 현재까지도 세계 최대 규모의 자선단체로 진정한 인류복지를 위해 많은 활동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와 영적인 아버지와 아들 관계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워렌 버핏은 그의 재산 $300억 달러를 빌&멜린다 재단에 기부를 하는데, 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자신의 돈을 잘 운용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그에게 이런 엄청난 결정을 하게 만들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시대를 움직인 두 거인들이 비록 천재였지만, 초기의 다소 불안정하고 이기적인 성격이 지금처럼 안정되고 여유로운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에는 아내들의 내조가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가정의 화목이 성공과 행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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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 최고의 히트작, 윈도 95 from Wikipedia.org


IT 삼국지, 오늘은 마이크소프트의 자랑이자 오늘날까지도 전설적인 소프트웨어로 자리잡고 있는 윈도 3.1, 윈도 95,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제품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의 탄생과 윈도 3.1

역대 최고의 킬러 소프트웨어는 무엇일까요?  이런저런 의견들이 많겠지만,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워드(Word)와 엑셀(Excel)이라는 소프트웨어가 포함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Microsoft Office)일 것입니다. IBM-PC가 세상을 장악할 초창기만 하더라도 MS-DOS 라는 운영체제만 공급했을뿐, 워드퍼펙과 로터스 1-2-3 가 막강한 위세를 떨치던 이 분야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를 발표하면서 대세를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는 1989년 처음으로 워드와 엑셀, 파워포인트 3종 세트를 묶어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스위트(suite)로 내놓게 됩니다.  이 소프트웨어 제품군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때마침 업그레이드된 윈도 3.0(1990), 윈도 3.1(1992)의 세계적인 히트와 함께 꾸준한 업그레이드를 단행하면서 단숨에 경쟁제품들을 제치고 최고의 소프트웨어로 사람들에게 선택되기 시작했습니다.

윈도의 경우에도 윈도 1.0 과 2.0 가 그다지 큰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윈도 3.1 에 이르러서는 가상메모리와 가상 디바이스 드라이버의 기능향상을 바탕으로 제대로된 멀티태스킹(multitasking, 여러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수행하는 윈도의 핵심 기능)을 지원하면서 MS-DOS 가 가지고 있었던 근본적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이 팔리고 또한 성능을 향상을 가져온 윈도 3.1 이었지만, 결국에는 MS-DOS 위에서 돌아가는 응용 소프트웨어에 불과하였고, MS-DOS 자체의 문제로 인해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빌 게이츠는 과감히 MS-DOS 를 완전히 버리고, 윈도 중심의 운영체제 개발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1992년 윈도 95(Windows 95)에 대한 디자인과 계획을 수립 후 집중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최대의 히트작, 윈도 95의 탄생

윈도 3.1 을 출시한 직후,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서는 차세대 운영체제로 생각하고 개발을 진행시켰던 윈도 NT 3.1(코드명 카이로)의 미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대두됩니다.  기본적으로 워크스테이션급 이상에서 운용할 수 있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개념들이 많이 들어간 운영체제였지만, 1994년까지는 개발완료되기 어렵다는 지적들이 많이 나왔고, 실제로도 이 프로젝트는 1996년 7월이 되어서야 윈도 NT 4.0 이라는 이름으로 그나마도 혁신적인 개념이었던 객체지향 파일시스템은 제거하고 출시가 되었습니다.  

또한, 윈도 3.1 을 출시할 당시에 IBM 에서는 OS/2 2.0 을 발표하였고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는 32비트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하면서도, 윈도 그 자체가 직접적인 운영체제가 되서 MS-DOS 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동시에 비교적 저사양의 컴퓨터에서도 동작시킬 수 있는 운영체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코드명 시카고(Chicago)라는 프로젝트 팀을 발족하게 되었는데, 1993년 말 출시를 목표로 작업에 들어갑니다.  동시에 MS-DOS 7.0 을 같이 제공함으로써, 하위 호환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비록 원래 예정되었던 출시시기보다는 늦었지만, 윈도 95는 롤링스톤즈의 1981년 싱글히트곡인 "Start Me Up" 이라는 음악과 함께 대대적인 광고, 캠페인 운동과 함께 그 모습을 1995년 드러냅니다.  이 음악은 윈도 95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던 "시작(Start)" 버튼을 상징하였으며, 완전히 새로운 운영체제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기대에 부응하듯, 윈도 95는 전세계적 히트상품이 됩니다.  윈도 3.1 까지만 하더라도 윈도는 MS-DOS 의 제약을 받는 반쪽짜리 절름발이라는 놀림을 받았고, 비록 MS-DOS 기반의 IBM-PC가 세계적인 히트를 했어도 일본에서는 NEC 라는 회사의 PC 에 밀려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윈도 95 는 일본시장에서의 NEC 의 아성마저 깨뜨리면서 명실상부한 운영체제 세계정복을 당성하게 됩니다.  뒤를 이어 윈도 95 만큼은 아니지만, 윈도 98 도 히트를 하면서 전세계 운영체제 시장의 95% 이상을 장악하였습니다.


비록 지나치게 독점적인 시장장악력과 오피스 뿐만 아니라, 윈도라는 운영체제의 힘을 빌어 이후 인터넷 익스플로러 끼워팔기 등으로 미래산업 전체를 과도하게 불공정하게 끌어간 탓에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가 많은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윈도 95의 개발과 그 성공의 이면에는 회사의 끊임없는 혁신과 대단한 노력이 들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윈도 95는 어찌보면 컴퓨터 관련 수많은 하드웨어들의 표준을 제시한 셈이며, 이렇게 많은 기기들을 표준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동작시킬 수 있었고, 우수한 개발도구를 활용한 멋진 소프트웨어들이 나올 수 있는 기초토양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우리 인류의 컴퓨터와 관련한 발전을 한단계 전진시킨 커다란 이정표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듯 합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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