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from Wikipedia.com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애틀로 옮긴 이후에 여러 8비트 컴퓨터 회사들의 BASIC 인터프리터를 구현하면서 점차 몸집이 커져갑니다.  그렇지만 엔지니어 위주의 회사가 몸집이 커지다보니 회사의 회계와 기본적인 관리를 포함한 경영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개발자 임금협상과 관련한 문제로 미국 노동중재위원회에 빌 게이츠가 불려가는 일까지 있으면서 전문경영인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이 때 빌 게이츠가 선택한 인물이 바로 현재의 마이크로소프트 CEO로 있는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입니다.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보다 한살 어린 1956년 생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스티브 발머는 공부도 잘했지만, 하버드 대학의 미식축구 팀도 관리하고, 하버드 대학 학교신문인 하버드 크림슨(Harvard Crimson)에서도 일을 하는 등 매우 활발한 학교활동을 하였습니다.  빌 게이츠와는 기숙사에서 가까운 위치에 방을 얻어서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많은 접촉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하게 됩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스티브 발머는 2년간 세계적인 소매업체인 프록터앤갬블(Procter and Gamble, P&G)에서 일을 했는데, 그 당시 같은 사무실을 쓰던 제프리 이멜트(Jeffrey R. Immelt)는 훗날 GE(General Electric)의 CEO가 됩니다.  작은 사무실의 신입 동료들이 훗날 세계 최대의 회사의 CEO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P&G에서 나와 스탠포드 대학에서 MBA 과정을 이수하던 스티브 발머는 빌 게이츠의 낙점을 받고 결국 스탠포드  MBA를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작은 회사에 자신의 미래를 거는 결정을 내립니다.

그를 합류시키기 위해 빌 게이츠는 정말 대단한 정성을 들였다고 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던 빌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를 시애틀 친가에 초대를 해서 부모님들과 소개도 하고, 그를 위한 성대한 만찬을 열었습니다.  또한, 시애틀 관광도 같이하면서 하루종일 설득을 하였는데 빌 게이츠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에 홀딱 빠져들게 됩니다.  1980년 6월 11일, 스티브 발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24번째 직원이 되면서 개발자 위주의 조직인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관리를 전담합니다.  스티브 발머는 직원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데 주식소유를 중시하였습니다.  자신도 입사를 하면서 1981년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의 8%를 소유하였고, 이후 스톡옵션을 고안해서 많은 직원들에게 회사에 헌신하고 동시에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심어주는데 그 결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식공개를 하면서 만 명이 넘는 직원들이 백만장자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BASIC 전도사, 엄청난 기회를 잡다.

빌 게이츠가 설립한 마이크로소프트는 Altair 8800 에서의 BASIC 언어 인터프리터를 구현한 것을 시작으로, 애플 II 의 애플소프트(Apple + Microsoft) BASIC 을 포함하여 당시 수많은 8비트 컴퓨터의 BASIC 을 구현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게 됩니다.   BASIC 언어는 익히기도 쉬워서 1970년대 후반 미국 정부에서는 컴퓨터 교육과정을 BASIC 을 중심으로 짜게 됩니다.  국내에서도 처음 8비트 컴퓨터 붐이 일었던 1980년대 초반 대부분의 컴퓨터 교육이 BASIC 언어를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거의 모든 컴퓨터에 우수한 BASIC 언어를 탑재해야하는 동력으로 작동하게 되고,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분야에서 최고의 회사로 인정받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의 비즈니스 환경은 결코 소프트웨어 회사들에게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돈은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컴퓨터 회사들이 많이 벌었고, 그렇게 많은 컴퓨터에 BASIC 언어를 구현했지만 1981년 MS-DOS 를 탄생시키기 전까지 마이크로소프트가 벌어들인 돈은 모두 합해서 500만 달러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비록 애플 II 가 가장 대표적인 컴퓨터로 이름을 날리고, 다양한 클론 제품군들이 나오면서 전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당시의 컴퓨터 환경은 글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했습니다.  이 시기에 IBM이 1년간의 TFT를 통해 당시 호환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개방형 아키텍처와 호환기종이 쉽게 생겨날 수 있도록 한 정책, 그리고 범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 컨셉을 들고 나오면서 판세는 급격히 IBM으로 기울기 시작합니다.  IBM이 PC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많은 조언을 얻은 사람 중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있었습니다.  특히 CPU를 선정할 때에 인텔 8088 또는 8086 16비트 프로세서를 추천한 것도 빌 게이츠 였는데, 당시 가장 많이 이용되던 모토롤라 등의 CPU를 생각하던 IBM의 직원들을 논리정연한 설명으로 인텔 CPU를 채택해야하는 당위성을 설득시키면서 IBM의 PC 제작팀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드웨어의 구색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자, IBM은 운영체제를 놓고 오랫동안 고민을 하였습니다.  이 때에도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이 바로 빌 게이츠입니다.  빌 게이츠는 CP/M을 만든 게리 킬달이라면 새로운 인텔의 16비트 CPU에 최적화된 운영체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게리 킬달의 디지털 리서치를 소개합니다.  당시 게리 킬달의 CP/M 은 당대 최고의 운영체제로 애플 II 를 제외한 컴퓨터에서 거의 독보적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게리 킬달은 특히 비행기 광이어서 개인용 비행기를 사서 미국 전역을 날아다니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런 성격이 결국 거대한 기회를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주게 됩니다.  IBM과의 미팅약속을 해놓고도 게리 킬달은 자신의 비행기를 몰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고, IBM을 맞은 사람은 그의 아내인 도로시였습니다.  이 때부터 IBM의 감정은 상할데로 상한 상태였지만, CP/M이 워낙 마음에 들었기에 IBM은 디지털 리서치와 의견조율을 통해 CP/M을 IBM-PC에 맞게 개발하도록 대략적인 합의를 합니다.  그런데, 정작 계약은 엉뚱한데서 깨지게 됩니다.  IBM은 자신들의 PC 프로젝트의 기밀유지가 중요했기에 해당 프로젝트와 관련한 비밀준수게약을 디지털 리서치에 요구하는데, 디지털 리서치는 이런 요구가 자신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하고 계약 전체를 거부합니다.

IBM은 이 대목에서 디지털 리서치와 더 이상의 줄다리기를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 게이츠를 불러서 혹시 운영체제를 개발해줄 수 없냐는 의사타진을 합니다.  당시의 빌 게이츠는 BASIC 인터프리터는 많이 개발했지만 정작 운영체제를 개발한 경험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면 대단한 모험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을 바꿀 기회가 왔다는 것을 직감한 빌 게이츠는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Seattle Computer Product, SCP)라는 회사가 CP/M을 기반으로 만든 86-DOS 라는 운영체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대담하게 이 제안을 받아 들입니다.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 빌 게이츠에게 넘어가다.

86-DOS는 인텔의 8086 16비트 CPU에 동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CP/M 기반의 운영체제입니다.  SCP는 자신들의 컴퓨터를 디자인하면서 디지털 리서치의 CP/M을 인텔 8086에 맞게 개발된 것이 있다면 채용을 하려고 했지만, 디지털 리서치는 계획만 발표하고 실제로 동작하는 운영체제의 출시를 차일피일 늦추고 있었습니다.  이에 SCP는 24세의 젊은 컴퓨터 천재인 팀 패터슨(Tim Paterson)을 고용하여 16비트 CP/M 운영체제를 개발하라고 합니다.

팀 패터슨은 오래된 CP/M 프로그램과 호환이 되는 API를 가지고 86-DOS를 디자인합니다.  동시에 CP/M을 쓰면서 불편했던 점들 개선하는 방향으로 운영체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CP/M의 파일 시스템 대신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텔 8086 CPU 용으로 개발한 BASIC-86이 가지고 있었던 FAT 파일 시스템을 채용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BASIC과의 호환성을 극대화 하였습니다.

IBM으로부터 일단 전권을 위임받은 빌 게이츠는 SCP와 협상을 통해 1980년 12월 $25,000 달러라는 헐값에 86-DOS에 대한 라이센스를 획득합니다.  1981년 5월 마이크로소프트는 팀 패터슨을 스카웃해서 IBM-PC가 채택한 8088 CPU에서 동작하는 운영체제를 개발하도록 하였습니다.  1981년 7월, IBM-PC가 출시되기 한달 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SCP로부터 86-DOS와 관련한 모든 권리를 $50,000 달러에 사들입니다.  이 때의 계약은 후일 SCP와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디지털 리서치 사이의 법정분쟁에서도 문제가 되는데, 마이크로소프트가 SCP 측과 계약을 할 당시 IBM과 진행하던 프로젝트 내용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IBM이라는 거대한 기업의 운영체제로 사용될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SCP의 사장은 너무나 싼 가격에 모든 권리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겨주게 된 것입니다.  법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의 계약관계를 SCP 측에 알릴 의무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을 숨기고 시장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계약을 한 것에 대한 도의적인 불만은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이 사건은 결국 마이크로소프트가 SCP 측에 100만 달러를 더 주는 수준에서 중재가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86-DOS를 IBM에게 라이센스를 주는 계약을 맺는데,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PC-DOS 1.0 입니다.  여기에 더해 마이크로소프트는 독점사용권과 일시불 계약을 원하던 IBM을 출시시간의 압박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독점도 주지 않고, 로열티 계약을 하는 대단한 성과를 올리게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BM의 개방형 정책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입게 됩니다.  이후 수많은 IBM-PC 호환기종들이 나오게 되는데, 이들에게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의 회사 이니셜을 딴 MS-DOS를 판매합니다.  MS-DOS는 PC-DOS와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운영체제로 오리지널 IBM-PC를 제외한 호환 컴퓨터에서 판매된 운영체제입니다.


디지털 리서치, 뒤늦은 후회와 잘못된 전략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어이없게 마이크로소프트에게 IBM의 운영체제 자리를 빼앗겨버린 디지털 리서치의 게리 킬달은 PC-DOS를 살펴 보다가 PC-DOS가 자신이 개발한 CP/M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그대로 복제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IBM을 지적재산권 침해로 고소하려고 하였으나, 디지털 리서치의 변호사는 IBM과의 송사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IBM과 어떤 형태로든 중재를 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을 권합니다.  이에 게리 킬달은 IBM과의 담판을 통해 자사의 CP/M-86 과 마이크로소프트의 PC-DOS 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데 합의합니다.  이 때만 하더라도 게리 킬달은 CP/M-86 이 안정성과 기능성 모두에서 PC-DOS 를 압도한다고 믿었고 그에 따라 자신의 승리를 자신하면서 가격정책을 결정합니다.

디지털 리서치가 IBM-PC를 구매할 때 옵션으로 CP/M-86 을 선택할 때 제시한 가격은 $240 달러였고, PC-DOS는 $60 달러에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기술적으로 CP/M-86 이 훨씬 나았고 게리 킬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비교가 안되는 운영체제라고 생각했겠지만, 소비자들은 저가의 PC-DOS를 대부분 선택합니다.  이와 함께 IBM 호환기종을 내놓은 업체들 역시 오리지널 IBM-PC 와의 완벽한 호환성을 위해서 대부분 MS-DOS 를 채택하면서 결코 저물지 않을 것 같았던 디지털 리서치의 CP/M 신화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후속편에 계속 ...)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하이컨셉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명저들 ...

피드버너로 구독하세요 ...

TRACKBACK :: http://health20.kr/trackback/1535 관련글 쓰기




아마존이 킨들로 전자책 돌풍을 몰고온 것에 이어, 올해에는 애플의 아이패드를 필두로 멀티미디어 컨텐츠를 포함한 미디어 소비가 가능한 태블릿 제품들과 시스템들이 대거 선보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러한 급격한 디지털화가 진행된다면 앞으로 출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오늘은 이에 대한 전망을 해볼까 합니다.


아마존의 등장, 수백 년의 비즈니스 구조를 무너뜨리다.

출판이라는 산업은 인류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혁신 중의 하나였던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과 이에 대한 확산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류의 지식을 전파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면서 수백 년동안 조금씩 발전되어 왔습니다.  전통적인 출판업은 저자와 출판 기획과 생산, 마케팅, 영업과 배포 등을 담당하는 출판사, 그리고 이를 판매하는 서점의 역할 분담을 통해서 발달해 왔습니다.  가격의 문제로 출판사는 적어도 수천 부 이상의 판매가 이루어질 수 있는 책만을 기획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럼에도 잘 팔리지 않는 책에 대해서는 적자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구조에 거대한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아마존의 등장입니다.  사실상 전자상거래라는 것을 확고하게 정착시킨 아마존의 혁신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킵니다.  과거에는 판매대에 올릴 수 없었던 무수한 책들까지 모두 가상의 진열대에 위치시키고 검색과 추천이 가능했던 아마존의 시스템은 롱테일(Longtail) 비즈니스라는 새로운 현상을 불러일으키면서 과거의 산업구조를 일거에 무너뜨립니다.  초기에는 출판과 관련한 산업을 흔드는 것처럼 보였던 아마존의 등장은 전통적인 저자-출판사-서점의 구조에서 마지막에 있는 서점의 존재감을 극도로 약화시키게 되었고, 유통과 관련한 비용 및 효율성을 출판사에게 돌려주게 되면서 예상과는 달리 출판사와 컨텐츠를 생산하는 저자들 모두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주게 됩니다.

출판사는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면서 책을 많이 찍어서 재고로 안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고, 주문수량과 판매추이, 영업 및 마케팅 노력에 따라 효과적으로 책을 찍어내는 관리가 가능해졌습니다.  심지어는 예약판매라는 제도를 통해 일정부분 판매량을 예측할수도 있게 되면서 예상과는 달리 출판산업 전체가 활황에 들어갑니다. 이것이 25년 전의 혁신입니다.


컨텐츠 혁신이 출판을 다시 한번 바꾼다.

한 차례 거대한 혁신을 일으킨 아마존이 이번에는 컨텐츠 제작과 관련한 혁신을 하였습니다.  킨들은 종이에 찍어내던 출판물들을 완전히 가상계에서 거래가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고, 이 혁신도 성공을 합니다.  킨들의 뒤를 이어 다양한 컨텐츠 소비형 기기들이 나오면서 컨텐츠 혁신은 다양화되기 시작합니다.  일본에서는 휴대폰에서 읽기에 적합한 형태의 소설이 나오기 시작하였고, 애플의 아이패드는 멀티미디어 컨텐츠를 포함한 보다 입체적인 컨텐츠의 제작 및 유통을 부채질하게 될 것입니다.  아이패드는 특히 교육과 아이들서적, 그리고 여행서적과 같이 멀티미디어 컨텐츠 및 상호작용성이 극대화될 수 있는 컨텐츠 부분에 혁신을 일으키게 될 것이며, 이미 세계적인 출판사인 펭귄(Penguin)은 자사의 DK 시리즈를 위한 전용 아이패드 앱들을 판매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아마존으로 대별되던 컨텐츠 시장은 이제 아이패드의 등장과 함께 준비된 애플의 iBook Store, 그리고 절판된 책들을 중심으로 스캔을 통한 전자책으로 새로운 마켓을 준비하고 있는 구글과 함께 더욱 다변화될 것입니다.  두려운 변화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저는 이것이 지식컨텐츠 사업인 출판산업의 새로운 혁신을 통한 도약이 될 것으로 봅니다.  이제는 출판사에서 유료 컨텐츠를 기획할 때 과다한 제작비를 부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디지털 저작물은 인쇄물과는 달라서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이 0에 수렴하며, 컨텐츠 제작을 저자와 협의함에 따라 다양한 계약 및 수익모델이 나올 것입니다.  저자가 디지털 저작물을 직접 만들어서 출판까지 할 수 있는 능력자라면 1인 출판의 형태로 진행될 것이지만, 많은 수의 지식 컨텐츠 생산자들은 그래도 출판사들의 기획과 마케팅, 브랜드 등에 협업을 하는 방향을 선택할 것입니다.  

또한 판매되는 디지털 컨텐츠가 매우 다양화될 것입니다.  천편일률적인 텍스트 위주의 형식을 벗어나서, 그림과 동영상, 사운드, 그리고 쌍방향성 게임요소가 가미되거나 여러 사용자들이 동시에 동적으로 댓글 및 내용수정을 통해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형태의 디지털 컨텐츠 등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컨텐츠 시장을 열어나가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 명의 저자들이 특정한 주제의 디지털 컨텐츠를 출판하고, 이 컨텐츠가 위키와 같은 기술의 적용을 통해 자신이 집필한 분야의 내용을 마음대로 최신의 지식으로 업데이트 할 수 있는 동적 디지털 컨텐츠 등은 최신의 기술을 반영해야 하는 기술분야 서적에 있어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디지털 컨텐츠는 과거의 방식으로 쓰여진 기술서적보다 당연히 높은 가격으로 판매될 수 있습니다.
아래는 펭귄의 디지털 서적 데모입니다.





필요하면 즉석에서 인쇄된 책을 가질 수 있다.

또 다른 기술 혁신 부분에서는 Espresso 북 머신과 같이 저렴하게 책을 수분 내에 즉석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기계들이 공급이 되면서 원한다면 인쇄본을 가질 수 있는 옵션들이 붙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자책의 형태로 판매된 책의 경우 1회에 한해 북 머신에서 인쇄를 할 수 있는 옵션을 준다거나 (이 경우 인쇄 못하는 옵션을 가진 책보다 인쇄옵션이 약간 더 비싸게 책정), 또는 디지털 컨텐츠 형식의 완성본보다 PDF 형식의 정적인 컨텐츠를 무료로 배포하고, 이를 인쇄할 때에는 유료로 받는 모델, 또는 양방향성 및 멀티미디어 컨텐츠가 들어있는 디지털 컨텐츠는 유료로 업그레이드 하는 등의 다양한 모델이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인쇄기기는 동네 문방구나 커피를 파는 카페 등의 커뮤니티 공간에서 쉽게 자동으로 접근할 수 있는 형태로 보급될 수 있으며, 도서관이 유통의 역할을 맡게 될수도 있습니다.  


연관글:





결국 다양성의 시대로 ...

이런 커다란 변화가 우리의 눈앞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종이책 시장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새로운 형태의 컨텐츠의 생산, 소비, 유통구조가 나타나게 될 것이며, 이런 변화는 사회를 훨씬 다양한 방향으로 끌고나가게 될 것입니다.  과거 아마존의 혁신이 출판사가 출판한 책들 중에서 롱테일 비즈니스를 열었다면, 앞으로의 혁신은 컨텐츠 저작과 관련한 롱테일 비즈니스를 열게 될 것이며, 기존의 출판사들의 역할이 변하면서 IT 기술을 가진 사람들도 같이 참여를 하는, 사람들간의 기획 및 협업을 통한 다양한 디지털 컨텐츠의 시대로 진입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회로 진입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기가 바로 애플의 아이패드입니다.  아이패드의 성공은 구글의 크롬을 장착한 다양한 태블릿들의 등장과 저렴한 보급을 이끌게 될 것이며, 사회는 여러 똑똑한 사람들의 지식과 지혜를 쉽게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를 하면서 동시에 지식전파자들과 컨텐츠 저작자들에게 그 과실을 돌려주는 체계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넓은 의미의 출판산업을 지식전파산업으로 정의한다면, 그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습니다.  변화에 걸맞는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하이컨셉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명저들 ...

피드버너로 구독하세요 ...

TRACKBACK :: http://health20.kr/trackback/1480 관련글 쓰기


from bbc.co.uk


여러분들은 세계 최고의 종합 미디어 회사가 어디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저는 단연 영국의 BBC를 꼽고 싶습니다.  그들이 제작하는 높은 수준의 미디어 컨텐츠 뿐만 아니라 언제나 시대를 앞서가고 주도하는 능력까지 어디하나 빠지는 곳이 없습니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대별되는 미래의 미디어 환경에 있어서도 BBC 보다 대응을 잘하고 있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최근 BBC 의 미래 미디어와 기술(Future Media and Technology) 부분 총책임을 맡고 있는 Erik Huggers 가 쓴 블로그 글을 읽고서 정말 감동을 받았습니다.  방송을 비롯한 미디어와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대한 통찰이 가득한 최고의 전문가만이 쓸 수 있는 글이고, 미디어의 미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글이 길어서 전문번역을 하기는 어렵고 주요 부분을 발췌 번역하고 일부 저의 의견을 담아서 포스팅 하겠습니다.  그의 글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


진화에는 시간이 걸린다.

진화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초기의 TV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을 보이는 형태로 녹음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TV 라는 시청각 미디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게 되었고, 이에 알맞는 프로그램 및 컨텐츠가 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TV 는 라디오를 제치고 가장 영향력이 높은 미디어로 등극하게 됩니다. 

우리는 현재 라디오에서 TV로 넘어오던 시기와 비슷한 진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기존의 TV의 영역이 강해 보이고, TV의 방식인 일방적인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 일방적으로 대중에게 전달)을 주된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터넷과 모바일의 특성에 만든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들이 기획되고 만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BBC 온라인은 12년간 계속 조금씩 진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의 모바일 영역에서의 발전은 눈이 부십니다. 새로운 휴대폰 기기와 운영체제 등에 의해 초기 모바일 미디어에 비해 훨씬 내용과 비주얼이 풍부한 컨텐츠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에는 단순한 WAP 사이트를 통해 텍스트 컨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 이후 그래픽을 추가하게 되었고, 현재는 오디오와 비디오를 모두 제공합니다.  현재 BBC 온라인은 영국에서 2번째로 많은 사용자들이 접근하는 모바일 웹사이트가 되었습니다.


세계를 모바일로 묶다.

아래의 사진은 나이지리아에서 하고 있는 BBC 월드 서비스(World Service)와 관련한 사진입니다.  모바일로 접근하는 사용자들을 분석해보면 놀랍게도 아프리카에서 접근하는 비중이 5%나 됩니다.  인터넷 환경보다 모바일이 이들 국가의 세계를 향한 창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BBC에서는 나이지리아의 6개 마을에 휴대폰을 나누어주고 이를 활용해서 부족민들이 TV를 보고, 동시에 이들의 목소리를 취재하는 양방향 서비스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의 가운데 있는 사람이 "mobile keeper"로 휴대폰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BBC의 프로그램을 돌려서 봅니다.  그리고, 이 휴대폰을 통해서 지역사회의 생활을 직접 부족민들이 취재하고 소통을 하면서 프로그램 제작에도 기여합니다.


소셜 웹 서비스와의 결합 역시 대단히 중요합니다.  특히 상호작용이 가능하고, 위치정보서비스와 결합한 모바일 방송은 앞으로 수많은 혁신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이런 효과는 단지 모바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나 TV에서도 직접 연결될 수 있을 것이고, 특히 지역사회에서의 수많은 이슈들이 묻히지 않고 제작이 되고 이를 유통시키는 플랫폼들이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BBC는 이미 이런 부분의 전략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모바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첫번째 인터넷 접근 수단이 될 것이 확실합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더욱 빠르게 옮겨갈 것입니다.  모바일 사용자들을 대부분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사용유형에 따라 크게 4가지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모바일로 대부분의 인터넷 접속을 수행하는 "Mobile first" 그룹,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지만 주로 이동 중에 사용하는 "Mobile lifestyle" 그룹, 휴대폰으로 게임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휴대폰에 중독(?)되다 시피하는 "Addicted devotees", 그리고 역시 휴대폰을 끼고 살지만 주로 소셜 웹 서비스를 이용하는 "Social animals" 입니다.  이런 모바일 그룹에게 맞는 프로그램들이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BBC는 올해 BBC 뉴스와 스포츠를 시작으로 아이폰을 비롯한 많은 스마트 폰 앱들을 개발해서 배포합니다.  이러한 앱들은 각각의 컨텐츠 특성에 맞추어 다르게 디자인이 됩니다.  예를 들어, 모바일로 스포츠를 주로 보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그들에게 적합한 추가적인 모바일 서비스가 들어갈 예정입니다.


TV, 인터넷, 모바일을 하나로 ... 그리고 소셜!

모바일이 중요해지기는 했지만, 전체 그림에서는 하나의 부분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전통적인 TV와 기존 인터넷으로 접근할 수 있는 BBC 온라인, 그리고 모바일 서비스가 서로 효과적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풍부하고 상호작용이 극대화된 경험을 느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합니다.   

모바일의 경우 위치기반서비스와 연계가 되고, 간단하고 개인화된 사용자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웹에서는 많은 수의 컨텐츠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풍부한 사용자 경험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TV에서는 수동적인 경험에 보다 능동적인 사용자들이 무엇인가 추가적인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소셜 웹 서비스와의 결합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BBC의 경험을 소셜 웹 서비스로 전달하고, 반대로 소셜 웹 서비스에서 들어오는 피드백이 자연스럽게 BBC의 프로그램에 녹아들 수 있는 전략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개념의 변화는 과거의 시청자들은 BBC로 프로그램을 보러 몰려왔지만, 이제는 BBC가 사용자들이 주로 있는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개방형 혁신이 필요하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처럼 BBC가 세상이 변화하는 방향에 따라 변신하려는 노력은 정말 모두들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또 한가지 BBC가 노력하고 있는 부분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 프로그램의 개방과 관련한 부분입니다.  아직 전면적인 프로그램 컨텐츠 개방은 하고 있지 못하지만, 이는 BBC 내부의 입장보다는 저작권을 공동소유하고 컨텐츠 제작에 참여했던 협력자들과의 조율이 쉽지 않은 이유가 더 크다고 합니다.  이미 BBC는 과거 저작권이 종료된 영상들을 무료로 쉽게 찾아서 공유할 수 있는 BBC Archives 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작권의 문제가 없이 제작된 영상 컨텐츠들을 받아서 유통시키는 플랫폼도 선을 보였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Common Platform 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서 BBC 가 가지고 있는 컨텐츠들을 어떻게 사람들을 위해서 개방하고, 지역사회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을지, 그리고 공유의 방법과 윤리 및 정책을 어떻게 세울 것인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Steve Bowbrick 을 중심으로 세세한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개방형 혁신에 대한 노력은 아래 링크의 블로그를 통해서 더욱 자세히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 방송사들도 많이 참고해야할 모범사례가 아닐까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하이컨셉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명저들 ...

피드버너로 구독하세요 ...

TRACKBACK :: http://health20.kr/trackback/1478 관련글 쓰기

  1. jguru의 생각

    Tracked from javadance's me2DAY  삭제

    RT hiconcep님 [하이컨셉&하이터치]BBC에서 바라본 모바일과 미디어의 미래 http://durl.me/d6tv

    2010/03/17 11:36
  2. 출장전사의 생각

    Tracked from forme's me2DAY  삭제

    BBC에서 바라본 모바일과 미디어의 미래:: 우리에게도 전체적인 관점의 통찰력이 필요한 시기

    2010/03/18 11:15



어제 우리나라 신문 미디어에 상당히 의미있는 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위에 보듯이 매일경제 신문에서 기사에서 기자의 자율적인 선택에 따라 트위터 계정을 바이라인에 달기 시작한 것입니다.  트위터 사용자가 수천 만명에 이르는 미국에서는 이제 이런 시도가 그렇게 특이한 것이 아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트위터가 정보의 원천으로 자리잡게 된다는 것을 제도권에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을 놓고 라이코스의 @estima7 임정욱 대표님과 가볍게 과거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냐구요?  임정욱 대표가 조선일보 기자 시절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바이라인에 이메일 주소를 쓰기 시작한 분이었고, 이것이 일반화되었거든요 ...  당시에도 상당한 저항이 있었고, 특히 기사에 대해 불만을 가진 분들의 불평 때문에 꽤나 힘든 경험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이런 시도를 처음 시작한 매일경제의 기자 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욱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할 것인데, 일부 비판적인 글이나 악트윗(?)을 받으시더라도 소통을 통해 기사의 의도를 알리고 정직하게 소통한다면 트위터와 같은 새로운 소셜 미디어와 전통 미디어의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더불어 매일경제에는 기사를 직접 트윗하거나 미투데이로 올릴 수 있는 버튼, 그리고 블로그 스크랩 버튼도 생겨났네요 (아래).  이 역시도 신선한 시도인데요, 기사를 외부에 알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링크를 퍼갈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다만, 단지 트위터나 미투데이로 퍼가기를 누를 때 전체 링크가 입력되는데, 트위터나 구글에서 지원하는 단축 URL 을 지원해서 자동으로 단축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블로그에 퍼가기 버튼의 경우에도 매일경제 로그인을 요구합니다.  이러면 버튼을 지원하나마나입니다.  그냥 로그인 하지 않아도 자동컨텐츠 복사가 되면서 링크가 붙도록 하면 훨씬 높은 수준의 2차 저작물들이 많은 블로거들을 통해 쉽게 생산이 될 것이고, 그 원문을 제공한 컨텐츠는 자연스럽게 링크와 방문자 수를 늘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작권을 보호하기 보다, 사회적 가치를 많이 만들 수 있도록 널리 보급하고, 이를 나중에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하는 것을 보다 많이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미디어에 계신 분들이 저작권의 함정과 고정관념에 빠져 있어서 더욱 큰 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올드미디어도 이런 고민을 하고, 같이 동참하고 개방의 철학을 실천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하이컨셉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명저들 ...

피드버너로 구독하세요 ...

TRACKBACK :: http://health20.kr/trackback/1534 관련글 쓰기




오늘 SXSW 행사에서 트위터의 CEO 인 에반 윌리암스(Evan Williams)가 키노트 강연을 하였습니다.  강연내용도 좋았지만, 트위터의 새로운 전략인 "트위터 애니웨어"를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페이스 북이 "Facebook Connect"를 통해서 웹의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낸 것과 마찬가지로 트위터 생태계를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앞으로 인터넷에서의 개방형 생태계 영토 싸움이 치열해 질 것으로 보입니다.

트위터의 철학은 처음부터 개방(open)을 최우선으로 두었고, 이는 자신의 사이트에서 친구들, 회사, 미디어, 그리고 연예인 들과 트윗을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과거 OAuth 가 트위터 계정에 대한 연결에 불과했다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웹 사이트 들이 Twitter.com 으로 메시지를 보내지 않더라도 이런 즐거운 공유와 개방의 정신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사실 트위터 API 가 개방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매쉬업 서비스들은 이미 많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트위터 애니웨어는 이런 작업을 대단히 쉽게 만드는 것입니다.  단지 몇 줄의 자바 스크립트 만으로 자신만의 트위터 매쉬업을 가질 수 있고, 이를 사이트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전체적인 프레임워크를 @anywhere 라고 명명한 것이지요 ...

트위터 애니웨어는 이미 여러 파트너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Amazon, AdAge, Bing, Citysearch, Digg, eBay, The Huffington Post, Meebo, MSNBC.com, The New York Times, Salesforce.com, Yahoo!, YouTube 와 같은 내노라하는 서비스들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앞으로 뉴욕 타임즈 기사를 읽다가 글을 쓴 기자의 바이라인에 있는 트위터 아이디에 마우스를 올려 놓고 바로 팔로잉(following)을 할 수 있고, 유튜브 비디오를 보다가 멋진 비디오를 바로 트윗할 수 있는 등의 여러가지 응용사례가 트위터 클라이언트나 Twitter.com 에 방문하지 않고 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직 일반에게는 @anywhere 를 어떤 형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 자세한 정보가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만, 간단한 플러그-인 형태나 위젯의 세트 형식이 아닐까 추정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공개될 @anywhere 의 기능은 단지 "시작" 이라고 표현한 점이 눈에 띕니다.  개방과 통합성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하는 트위터 ... 정말 대단합니다.  트위터 비슷한 형태의 소셜 네트워크만 베껴서 열심히 개발하고 있는 국내 서비스 회사들은 철학에 대한 고민부터 먼저해야 할 것입니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4월 14/15일에 열릴 예정인 Chirp 트위터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밝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하이컨셉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명저들 ...

피드버너로 구독하세요 ...

TRACKBACK :: http://health20.kr/trackback/1532 관련글 쓰기

  1. 허니몬의 알림

    Tracked from sunfuture's me2DAY  삭제

    트위터 애니웨어, 더욱 강력한 생태계를 위하여, 하이컨셉&하이터치 // 더욱 강력해지는 마이크로소셜미디어의 기능. 더욱 단단한 사슬로 결속시키고 있는 트위터. 흠… ㅡ_-);; 트윗을 하면서부터는 뉴스도 거의 안보게 되었다.

    2010/03/16 09:32


from Wikipedia


IT 삼국지 지형에 있어서, 1970년대 후반은 완전히 애플의 독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애플 II 시리즈의 성공은 과거 컴퓨터 제국의 중심에 있었던 IBM과 같은 거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데 충분했습니다.  1980년 12월 애플은 주식을 드디어 공개합니다.  애플이 주식을 공개할 당시 포드 자동차가 1956년에 기업공개를 한 다음으로 많은 자본을 유치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만큼 대단한 미래가치를 인정받았고,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은 엄청난 부와 명성을 손에 넣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처럼 이때부터 애플의 상승세가 꺽이기 시작했습니다.  애플 II 에 이어 1980년 5월에 내놓은 애플 III 는 시장의 반응을 거의 얻지 못하고 완전히 잊혀져 가고 있었으며, 그보다 무서운 것은 자신의 시장을 노리는 정말 무서운 거인의 참전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인, 드디어 움직이다.

애플이 약진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컴퓨터의 원조"라고 할 수 있었던 대표기업은 빅블루(Big Blue)라는 애칭으로도 유명한 IBM 이었습니다.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이 설립한 IBM 은 기술 분야 최초의 대형 기업으로 설립이후 시종일관 업계를 지배했습니다.  흔히 TJ 라고 알려진 토머스 왓슨 1세는 1914년 IBM의 전신인 ‘컴퓨팅-태뷸레이팅-레코딩(C-T-R) 회사’에 입사했다가 입사 11개월 만에 사장이 됩니다. 뛰어난 영업가 였던 TJ 는 용모와 태도가 반듯한 세일즈맨들을 중시했고, 성과 인센티브와 실적경쟁, 그리고 직원 단합대회나 가족동반 야유회 등과 같은 애사심을 고취시키는 전략을 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러한 그의 기업경영 전략은오늘날까지도 많은 기업들에게서 볼 수 있고 실제로 잘 먹히기도 합니다.

1924년 TJ는 회사의 이름을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로 바꾸고, 도표 작성기와 출퇴근 기록기, 타자기에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1930년대의 대공황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전자계산기를 개발했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공장들이 미국 정부 관할아래 폭격조준기나 라이플 총 같은 30여 종의 전쟁관련 물품을 생산했다고 합니다. 1940년대에는 아들인 토마스 왓슨 주니어가 회사의 경영 전면에 나섭니다.  1944년 IBM은 하버드 대학과의 연구성과로 "마크-1" 이라고 하는 자동 수열 제어 계산기(Automatic Sequence Controlled Calculator)를 개발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기억장치를 집어넣어서 전자계산기가 컴퓨터로 진화시키는 데에는 경쟁사인 레밍턴 랜드(Remington Rand)에게 뒤지게 됩니다.  레밍턴 랜드는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인 UNIVAC(Universal Automatic Computer)을 개발하여 IBM을 앞서 나갑니다.  이런 차이는 토마스 왓슨이 연구보다는 영업에 중점을 둔 경영을 하였기 때문인데, 왓슨 2세가 부사장자리에 오르면서 컴퓨터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서 상황을 역저시킵니다.  1952년 IBM은 학술연구와 국방부분에 널리 쓰이게 되는 IBM 701을 발표하면서 컴퓨터 산업을 다시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발표된 후속제품들도 큰 성과를 거두면서 "컴퓨터=IBM" 이라는 등식을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PC를 위시한 소형 컴퓨터의 부상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면서 자신들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컴퓨터 시장에서 애플을 비롯하여, 코모도어, 아타리, 탠디 등의 8비트 PC를 생산하던 업체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맙니다.  IBM이 작은 데스크탑 형태로 최초로 만들었던 컴퓨터는 1975년에 소개되었습니다.  IBM 5100 이라는 제품이었는데, 문제는 가격이었습니다.  무려 $20,000 달러에 이르는 기계였기 때문에 커다란 기업들이나 대학과 같은 곳들 이외에는 시장형성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PC 시장에 참전하기로 결정하면서 IBM의 행보는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IBM-PC의 등장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특성 상 기존의 팀을 운영해서 PC를 개발하기 보다는 새로운 디자인 프로세스와 패러다임에 적응하기 위해 IBM 내에 스페셜 팀이 구성이 됩니다.  이 프로젝트는 "프로젝트 체스(Project Chess)"로 명명되고, 돈 에스트리지(Don Estridge)를 중심으로 12명의 엔지니어와 과학자들로 구성됩니다.  이들은 딱 1년의 기간 내에 PC를 완성하라는 IBM의 지시를 훌륭하게 소화를 합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내놓기 위해서 돈 에스트리지는 모든 것을 직접 만들던 방식에서 벗어나서 기존의 존재하는 부품들을 모아서 생산하고, 외부의 자원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으로 선회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PC용 모니터와 프린터 디자인 등도 OEM을 활용하기 결정하는데, IBM Japan에서 개발했던 모니터와 Epson 의 프린터 모델 등을채용하였습니다. 또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개방형 아키텍처(Open Architecture) 였습니다.  이를 통해 특별한 라이센스 없이 각종 주변기기를 다른 회사에서 쉽게 생산할 수 있도록 하고, 소프트웨어도 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런 개념은 당시의 IBM 으로서는 대단한 혁신이었습니다.  개방형 아키텍처는 애플 II 역시 가지고 있었던 전략인데, IBM은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완전한 회로도와 ROM BIOS 소스코드 등을 포함한 IBM PC 기술 레퍼런스 매뉴얼까지 공개합니다.  이러한 준비과정을 거쳐 IBM은 1981년 8월 12일 역사적인 첫번째 PC를 출시합니다.

당시 IBM 으로서는 역사를 바꿀 수 있었던 몇 차례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최초에 고려되었던 CPU는 IBM이 자체개발한 RISC CPU 였던 801 프로세서였습니다.  이 CPU는 인텔의 16비트 CPU 였던 8088 보다 몇 배는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시간의 압박과 저렴한 가격을 맞추기 위해서 인텔과 손을 잡는 결단을 내립니다.  비슷한 이유로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MS-DOS를 채택하게 되는데, 당시 IBM에는 유닉스에 기반을 둔 MS-DOS 보다 훨씬 앞선 운영체제가 있었음에도 채택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때의 결정은 결국 세상을 크게 바꾸게 됩니다.  만약 이 때 IBM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CPU를 탑재하고, 유닉스 기반의 자체 운영체제를 내장해서 PC를 내놓았더라면 마이크로소프트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와 같은 개방형 정책은 수많은 제조사들이 BIOS를 역공학한 뒤에 IBM-PC와 호환이 되는 수많은 제품들의 탄생을 유도하게 되는데, 컬럼비아 데이터 프로덕트(Columbia Data Products)는 첫 번째 IBM-PC 호환기종을 1982년 6월에 발표하며, 뒤를 이어 컴팩(Compaq)이 11월에 포터블 제품을 발표하였습니다. 

초기 IBM-PC는 대성공을 거둡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성공은 이런 호환 제품군들을 생산하는 많은 회사들과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대한 미래의 소프트웨어 제국을 길러내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는데 그치게 되며, 결국 PC 사업에서 손을 떼는 결과를 낳게 만듭니다.


(후속편에서 계속 ...)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하이컨셉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명저들 ...

피드버너로 구독하세요 ...

TRACKBACK :: http://health20.kr/trackback/1529 관련글 쓰기

  1. 캡틴데니얼의 생각

    Tracked from daroo's me2DAY  삭제

    ^___^ 바로 후편 기대 들어갑니다!!! RT hiconcep님: [하이컨셉&하이터치]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IT 삼국지 (11) http://durl.me/d23b

    2010/03/15 13:20



서비스 디자인의 영역은 특히 세상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러 나라를 돕는 비영리 자선사업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가난하다고 해서 어딘가에 의존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도 존엄성과 자존심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기에, 과거에 마치 가진 자들이 그냥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무상으로 돈을 주기만하면 이를 거부하기도 하고, 또한 받는다고 하더라도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 뿐 그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장기적인 효과를 가져오기는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가난과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해결모델(solution model)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히 물과 에너지, 건강과 주택 문제와 같은 가장 기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술과 함께 적은 비용으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같이 고민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이런 목적으로 설립된 기금이 바로 Acumen Fund 인데 수자원, 건강, 주택, 에너지 문제를 저렴하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사명입니다.  개인적으로 미래의 분산네트워크 환경(Distributed Network Environment)의 시대로 진입할 때에도 전세계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노력이 더욱 커지고 자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많은 사람들의 자본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Acumen Fund 는 2001년 4월, 록펠러 재단과 시스코 시스템재단, 그리고 3명의 자선사업가들의 자금을 모아서 출범했습니다.  그 이후 게이츠&멜린다 재단과 같은 유수의 재단과 개인들도 참여를 해서 세계적인 가난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식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환경디자인

Acumen Fund 의 주요사업 중의 하나는 식수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가난한 나라들이 현재 겪고 있는 가장 커다란 고통 중의 하나가 안전한 식수원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 값비싼 정수장비나 상수도 시설을 할 수 있는 재원이 이들 나라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물을 어떻게든 안전하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 커뮤니티에 맞는 지속가능한 상업적 모델도 같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소셜 마케팅 전문가와 지역사회 시장에 대한 명확한 이해, 또한 저렴하게 세균이 감염된 물을 정수할 수 있는 세계적인 기술이 같이 결합된 모델을 디자인하는 것이 커다란 숙제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인도의 한 마을에서 시작한 모델과 시스템은 현재까지 285개의 지역에서 이용될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Acumen Fund 에서는 이를 단순히 자선사업의 형태로 만들지 않고, WHI(WaterHealth International) 이라는 비영리 사업체를 설립해서 지속가능한 사업의 형태로 재편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인도에서 두번 째로 큰 은행인 ICICI 에서 $100만달러를 대출하고, 다우벤처 캐피탈(Dow Venture Capital)에서는 $1100만 달러의 자금을 투자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사업계획과 함께 빠른 시일 동안 많은 수의 지역에 안전한 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수는 점점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역시도 정교한 환경디자인(Environmental Design)이 잘 구현된 예라고 하겠습니다.


서비스 디자인, 물을 디자인하다.

WHI 의 식수공급 시스템은 IDEO 가 디자인을 했습니다.  IDEO의 접근방법은 개방적이고 협업과 참여가 필요한 방식을 적극적으로 채용을 하였는데, 먼저 디자이너들과 투자전문가들을 모으고, 여기에 인도의 11개의 수자원 관련 기관에서 차출한 전문가들과 팀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워크샵을 통해 다양한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거쳐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을 모두 다같이 끌어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이용된 것이 디자인 방법론들입니다.  경쟁을 통해 서로 다른 모델을 도출하였고, 11군데 중에서 5군데 기관에서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제출한 사업계획에 사업자금을 제공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Acumen과 IDEO, 그리고 아이디어를 낸 5군데 기관의 전문가들이 수주 간의 작업을 통해 정교한 실행방안을 만들어 냅니다.  여기에는 새로운 소셜 마케팅 캠페인, 지역사회로 파급될 수 있는 전략, 비즈니스 모델 등과 같은 무형의 것들과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새로운 시설이나 물을 배달할 수 있는 카트를 디자인하는 것과 같은 유형의 디자인 영역이 공존합니다.  이런 아이디어들은 실제로 시장에 적용이 되어 많은 지역사회의 식수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이런 성공사례들이 다른 NGO 들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 등으로 전파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인도에 적용된 저렴한 물탱크 디자인

저렴한 물의 판매를 담당하는 지역사회 물센터


이런 것들은 소위 말하는 서비스와 제품 디자인, 심지어는 정교한 비즈니스 모델 디자인이 결합된 커다란 시스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려면 여러 영역의 전문가들의 협업이 필요하며, 이들을 잘 지휘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파악하는데 집중하고, 간단한 프로토타입을 빨리 만들고, 이러한 아이디어가 검증이 되면 신속하게 구현이 될 수 있는 실무진들과 사업체에게 전달이 되고, 지역사회의 활발한 참여를 끌어낸다면 우리 인류가 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하이컨셉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명저들 ...

피드버너로 구독하세요 ...

TRACKBACK :: http://health20.kr/trackback/1424 관련글 쓰기




아이패드가 예약 구매를 시작했습니다.  예약구매 첫날 6시간 만에 10만대가 예약되는 등, 벌써부터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이패드에 대항을 하기 위해 이미 여러 곳에서 태블릿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차세대 태블릿은 쿠리어(Courier)의 컨셉 영상을 자꾸 흘리고 있고, HP에서는 Slate 라는 태블릿을 내놓았습니다.  그렇지만 솔직히 아직은 모두 역부족으로 보입니다.

되려 최근 Notion Ink 라는 작은 회사에서 발표한 Adam 이라는 제품이 눈에 띕니다.  특히 Pixel Qi 의 디스플레이를 장착하여 전자책과 LCD 디스플레이를 겸용으로 사용하고, 안드로이드와 크롬과 같은 리눅스 기반의 운영체제를 이용하는 저렴함이 눈길을 끌게 합니다.  아마도 올해 하반기에는 구글의 안드로이드/크롬 기반의 이와 같은 저가의 태블릿들이 많이 등장하지 않을까 전망해 봅니다.  현재로서는 이런 태블릿이 아이패드의 가장 큰 적수로 생각됩니다.  Adam 의 스펙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근 동작하는 데모가 MWC 바르셀로나에서 공개가 되었고, Technoholik 을 통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크롬이나 안드로이드가 장착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앱 또는 웹 서비스들과 결합할 수 있는 생태계가 아직 정교하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기존 넷북들이나 윈도우 기반의 노트북들보다는 훨씬 경쟁력이 있어 보입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하이컨셉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명저들 ...

피드버너로 구독하세요 ...

TRACKBACK :: http://health20.kr/trackback/1526 관련글 쓰기

  1. 비틀액쓰의 생각

    Tracked from beatlx's me2DAY  삭제

    애플 아이패드 최대 경쟁자는 이런 태블릿!.

    2010/03/14 18:13

from YouTube.com


증강현실의 현실응용과 관련하여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두려움(?)을 일으킨 것 중의 하나가 카메라로 그 사람의 신상정보를 바로 파악하고, 동시에 평가도 할 수 있는 사용자 케이스를 데모했던 TAT의 컨셉 비디오가 아닌가 합니다.  못보신 분들을 위해 당시의 컨셉 비디오 임베딩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컨셉 비디오가 정말로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물론 컨셉 비디오 수준까지는 아니지만요.  TAT는 Polar Rose 라는 세계적인 컴퓨터 영상인식 서비스 회사와 협업을 해왔는데, TAT 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시리즈인 Cascades 에 Polar Rose 의 FaceLib 를 결합한 Recognizr 라는 프로토타입을 발표했습니다.

일단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데, 여전히 사회적/윤리적인 논란을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실제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가장 커다란 소셜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과 연계가 필요할 듯하고, 이들과 프라이버시 설정에 대한 부분들에 대해 협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프로토타입이 개발된 Recognizr 영상을 소개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하이컨셉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명저들 ...

피드버너로 구독하세요 ...

TRACKBACK :: http://health20.kr/trackback/1474 관련글 쓰기


from Wikipedia


IT 삼국지, 지난 포스트에 이어 오늘도 변방국가 최고의 장수 한명을 소개합니다.  바로 8비트 최강의 운영체제인 CP/M을 만들었던 게리 킬달(Gary Kildall)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이면서 디지털 리서치(Digital Research, Inc.)라는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오늘날의 마이크로소프트를 있게 만든 MS-DOS 역시 CP/M의 아류작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만큼 시대를 앞서간 최고의 컴퓨터 과학자였습니다. 한순간의 선택으로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게리 킬달과 바늘 틈과도 같은 기회를 포착하고 여우처럼 낙아챈 마이크로소프트의 운명은 IBM의 기분에 따라서 결정되고 맙니다.  게리 킬달은 죽을 때까지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를 용서하지 못했다고 하는 오늘의 삼국지 이야기 시작합니다.


시애틀의 컴퓨터 천재, 세계 최초의 PC용 운영체제를 개발하다.

게리 킬달은 여러모로 빌 게이츠와 비교가 됩니다.  그 역시 시애틀 토박이로 대학 역시 시애틀의 명문인 워싱턴주립대학(University of Washington)을 나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실리콘 밸리 인근 해안가에 위치한 아름다운 도시로 유명한 몬터레이의 미국 해군 대학원에서 미해군을 가르치면서 군복무를 대신했습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인텔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4004 마이크로프로세서입니다.  그는 이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구입하여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이것저것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의 프로그래밍 실력을 눈여겨 본 인텔은 일과가 마친 이후에 그가 컨설턴트로 일을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게리 킬달은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UW로 돌아와 1972년 컴퓨터 과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합니다.  그리고, 컴파일러의 최적화와 관련된 데이터 플로우 분석방법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는데, 그의 방식은 아직도 현대의 컴파일러에서 이용될 정도로 영향력있는 논문입니다.  인텔과 계속 일을 하면서, 그는 플로피 디스크가 세상을 바꿀 것으로 예측하고 8008과 8080 프로세서를 이용하여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동작할 수 있는 최초의 고수준 프로그래밍 언어를 1973년에 개발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PL/M 입니다.  같은 해 인텔의 8080 프로세서를 이용해서 플로피 드라이브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범용 디스크 운영체제를 개발합니다.  이것이 바로 8비트 운영체제를 천하통일한 CP/M 입니다.  애플 II가 1977년 발표되었고, 스티브 워즈니액이 개발한 애플 II의 DOS(Disk-Operating System)인 Disk-II 와 애플 도스가 그보다 약간 뒤에 개발되었음에도 CP/M의 정교함과 편리함을 따를 수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가 얼마나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천재적인 사람이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진정한 보석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인텔, CP/M의 대성공

게리 킬달은 CP/M을 개발한 뒤, 자신을 컨설턴트로 써준 인텔에 제일 먼저 데모도 하고 중요성도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인텔에서는 CP/M이라는 운영체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신 그가 개발한 PL/M 프로그래밍 언어와 컴파일러의 판매권만을 사서 시장에 내놓는 우를 범합니다.

인텔이 CP/M을 냉대하자, 게리 킬달은 그의 와이프인 도로시와 함께 Intergalactic Digital Research 라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이 회사는 이후 Digital Research, Inc.로 이름을 바꾸고 CP/M 운영체제를 컴퓨터나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취미잡지에 광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제일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은 세계 최초의 PC로 간주되기도 하는 Altair 8800을 복제한 IMSAI 8080 이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수 많은 회사들이 서로 다른 컴퓨터에 CP/M을 포팅해주기를 원했는데, 이때 킨달이 정립한 개념이 바로 BIOS(Basic Input/Output System) 입니다.  컴퓨터 하드웨어에 내장된 BIOS만 수정하면 CP/M은 어느 컴퓨터에서나 동작을 하였고, 이러한 강점을 등에 업고 CP/M은 8비트 운영체제로서 거의 독점적 위치를 얻게 됩니다.

CP/M은 놀랄만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디지털 리서치는 무려 3,000개가 넘는 컴퓨터 모델에서 CP/M을 동작시켰고, 매년 수백 만불이 넘는 매출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때 디지털 리서치가 유일하게 정복을 하지 못한 컴퓨터 모델이 있었으니, 그것아 바로 애플입니다.  애플은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애플만의 독자적인 디스크 운영체제를 고수했고, CP/M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Z-80이나 8080과 같은 CPU가 장착된 카드를 사서 확장슬롯에 꽂아야 했습니다.  


IBM PC의 등장과 CP/M, 그리고 MS-DOS 

1980년 컴퓨터 업계의 거인 IBM이 PC 사업을 시작하는 결단을 내립니다.  플로피 디스크가 기본으로 내장된 IBM-PC에 있어 가장 중요했던 것 중의 하나가 운영체제를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운영체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던 빌 게이츠는 IBM 측에 디지털 리서치의 CP/M을 라이센싱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합니다.  이에 따라 IBM은 16비트용 CP/M 운영체제인 CP/M-86을 자사의 기본 운영체제로 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디지털 리서치를 방문합니다.

당시 게리 킬달은 자신의 자가용 비행기를 몰고 소프트웨어를 다른 파트너 회사에게 전달하기 위해 떠나면서, 계약은 그의 아내 도로시에게 일임을 하고 갔습니다.  이는 게리 킬달이 흔히 하던 방식인데, IBM의 실무진들은 디지털 리서치와의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언제나와 같이 비밀준수계약을 하기를 원했는데 도로시는 게리 킬달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비밀준수계약을 거절합니다.

이에 단단히 화가난 IBM은 디지털 리서치와의 계약을 포기하고,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합니다.  시애틀로 돌아온 IBM은 빌 게이츠를 만나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체제를 개발하거나 대안 운영체제를 찾아줄 것을 부탁합니다.  당시 빌 게이츠는 이미 IBM에 BASIC 언어의 인터프리터를 포함한 몇 종류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납품하기로 합의를 한 상태였고, 시애틀에 위치한 한 작은 회사가 CP/M을 복제한 86-DOS라는 운영체제를 개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폴 알렌은 즉시 이 운영체제의 사용권을 단돈 5만 달러에 구매해서 IBM과의 협상에 임합니다.  86-DOS는 IBM의 하드웨어에 성공적으로 포팅이 되고, IBM은 이를 PC-DOS로 명명합니다.

PC-DOS를 본 게리 킬달은 이것이 CP/M을 복제한 것임을 바로 알게 되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컴퓨터 소프트웨어 저작권에 대한 체계가 완비되지 않은 탓에 게리 킬달은 IBM이 협상안으로 제시한 CP/M-86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중재안에 합의를 합니다.  이에 따라 처음 IBM-PC를 출시하면서 IBM은 운영체제를 별도옵션으로 출시합니다.  PC-DOS를 선택하면 $40 달러를 더 내면 되었고, CP/M-86은 $240 달러를더 내야 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PC-DOS라는 이름 대신 MS-DOS라는 이름으로 IBM의 호환기종에게 운영체제를 판매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CP/M-86 역시 다른 호환기종 시장에서 경쟁을 했는데, 오리지널 IBM-PC 모델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MS-DOS의 시장지배력을 당할 수 없었습니다.  MS-DOS의 성능과 기술은 CP/M보다 떨어졌고, 버그도 많았지만 워낙 싼 가격을 내세운 MS-DOS가 승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디지털 리서치의 경영에서 손을 떼다.

IBM과의 협상을 통해 게리와 도로시는 자신들의 불찰과 잘못된 경영적 판단을 반성하고, 회사의 직접 경영에서 영향력을 점차 줄여나갑니다.  그러면서, 다양하고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CP/M을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도록 진화시켰고, BASIC에 대항하기 위해 Logo 프로그래밍 언어를 구현했습니다.  또한, 애플의 Lisa의 데모를 보고난 뒤에는 GEM(Graphical Environment Manager) 데스크탑이라는 GUI도 개발하였습니다.

결국 게리 킬달은 디지털 리서치를 당시 최고의 네트워크 회사였던 노벨(Novell)에 1991년 매각하고, 자신은 PC의 트렌드를 전하는 공중파 방송활동과 광학 디스크 기술을 컴퓨터에 적용하는 KnowledgeSet라는 회사, 최초의 컴퓨터 백과사전이었던 Grolier's American Academic Encyclopedia, 가정용 PBX 시스템을 이용한 유선전화와 휴대폰을 통합하는 시스템 등을 개발하는 벤처사업을 하였습니다.


게리 킬달은 언제나 창의적이고 호탕했으며, 모험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비행기 조종, 스포츠 레이싱과 보트를 사랑했고 바다를 사랑하였습니다.  IBM과의 사건 이후에 그는 언제나 빌 게이츠와 비교했으며, 빌 게이츠를 싫어 했다고 합니다.  특히 1992년 자신의 모교인 UW의 컴퓨터 과학 프로그램의 기념일에 초청을 받았는데, 하버드 대학 중퇴 출신인 빌 게이츠가 키노트 강연을 하는 것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디지털 리서치를 노벨에 매각을 하고, 그는 텍사스 오스틴 인근의 West Lake Hills라는 곳에 이주를 해서 그가 사랑한 스포츠 카와 비디오 스튜디오, 그리고 자가용 비행기와 보트를 타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그가 사랑했던 도시인 몬터레이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추락해서 사망합니다.  미확인 정보에 의하면 당시 그는 알콜중독으로 많은 시간 술에 취해 있었고, 사고 역시 음주에 의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습니다.

게리 킬달이 이룩한 컴퓨터 과학에서의 업적은 정말 눈이 부실 지경입니다.  그 중 중요한 것만 나열해도 다음과 같습니다.

  • PC 최초의 디스크 운영체제 개발
  • 선점형 멀티태스킹과 윈도우 기능을 가진 운영체제 개발 및 소개
  • 메뉴기반 사용자 인터페이스 개발
  • 최초의 디스크 트랙 버퍼링 스키마, Read-ahead 알고리즘, 파일 디렉토리 캐쉬, RAM 디스크 에뮬레이터의 개발자
  • 1980년대 바이너리 리컴파일러를 처음으로 소개
  •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처음으로 동작하는 컴파일러 및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
  • 오늘날 쌍방향 멀티미디어 기술의 기초가 된 최초의 비디오 디스크에 대한 비선형 플레이가 가능한 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 개발
  • 세계 최초의 소비자용 CD-ROM에 대한 파일 시스템 및 데이터 구조 개발
  • 컴퓨터 하드웨어와 운영체제를 개방형으로 만들 수 있는 시스템 아키텍처를 위한 BIOS 개발

그는 진정한 PC의 혁명가였고, 오늘날의 혁명을 있게 한 최고의 과학자였습니다.  비록 신은 그에게 빌 게이츠와 같은 명성과 부를 주지 않았고, 경영능력도 뛰어나지 못했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히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을 것입니다.


참고자료:
Wikipedia

(후속편에 계속 ...)
저작자 표시 비영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하이컨셉이 강력하게 추천하는 명저들 ...

피드버너로 구독하세요 ...

TRACKBACK :: http://health20.kr/trackback/1524 관련글 쓰기

Loading

카테고리

하이컨셉 & 하이터치 (1081)
글로벌 시대 (92)
스포츠과학, 의학, 심신건.. (41)
골프장, 골프과학, 골프의학 (53)
척추와 허리 이야기 (27)
수술공학/의공학 (40)
건강증진의학 (59)
의료관광, 병원세계화 (6)
보건의료정책 (1)
IT 삼국지 (12)
글로벌 경영과 기업 (97)
Health 2.0/Web 2.0 (116)
블로그, 트위터, 미디어 2.0 (83)
모바일 월드 (94)
증강현실과 LBS (27)
하이터치 디자인시대 (68)
미래의 자동차 (33)
하이테크 기술 (60)
어떻게 가르칠까? (23)
와인 이야기 (2)
만화랑 애니, 게임 ... (13)
이 한권의 책 ... (15)
서비스 산업, 서비스 디자인 (10)
Contemporary Art (34)
낙서장 (71)

공지사항

달력

«   2010/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3,045,855
  • 2172,204
믹시

하이컨셉 & 하이터치

하이컨셉'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atter & Media
Copyright by 하이컨셉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atter & Media DesignMyself!
하이컨셉'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atter &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