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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ly Fighter, Designed by Sangho Kim, with the Local Motors Community


로컬 모터스(Local Motors)라는 회사를 아시나요?  이 회사는 세계 최초의 오픈소스 자동차 회사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있는 보스턴 인근의 회사로 작은 마이크로 공장(micro-factory)을 최대한 활용한 신개념 제조업 혁신을 이끌고 있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의 첫번째 제품인 렐리 파이터(Rally Fighter)라는 오프로드 레이싱 자동차는 올해 6월 정도에 $50,000 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공식 출시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디자인은 크라우드 소싱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컴포넌트 부품들을 활용하며, 마지막 조립은 고객들이 지역에 위치한 로컬 조립센터에 들러서 조립을 도와주는 기술자들과 함께 자신의 차를 직접 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차를 가지게 됩니다.  앞으로 몇 가지 디자인 모델이 더 준비되고 있는 가운데, 현재 약 18개월 정도면 스케치에서 실제 출시가 이루어질 수 있으며 모든 디자인은 크리에이티브 커몬스(Creative Commons) 라이센스로 배포되기 때문에 고객들이 마음껏 디자인을 바꾸거나, 자신만의 컴퓨넌트를 생산하거나 추가해서 다른 사람에게 판매도 할 수 있습니다.

이 회사의 CEO 인 제이 로저스(Jay Rogers)는 로컬 모터스 커뮤니티라는 자원봉사 조직을 활용해서 자동차의 디자인을 모았습니다.  부품도 따로 개발하지 않고, 이미 구할 수 있는 부품들을 늘어놓고 고르는 방법을 이용했으며, 디자인에 참여한 엔지니어들 역시 자동차 수리와 튜닝 등에 잔뼈가 굵은 경험자들이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렐리 파이터의 디자인으로 확정된 김상호(Sangho Kim) 씨의 디자인은 실제로 현존하는 어떤 자동차 회사의 디자인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멋진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상호씨는 캘리포니아 LA 북쪽에 있는 파사디나의 Art Center College of Design 의 학생이자 그래픽 아티스트로 약관 30세의 청년입니다.

김상호씨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실제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부품들과 상세설계는 다른 여러 명의 디자이너들과 엔지니어들, 그리고 자동차를 취미로 만지는 사람들이 맡아서 만들었습니다.  커뮤니티에서 확정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로컬 모터스에서는 외관과 샤시, 엔진, 그리고 트랜스 미션 등을 펜스키 자동차 그룹(Penske Automotive Group)과 같은 대형 자동차 도소매 유통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조달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렐리 파이터의 엔진에는 BMW 의 디젤 엔진이 선택되었습니다.

로컬 모터스는 각 모델별로 500~2000 대 정도씩만 부품을 키트로 만들어서 판매할 예정으로, 대량생산 마켓보다는 니치 마켓을 노리는 전략을 펼칩니다.  단 10명의 직원을 가지고, 재고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부품의 구매와 키트를 준비하는 것은 구매자가 돈을 낸 다음에 이루어지는 획기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이 놀라운 회사는 CEO인 제이 로저스(그 역시 올해 36세의 젊은 사업가 입니다)가  하버드 대학에서 MBA 과정을 밟을 때 섬유업계에서의 전설적인 성공모델로 자리하고 있는 개방형 T 셔츠 회사로 유명한 Threadless 의 강의를 듣고 구상한 것이 구체화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7백만 달러 정도의 펀딩을 했는데, 그 정도면 수익을 내면서 사업을 진행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을 하고 바로 로컬 모터스 사업을 진행을 하였습니다.

특히 제이 로저스가 주목한 것은 젊은 학생들이었습니다.  사실 자동차를 전공으로 공부를 해도 실제 자동차 회사에서 직업을 가지게 되는 학생의 수는 30%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동차 디자이너의 경우 정말 뛰어난 젊은 학생들이 업계에 진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여기에 착안한 제이 로저스는 로컬 모터스 웹 사이트에 자동차 디자인 크라우드 소싱을 진행하기로 결심합니다.  현재 로컬 모터스 웹 사이트에는 5,000 명이 넘는 디자이너들이 등록되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롱테일이 주로 전자상거래를 중심으로 지난 10년간 퍼져나갔다면, 앞으로는 다양한 산업영역을 통해 등장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자동차와 같은 가장 복잡한 제조업의 롱테일 사업이 성공한다면 이는 정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또 하나의 기술혁신이 바로 3-D 스캐닝과 프린팅을 이용한 제조 2.0 관련한 기술의 대중화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고, 과거에도 올린 글들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연관글:
이제는 설계도만 있다면, 부품을 쉽게 생산할 수 있는 마이크로 공장 기술이 일반화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설계도와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과 공간, 그리고 유통체계 등이 갖추어지면서, 과거에는 강력한 통제를 바탕으로 기계적인 분업으로만 가능하였던 복잡한 기계의 롱테일 생산이 실체화할 수 있는 시기가 오고 있습니다.

로컬 모터스의 혁신적인 시도가 어떻게 꽃을 피우게 될지 주목됩니다.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자동차 관련 여러가지 규제 때문에 이런 형태의 비즈니스가 진행될 수 없다는 글도 보았습니다만, 우리나라처럼 강력한 자동차 제조산업 인프라 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거의 없으며, 자동차 관련 수리나 유통 등을 담당하는 인력들과 우수한 디자인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있음을 생각하면 크라우드 소싱 디자인과 협업을 통한 오픈소스 자동차 프로젝트는 자동차 제조업의 롱테일을 성공시킬 수 있는 새로운 사업기회도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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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맹수의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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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컨셉 & 하이터치 :: 제조 2.0을 선도하는 오픈소스 자동차 업체

    2010/02/28 17:11
  2. 음주의 생각

    Tracked from drunken_j's me2DAY  삭제

    제조 2.0을 선도하는 오픈소스 자동차 업체 http://bit.ly/bUfT9l /cc by drunken_j님의 Feedly

    2010/03/03 09:26

from Wikipedia


천재들의 전설적 컴퓨터 모임, 홈브루 컴퓨터 클럽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액은 홈브루 컴퓨터 클럽이라는 전자제품 매니아들의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이 클럽은 다양한 전자관련 부품들이나 회로, 그리고 정보를 교류도 하고, 컴퓨터 관련 장비를 직접 조립도 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는데, 고든 프렌치(Gordon French)의 차고에서 1975년 첫 모임을 가지고 비정기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이때의 멤버들은 아직도 정기적인 미팅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지만, 이들의 수준은 정말 당대 최고였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Altair 8800 컴퓨터가 나온 뒤에는 이와 유사한 컴퓨터를 조립하거나, 프로그래밍에 대해서도 논의를 하였으며, 가끔씩 발행하는 뉴스레터는 실리콘 밸리의 문화를 만드는 데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특히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라는 아이디어를 확산시키고 후에 애플 컴퓨터가 출범하게 되는데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를 하였습니다.

이 컴퓨터 클럽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스티브 워즈니액이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하드웨어 디자인, 조립실력과 컴퓨터 프로그래밍 능력으로 클럽 멤버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애플 컴퓨터, 드디어 깃발을 올리다.

이렇게 새로운 컴퓨터 시대를 맞이하여, 스티브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생각에 스티브 워즈니액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서 컴퓨터를 설계하고, 차고에서 컴퓨터를 조립했습니다.  그러면서, 1976년 로널드 웨인(Ronald Wayne)과 함께 3명이서 애플 컴퓨터의 깃발을 올립니다.  로널드 웨인은 아타리에서 스티브 잡스와 일을 했었고, 스티브 워즈니액의 기술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첫번째 애플 로고도 그리고, 애플-1 의 매뉴얼을 작성하는 작업과 각종 계약서를 작성하는 등의 실무를 맡았습니다.  그러면서 애플의 주식 10%를 가졌는데, 2주 뒤에 성공을 확신하지 못하고 $800에 자신의 주식을 매각하고 애플을 떠납니다. 웨인은 당시 상황에서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지만, 현재의 애플이라는 회사의 가치를 생각하면 아마도 마음이 많이 상할 것 같습니다.

스티브 워즈니액은 스티브 잡스의 차고에서 만든 애플 I 퍼스널 컴퓨터 키트를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 처음으로 소개합니다.  애플-1 은 Altair 8800과 비슷한 형태를 가졌는데, 내부에 확장 카드를 꽂을 수 있도록 하였고, $25 정도하였던 MOS 6502 라는 CPU를 가졌으며, 256 바이트의 ROM과 4K~8K 바이트 RAM을 가졌습니다.  디스플레이 컨트롤러는 40열에 24개의 행을 표시할 수 있었는데, 케이스나 파워, 키보드, 디스플레이 등도 없이 보드만 판매하는 형태였습니다.  사실 스티브 워즈니액은 애플 컴퓨터에 Altair 가 사용한 인텔의 8080 칩을 쓰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가격이 무려 $179 달러나 하였기 때문에 포기를 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모토롤라의 6800 을 고려하였지만, 역시 최고로 낮출 수 있는 가격이 $175 달러나 하였습니다.  결국 애플이 이름없는 회사의 기능도 많이 떨어지는 CPU인 6502를 채택한 것에는 월등히 싼 가격이 한 몫을 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6502는 6800 CPU와 상당히 기능적으로 비슷하였고, 4KB RAM 에 올라가서 동작하는 BASIC 인터프리터를 만들어서 올리고 판매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실리콘 밸리의 여러 컴퓨터 가게들을 돌아다니면서, 애플 컴퓨터를 보여주고 주문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가격은 $666.66 달러로 결정하였는데, 그 의미와 애플의 로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이 연재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제품을 주문한 곳은 바이트(Byte) 라는 가게를 새로 열려고 했던 폴 터렐(Paul Terrell) 이었습니다. $500 달러에 50대의 애플-1을 구매하기로 하였는데, 문제는 애플이 100대를 제작할 수 있는 부품을 구하기 위한 자본금이 하였던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폭스바겐 미니버스를 팔았고, 스티브 워즈니액은 자신이 아끼던 HP의 최고급 공학용 전자계산기까지 팔았지만 돈이 부족했습니다.  그렇지만, 스티브 잡스는 특유의 영업력과 화술로 부품을 공급하는 가게들에게 신용으로 상당부분 부족한 부분을 메꾸었으며, 추가로 은행에서 $5,000 달러의 빚을 얻어서 부품을 구했다고 합니다.

스티브 워즈니액은 뛰어난 기술자였지만, 사람들하고 협상을 하거나 계약을 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였고, 그냥 컴퓨터와 기술이 좋아서 그것만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에 비해, 스티브 잡스는 재능있는 사람과 가능성을 볼 줄 알았고, 처음보거나 잘 모르는 사람도 잘 설득할 수 있는 화술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니아가 아닌, 일반인들을 위한 컴퓨터를 기획하다.

애플-1 은 200대 정도가 제작이 되었고, 약 10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대부분 판매가 됩니다.  애플-1 은 Altair 와 비교했을 때 그래도 사용하기 편리한 편이었지만, 조립이 간단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또한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BASIC을 이용하게 만들려면, ROM에 3K 정도 되는 16진수 바이트 코드를 입력해야 했는데, 적어도 20~30분 정도는 소요가 되는 작업이었고,  스티브 잡스는 이래서는 매니아들을 위한 컴퓨터는 될 수 있어도, 일반인들이 마음대로 쓰는 자신들이 꿈꾸던 세상을 위한 컴퓨터로서의 자격은 없다는 판단을 합니다.

애플-1 을 추가로 생산하기 보다는 사용자가 사용하기 편리한 형태의 컴퓨터 기술들을 스티브 워즈니액과 스티브 잡스는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초기 애플-1 판매에 큰 도움을 준 바이트 샵의 폴 터렐이 소비자 입장에서 원하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여러가지 기능개선이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카세트 테이프에 저장과 불러들이기가 가능하도록 카세트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고, 마더보드에 추가를 하였습니다.  여기에 워즈니액이 만든 BASIC 언어를 담아서 팔기 시작했으며, 폴 터렐은 나무로 만든 박스에 마더보드를 넣어서 애플-1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애플 II 는 처음부터 예쁜 플라스틱 케이스와 키보드가 통합된 형태로 디자인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스티브 워즈니액이 스티브 잡스와 아타리에서 진행했던 벽돌깨기(Breakout) 프로그램을 동작시킬 수 있는 하드웨어를 만들기 위해서 제일 먼저 컬러를 지원하기로 합니다.  이를 위해 라인을 그리고, 컬러를 바꾸는 등의 새로운 BASIC 언어들과 루틴들을 추가하고 동시에 소리를 내기 위한 사운드 작업과 본체에 스피커까지 달게 됩니다. 이처럼 애플 II는 게임을 좋아했고, 벽돌깨기 게임 프로젝트를 사랑했던 스티브 워즈니액에 의해 게임을 즐기기 쉬운 컴퓨터로 재탄생을 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다양한 기능들이 추가되면서 향후 애플 II 용으로 수많은 컴퓨터 게임들이 등장하면서, 애플 II가 PC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추가적으로 RAM 의 증설에도 신경을 썼는데, RAM 의 크기에 따라 다양한 가격의 제품들이 나오게 됩니다.  4KB 부터 최대 48KB 까지 메모리를 설치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무척 우스운 크기이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커다란 메모리 용량이었습니다.  16KB 의 RAM이 1977년 당시 $500 달러에 육박했기 때문에, 가장 커다란 가격의 압박요소가 되었는데, 경쟁사였던 코모도어(Commodore)의 PET나 라디오쉑(Radio Shack) 의 TRS-80 의 경우에는 개방형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스티브 워즈니액은 향후 확장이 가능하도록 마더보드를 제작함으로써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합니다.

스티브 워즈니액은 애플 II 에 8개의 확장 슬롯을 설계해서 마더보드에 통합시켰습니다.  이는 다른 경쟁제품들에 비해 강력한 차별점으로 부각되는데, 수많은 주변기기 제작회사들이 다양한 확장카드들을 만들면서 애플의 전성시기를 열었습니다.  사실 이때에도 스티브 잡스는 프린터와 모뎀을 위한 확장슬롯 2개 정도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불필요하며, 쓸데없이 제작비만 올리게 된다며 반대했지만 워즈니액은 HP 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확장성의 중요성을 강력히 주장하여 8개의 슬롯을 모두 지킬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개인적으로 저 역시 어렸을 때 애플 II 를 이용했는데, 애플의 개방형 아키텍처(Open Architecture)는 정말 강력한 생태계를 구성했고, 애플을 선택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개방형 철학에 대해 처음부터 긍정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럼에도 애플 II가 그렇게 개방적인 컴퓨터가 되었던 것은 스티브 워즈니액의 영향력이 당시에는 더욱 컸기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액과는 달리 애플 II 가 정말 다른 컴퓨터들과는 차별화된 다른 모습을 가진 컴퓨터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스케치와 모형을 만들어 가면서, 기존의 각이 진 육면체 형태의 모습을 탈피한 새로운 컴퓨터의 모습을 디자인하는데 역량을 집중하였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전자제품 매니아들처럼 부품을 구해서 조립을 하거나, 케이스가 있어도 상자같은 형태에 나사가 여기저기 보이는 등 예쁘다는 것과는 엄청나게 거리가 먼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비대칭이면서도 날카로워 보이고, 기능성도 겸비한 케이스를 원했고, 나사가 하나도 겉에서 보이지 않는 케이스를 디자인하였습니다.  나사는 모두 바닥에 위치를 시켰고, 또한 누구나 쉽게 보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컴퓨터 케이스 뚜껑을 쉽게 열 수 있도록 하였으며, 확장슬롯에 카드를 새로 꼽는 작업이 간편한 디자인을 멋지게 해냅니다.  또한 키보드의 컬러와 파워, 냉각팬 등에도 대단한 신경을 썼습니다.  아타리에서 같이 일했넌 로드 홀트(Rod Holt)라는 아날로그 회로 전문가를 고영해서 경량의 파워와 냉각팬을 디자인하였는데, 그의 경량 파워 서플라이와 TV와의 인터페이스를 가능하게 만든 디자인은 애플 II의 경쟁력을 한층 높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애플 II 의 디자인은 정말 파격적인 것이었고, 이렇게 멋있어 보이는 외관역시 애플 II의 대성공에 한 몫하게 됩니다.


from Flickr by Marcin Wichary


이렇게 당대 최고의 천재인 스티브 워즈니액과 스티브 잡스가 각자 자신의 장점과 특기를 최대한 발휘하여 완성한 애플 II 컴퓨터는 1977년 4월 일반에 공개가 되면서, 아래와 같은 새로운 애플의 로고와 함께 전세계가 PC 열풍에 빠져들게 만들게 됩니다.




(... 후속편에 계속)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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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 계신 분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자료가 발표되었습니다.  오라일리사가 1년 반 전에 DRM(Digital Right Management, 디지털 저작권관리)을 자신의 전자책에서 모두 제거한 이후의 판매실적을 보면 2009년, 2008년에 비해 104% 증가하였습니다 (윗 그림).  2007년에서 2008년의 증가율이 50%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대폭향상된 것입니다.  

아직까지 인쇄된 책의 매출액을 따라잡고 있지는 못하지만, 현재 인쇄형태의 책의 판매량은 매년 두자리 수에 가까운 비율로 하강곡선을 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수년 내에 전자책 판매가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 될 것은 확실합니다.  

물론 이런 증가가 DRM 을 제거했기 때문에 아니라, 전자책 판매 자체의 상승세가 영향을 미친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부 출판사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DRM 을 빼고 복제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마치 커다란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했었던 주장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자연스럽게 전자책 컨텐츠를 누구나 얻을 수 있고, 유용하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구매로 이어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컨텐츠의 종류에 따라 위험성이 있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DRM으로 벽을 치고 많은 사람들이 못들어오게 하는 형태나 인쇄해서 팔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존의 선입견은 분명히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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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얀말의 생각

    Tracked from ryudaewan's me2DAY  삭제

    오라일리 전자책 판매 DRM 제거후 크게 증가. 특별히 IT 관련 책은 전자책으로 나오면 정말 좋겠다. 세월 지나면 구식 되어서 종이책이 부담스럽거든.

    2010/02/25 11:36
  2. EsBee의 생각

    Tracked from luneneuf's me2DAY  삭제

    오라일리 전자책 DRM 제거 후 판매 급증 당연한 얘기. 어뷰징 걱정보다는 물건을 잘 팔리게 할 걱정을 먼저. 어뷰징이 너무 무서워서 절대로 어뷰징할 수 없는 물건을 만들고 나면, 아무도 돈 주고 사지 않을 물건이 돼 버립니다.

    2010/02/25 14:25

개인적으로 협업과 소비자 주도형 프로슈머 기획 의도를 멋지게 수행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인텔(Intel)과 아수스(ASUS)의 WePC.com 에서 2010년에 어떤 가전(Consumer Electronics) 기술들이 중요한 트렌드를 만들 것인지를 내놓은 자료가 마음에 들어 여러분들께 소개할까 합니다.  5가지를 꼽았는데, 저는 대부분 동의합니다.

연관글:
원문:


태블릿의 시대가 열린다.

올해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아무래도 태블릿 컴퓨터일 듯 합니다.  태블릿 폼 팩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와있던 개념이지만, 실질적으로 성공가능성이 점쳐진 것은 엉뚱하게도 아마존의 킨들이 전자책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부터 입니다.  여기에 최근 배터리 기술의 발전과 터치 스크린 인터페이스 기술의 발달로 태블릿의 성공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입니다.

이미 HP와 Dell 이 마이크로소프트와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을 발표했고, 보다 저렴한 디스플레이를 앞세운 제품들이 대만의 여러 업체들을 중심으로 2010년 하반기에 선을 보일 예정입니다.  여기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애플의 아이패드(iPad) 태블릿이 될 것이며, 구글의 크롬 운영체제를 장착한 저렴한 태블릿과 기존의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를 탑재한 여러 업체들의 태블릿이 각축을 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태블릿의 사용모델은 이미 이 블로그에서 몇 차례 다룬 바 있으므로 해당 포스트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연관글:

모션 컨트롤러 기술의 대두

2006년 닌텐도 Wii 가 나왔을 때, 모션 센서를 중심으로한 컨트롤러 기술을 비디오 게임을 다시 정의하다시피 했습니다.  의외로 사람들의 선입견과 익숙함을 깬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최근의 경향은 이런 변화에 대해 과거보다 훨씬 잘 적응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더 좋은 그래픽과 속도 싸움에서 얼마나 새로운 스타일의 게임을 할 수 있느냐가 주목받으면서, 마이크로소트에서 추진하고 있는 우리 몸의 모션을 중심으로 한 Project Natal 에 대한 관심도도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2010년 11월 공개될 것으로 알려진 이 프로젝트는 게임을 또 한 차례 업그레이드할 것으로 기대대고 있습니다.  카메라 기반의 모션과 사운드 센서를 이용해서 모든 것을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





소니 역시 현재 모션 컨트롤러 기반 기술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닌텐도는 위모트의 센서 컨트롤에 모션 트래킹이 가능한 웹 캠을 추가하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2010년은 이래저래 모션센서 기술의 전성시대가 될 듯 합니다.


소셜 TV와 3D TV

올해 또 하나의 가장 큰 변화는 TV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특히 소셜 TV와 3D TV가 변화를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데, 야후의 경우 ConnectedTV 플랫폼을 통해 소셜 웹 시대의 주도권을 TV와 함께 가져와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위젯을 활용해서 TV를 이용한 사람들이 쉽게 소셜 커넥션 및 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상당히 많은 하드웨어 파트너들이 제품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귀추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밖에 박시박스(Boxee Box), 팝박스(Popbox), 로쿠(Roku) 등은 웹 비디오를 TV에 옮기는 셋탑 박스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TV와 영상이 인터넷 기술의 접목과 함께 위젯으로 발전하면서 소셜 TV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는 점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위토쿠(Wetoku)와 테레비(Tere.be) 등을 준비하고 있는 젊은 벤처회사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선전을 기대해 봅니다.

아바타를 통해 열풍이 불고 있는 3D TV 역시 올해 가장 이슈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과거와 달리 제작과 컨텐츠, 그리고 제조사까지 같이 3D 시대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 가장 중요한 변화를 끌어낼 것으로 생각됩니다.


차가 똑똑해진다.

최근 도요타(Toyota) 자동차가 커다란 시련을 겪고 있지만,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을 포함해서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차량에 여러가지 정보통신 융합기능을 추가한 스마트 카(Smart Car)들을 전면에 내세울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와 포드 자동차가 같이 내놓은  마이포드 터치 싱크 시스템(MyFord Touch SYNC system)  은 자동차가 인터넷 및 웹과 항상 연결되면서, 음성으로 명령을 받아들이고, 손을 대지 않고도 많은 작업을 할 수 있는 첨단기능들을 구현하였고, 판도라(Pandora)나 트위터와 같은 유명한 웹 기반 서비스들을 통합한 점도 눈에 띕니다.  더 나아가서는 차량이 Wi-Fi 핫 스팟으로 변할수도 있으니 더 이상 자동차가 단순한 탈 것이 아닌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현대와 기아 역시 이와 유사한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는데, 2011년이면 스마트 카를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안드로이드의 전성시대

마지막으로 2009년 아마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탑재한 많은 제품들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스마트 폰은 물론이고 넷북, 태블릿, 그리고 다양한 니치 마켓을 노린 제품들이 많이 나올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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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the World" 를 기억하십니까?  1985년 고인이 된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가 주도하고 퀸시 존스와 마이클 오마시언이 공동 프로듀싱으로 참여한 USA for Africa 라는 당대 최고의 수퍼 그룹이 탄생해서 아프리카를 돕기위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25년이 지난 지금, 이번에는 가수들도 오피셜 레코딩을 했다고 하지만, 아마추어들이 웹 캠으로 직접 녹화를 통해 "We Are the World" 를 크라우드 소싱으로 재현했습니다.  이번에는 최근 지진 참사로 국가적 위기에 빠진 아이티를 구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퀸시 존스가 다시 프로듀싱에 참가해서 진짜 가수들이 녹음하고 iTunes 를 통해 판매를 통한 수익금을 모두 아이티에 기부하는 공식 음악도 있고, 직접 돕기 위해서는 이 노래를 사야겠지만, 저에게는 57명의 아마추어들의 크라우드 소싱 동영상이 더 감동적이고 마음에 와 닿네요.  물론 가수들의 녹음에는 작고한 마이클 잭슨의 과거 녹음분이 편집으로 들어가 있어서 왠지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것도 있습니다.  두 영상 모두 소개합니다.  그리고,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iTunes 에서 음악을 구입하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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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로 3D 영화가 대세로 자리잡은데 이어, 올해에는 본격적으로 3D TV 들이 시장에 나오고 월드컵 등의 중계가 3D로 이루어지면서 본격적인 3D 시대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3D 프린터는 어떨까요?  사실 3D 프린터는 설계도와 재료만 있다면 실제 물체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대량생산 체제에서 벗어난 다품종 소량생산 및 개인 생산체제를 갖출 수 있는 제조 2.0 (Manufacturing 2.0)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기술이기 때문에 그 관심도는 점점 더 높아져가고 있습니다.

이미 블로그를 통해, 그 가능성에 대해 몇 차례 언급을 한 바 있습니다만, 지금까지는 제품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들이나 건축 등을 하기 전에 플라스틱 모델을 만드는 것과 같이 대량생산 전단계에서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 개인이 소유하기에는 지나치게 비싸기 때문입니다.  

연관글:


그래서 제조 2.0 부분에 있어서는 현재까지 다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믿음도 깨질지 모르겠습니다.  Stratasys 라는 회사에서 HP(Hewelett-Packard)와 손을 잡고 HP 브랜드로 3D 프린터를 올해 내에 출시할 예정입니다. 현재 Stratsys 의 uPrint 3-D 라는 모델은 $14,900 달러 정도에 최고 20cm x 15cm x 15cm 정도 크기의 물체를 가공할 수 있습니다만 HP가 대량생산을 하게 되면 가격은 훨씬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아직은 비싸지만, Makerbot의 경우 크기는 작아도 DIY 3D 프린터 제작 키트를 $750 달러 정도에 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1만 달러 아래로 내려오게 되면 문방구나 카페 등과 같은 동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를 인터넷에 연결해서 설계도면 등을 판매하는 앱이나 기존의 인터넷 서비스를 매쉬업하는 제작 프로세스가 등장한다면 제조 2.0 의 시작을 우리가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Makerbot 은 낮은 가격으로 인기가 높지만 대량생산이 어려워서 1년에 최대 1,800대 정도만 생산이 가능해서 보급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HP 가 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서 상용제품을 저렴하게 보급하게 된다면 꿈처럼 생각했던 제조 2.0 의 시대로 진입이 생각보다 빨리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래저래 세상의 혁신속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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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산화가 시작된 3D 프린터

    Tracked from 첨단한방의료연구소  삭제

    저번에 3D프린터에 대해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요. http://blog.naver.com/personajo/50081114015 예상대로 저렴하게 양산화된 제품이 출시되었습니다. 홍보영상을 보니 아직 프린트물이 조잡하지만 곧 개선되겠지요. 가격도 200만원정도입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뉴스입니다. http://me

    2010/02/22 13:27


from Wikipedia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빌 게이츠가 폴 알렌과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설립했던 "TRAF-O-DATA" 라는 벤처회사는 당시 최신 마이크로프로세서 였던 인텔의 8008(후에 8080 을 거쳐, 8088 이 IBM PC에 채택됩니다) CPU를 이용해서 교통상황을 점검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빌 게이츠는 이를 바탕으로 1973년 초에는 미국 하원의회를 위해 일을하기도 합니다.

빌 게이츠는 197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 입학합니다.  하버드 대학에서 빌 게이츠는 현재의 마이크로소프트의 CEO를 맡고 있는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를 만납니다.  하버드 대학에서도 학업보다는 컴퓨터에만 심취했던 빌 게이츠는 폴 알렌과 계속 연락을 취했고, 1974년 여름에는 하니웰(Honeywell)에서 같이 일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빌 게이츠는 고등학교 시절 컴퓨터와 관련한 사업을 하면서도, 하버드 대학에 여유있게 들어갈 정도로 공부도 잘했던 천재였습니다.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벌레처럼 공부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컴퓨터를 향한 그의 사랑과 열정은 학교라는 울타리는 그에게 족쇄처럼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세계 최초의 PC, Altair 8800

세게 최초의 PC로 일컬어지는 Altair 8800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인텔 8008 기반의 Mark-8을 시초로 보기도 합니다)을 탄생시킨 MITS의 창업자인 에드 로버츠(Ed Roberts)와 포레스트 밈스(Forrest M. Mims) 3세는 미국 공군에서 연구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1969년 이들은 로켓을 제작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제작키트를 만들어 판매하려는 목적으로 스탠 케이글(Stan Cagle)과 로버 잴러(Rober Zaller)와 함께 MITS(Micro Instrumentation and Telemetry Systems)를 창업합니다.  MITS의 로켓 제작키트는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러한 키트를 제작하는 사업에 흥미를 잃은 케이글과 밈스는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에드 로버츠 Electronic Array가 전자계산기를 제작할 수 있는 LSI IC들을 발표하자, 이를 이용하여 계산기를 제작하는 키트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를 통해 완성된 제품이 MITS 816 계산기 키트였습니다.  이 키트는 1971년 Popular Electronics의 커버를 장식하며 상당한 성공을 거둡니다.  뒤이어 1973년에는 MITS 1440 계산기가 소개되었고, 점점 발전된 모델을 다른 잡지에도 소개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앞선 포스트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HP에 입사했던 스티브 워즈니액도 틈틈히 스티브 잡스와 아타리의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가 맡았던 역할이 바로 전자계산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공학용 전자계산기를 만드는 기술이 발전해서 PC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MITS는 주로 전자계산기 조립 키트를 만들던 회사였기에, 당시 판매와 홍보의 역할을 동시에 담당했던 Radio Electronics나 Popular Electronics와 같은 잡지사와의 관계가 무척 중요했습니다.  이 두 잡지사는 오늘날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ZD(Ziff-Davis)의 잡지계열에 있었는데 (현재는 손정의의 소프트뱅크가 소유를 하고 있지요?), 1972년에 Polular Electronics로 통합이 됩니다.  Popular Electronics의 편집장 이었던 Les Solomon은 당시로서는 최첨단 CPU 였던 인텔 8080을 MITS가 잘 다룬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완성된 제품(현대적 PC의 개념)을 개발하기를 권유합니다.  그는 박스까지 완전하게 제작된 프로페셔널한 제품 키트를 원했고, MITS는 이 권유를 받아들여서 Altair 8800의 설계 및 제작에 착수합니다.

1976년 있었던 Altair Computer Convention에서 Les Solomon은 Altair라는 이름을 자신의 12세된 딸이 스타트렉 에피소드를 보면서 제안한 이름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당시 스타트렉 에피소드는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이 Altair라는 곳을 향해 가는 것이었는데, 미지의 신세계를 간다는 측면에서의 작명이 된 것이죠 ...  에드 로버츠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큰 고심을 한 부분이 바로 CPU를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인텔의 4004나 8008은 그다지 강력하지 않았고, 그 대안으로 고민한 National Semiconductor의 IMP-8이나 IMP-16은 외부 하드웨어를 요구했으며, 모토롤라의 6800은 아직도 개발 중인 단계였습니다.  그래서, 다소 위험 부담을 안고 인텔의 새로운 8비트 CPU인 8080을 선택합니다.  인텔 8080은 1974년 4월에 출시가 되었는데, 유닛당 $360 달러라는 가격을 책정했지만, 에드 로버츠는 인텔과 성공적인 협상을 통해 $75 달러에 칩을 공급받고 본격적인 컴퓨터 제작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제작된 Altair 8800의 출시는 빌 게이츠를 포함한 전세계의 젊은이들의 마음에 불을 당깁니다.  수백 대 정도의 판매를 생각했지만, 순식간에 제작된 키트와 완성품들이 동이 났습니다.


Altair 8800의 완성품 from Wikipedia


1975년 8월이 되기 전에 이미 5,000대가 넘는 컴퓨터가 팔렸고, MITS는 직원을 20명에서 90명까지 늘려야 했습니다.  1975년 전반기 까지만 하더라도 시장에는 아무런 경쟁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4K 메모리에 이용된 다이너믹 RAM에는 일부 디자인 문제가 있었고, 이로 인해 공급이 늦어지면서 다른 경쟁자들이 진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고 말았습니다.


빌 게이츠, 폴 알렌 하버드 대학을 뛰쳐 나오다.

이 포스트 제일 위에 보이는 사진은 Popular Electronics 1975년 Vol 7, Number 1의 커버입니다.  원래 Popular Electronics 라는 잡지는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취미를 가진 매니아들을 위해 부품도 팔고 조립법을 알려주는 글을 많이 싣습니다.  잡지의 조립키트에는 인텔의 8080 마이크로프로세서와 256바이트 RAM, 라이트와 스위치, 그리고 철제 케이스와 파워 서플라이를 합쳐서 $397 달러에 판매를 하였고, 조립을 완료한 제품의 경우 $498 달러에 판매가 되었습니다.  

가판대에서 이 잡지의 표지를 본 폴 알렌은 언제나 자신들이 이야기하던 자신만의 컴퓨터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잡지를 사서 바로 빌 게이츠에게 달려갑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운명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대학 캠퍼스를 나와서 사업에 뛰어듭니다.

Altair 8800이 신나게 판매가 되고 있는 도중, 에드 로버츠는 시애틀에 있는 한 회사에서 BASIC 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구매할 의사가 없는지를 묻는 편지를 받게 됩니다.  당시 BASIC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던 Ed는 회사에 전화도 해보고, 주소에 찾아도 가보지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 편지는 보스턴에 있었던 빌 게이츠와 폴 알렌에 보낸 것으로 그 때까지 BASIC을 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에드 로버츠가 BASIC과 같은 것에 관심이 있었는지를 알기 원했던 것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사업을 통해 어른들이 어린 학생들의 말보다는 기업체의 공신력이 있는 편지를 더 신뢰하고, 에드 로버츠가 그 편지를 읽어보게 만들기 위해 머리를 썼던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해프닝을 거쳐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은 에드 로버츠와 접촉을 하게 됩니다.  어린 학생들이 당돌하기는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에드 로버츠는 한번 만들어서 가져와 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에드 로버츠가 일단 관심이 있다는 것이 확인이 되자, 빌 게이츠는 폴 알렌과 함께 BASIC 인터프리터를 PDP-10 미니컴퓨터의 8080 시뮬레이터를 이용해서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완성된 프로그램을 종이 테이프에 펀칭을 해서 MITS가 있는 뉴멕시코주의 앨버커키까지 날아간 폴 알렌은 Altair 8800에서 실행을 시켰지만, 화면에 일단 "Altair Basic" 이라는 표시만 남기고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첫번째 작업이 실패했지만, 이 사건은 일단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를 에드 로버츠에게 주는 것에는 성공을 하였고, 지속적인 작업을 통해 프로그램을 완성합니다.  여기에서 바로 역사적인 기업 "Micro-Soft"가 탄생합니다.  BASIC을 시작으로, 포트란 컴파일러와 디스크 운영체제인 MITS-DOS를 개발한 Microsoft는 결국에는 MITS의 품을 떠나 워싱턴 주로 독립을 하면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 나갑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가 BASIC을 그토록 사랑하는데에는 이와 같은 역사가 있습니다.

(후속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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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영혁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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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2/20 14:58
  2. 대형유통업체 '10원 전쟁'과 아이패드vs킨들 현상에 대한 미래 트렌드 예측

    Tracked from Trend Insight  삭제

    #1 대형 유통업체 정책에 대한 협력업체의 반발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을 기반으로 한 생산자 중심의 Market Power는 19C를 거쳐 20C에 접어들면서 고객 니즈의 다양화, 상품 정보 원천에 대한 접근성 향상으로 인해 유통업체가 Market에 이슈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고객에게 가장 근접하는 위치를 가졌으며(경영자의 서비스 역할 인식) 마케팅에 필요한 객관적 통계수치(제품별 판매량, 고객구매유형 분석 등)를 지닌 유통업체에 힘이 실리기 시..

    2010/02/22 00:52

편안하고, 제한이 없고, 독특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분위기와 관계가 창의성을 촉진합니다.  오늘은 2008년 TED 미팅에서 팀 브라운(Tim Brown)의 강의를 소개하고 요약하고자 합니다.


남들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말라

1960~70년대 스탠포드의 디자인 프로그램에는 밥 맥킴(Bob McKim)이라는 창의적인 연구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제자 중에는 이 TED 발표를 한 IDEO의 팀 브라운(Time Brown)의 동료이자 공동창업자인 데이빗 켈리(David Kelley)도 있습니다.   밥은 학생들과 함께 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전달하는 방식으로 뭔가를 더하는 놀이를 하는 것을 즐겨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두려워 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아이디어나 생각, 작품들에 대한 평가를 받는 것이 두려워서 공유를 하거나 알리는 것을 꺼려합니다.  특히, 정제되지 않거나, 좀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즉석에서 생각한 그림이나 생각의 경우 이런 이야기나 그림을 그려서 남에게 보여주려고 하기 보다는 좀더 잘 정리했다가 보여줘야지 ... 하는 마음을 가지기가 쉽습니다.  결과는?  그냥 잊어버리고 넘어가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놀이를 아이들에게 하면 어떨까요?  아이들은 매우 행복하게 즐기면서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중학교, 고등학교로 넘어가면서 점점 부끄러워하고, 넘겨주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자꾸 남의 의견에 민감하게되고, 자신의 창의성과 자유로운 생각을 하는 방법을 잊어버립니다.  이것이 가장 창의성을 구속하는 이유입니다.


친구들과 회사를 만들고, 환경은 가장 편안하게 ...

이런 점을 잘 아는 데이빗이 가장 친한 친구들을 직원들로 고용해서 IDEO 를 설립하자고 했습니다.  얼핏 이해하기 어려운 의견이지만, 사실은 친구들과 놀기가 가장 쉽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신뢰를 가지고 기탄없이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창의성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IDEO 의 스튜디오 환경도 마찬가지 입니다. 누구나 가장 편안하고 긴장되지 않는 환경이 되어야 창의적인 작업을 진행하는데 훨씬 유리합니다.  IDEO 나 Pixar 와 같은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회사의 사무실들이 오두막이나 예쁘게 장식된 동굴과 같은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도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구글의 구글 플렉스나 페이스 북의 사무실들도 이런 형식의 파괴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요 ...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르게 생각하는 연습

아이들은 어른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물건이나 내용을 보더라도 굉장히 다양한 것들을 상상합니다.  새로운 것을 보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무엇인가를 대입시키고 그것으로 인지하는 것은 창의력을 제한합니다.  어찌보면 아이러니지만, 많이 알수록 새로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단순한 박스나 몇 가지 줄, 종이 등만을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가지고 놉니다.  이런저런 것들을 대입시키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냅니다.  어쩌면 우리의 창의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다시 아이 때의 뇌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팀 브라운은 이 강의에서 mescaline 이라는 일종의 마약을 이용한 실험결과도 이야기 합니다.  정상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는 환경에서 더욱 창의성이 증가한다는 것인데요.  이와 관련해서는 유전자 차원에서도 정신증을 가질 가능성이 많은 유전자와 창의성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제가 포스팅한 글도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연관글:

그 밖에도 재미있는 예들이 많이 등장하는 멋진 강의입니다.  특히 아이들이 잘하는 벽돌쌓기와 같은 건축놀이와 같이 실제 여러 물체들을 가지고 사람들의 생각을 모으면서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보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기기들이 결국에는 세상에 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쓰여지게 되는 이야기들은 디자인과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과정이 처음부터 그렇게 멋있거나 화려한 작업이 아닌 아주 작고 볼품없어 보이는 단순한 생각을 바깥으로 노출시키고, 이를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피드백을 받아서 정제하는 과정에서 멋진 새로운 창조물로 발전해가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간도 정해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덧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를 동료들과 이야기하다가 무엇인가를 만들고, 이를 연장하는 것과 같은 돌발적인 상황 및 예외에 대해 여유로워진다면 우리가 훨씬 창조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서비스와 경험을 디자인 하려면?

실제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물건을 디자인하는 방법은 이렇게 무엇인가를 만들어보면서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비스나 경험처럼 만질 수 없는 것들은 어떻게 디자인할까요?  이런 경우에는 역할놀이(role play)를 통해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디자인을 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의 새로운 서비스를 시험하고 디자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에게 실제 역할을 맡기고 이를 수행하면서 가장 좋았던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두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을 디자인할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을 상대로 하는 상호작용을 디자인할 수도 있습니다.  식당에서 주문을 받는 방법도 실제 역할놀이를 통해 디자인을 해보는 것과, 그냥 이렇게 해보라고 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결국 이와 같은 역할놀이 역시 우리가 어렸을 때 많이 수행하는 소꿉놀이의 연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놀면서 창의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노는 것을 이제는 너무 쑥쓰럽고, 당황스럽게 생각하며 왠지 없는 것을 지어내는 것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크게 저항하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학교는 창의력을 죽이고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유치원 시기를 지나고 정규교육 과정에 들어가게 되면, 이렇게 창의적으로 놀면서 무엇인가를 새롭게 창조해가는 능력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제한받는 상황에 내몰립니다.  모든 것이 정해져있고, 이를 벗어나면 야단을 맞고, 주입되는 수많은 지식들만 머릿속에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이런 형태의 교육을 오랫동안 받으면 자연스럽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창의력은 쇠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가 생각해봐야 할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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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뇌리에 박힌 한편의 강의

1972년 스티브 잡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포틀랜드 오레곤에 위치한 리드대학(Reed College) 물리학과에 입학합니다.  그런데, 그는 단 한 학기만 다니고 학교를 그만둡니다.  그것은 자신을 양자로 들이는 조건으로 내세웠던 대학교육을 위해서 양부모들이 모아둔 저축을 입학금과 등록금으로 한 학기 만에 다 썼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 사실을 양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친구들에게 이리저리 빌붙어 살면서 2년간 자신이 원하는 여러 수업을 들으러 다닙니다.  그 중에서 그의 미래에 많은 영향을 미친 강의가 있었으니, 바로 서체 디자인(calligraphy) 입니다.  후에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에서 연설을 할 때에 대학시절 수강한 서체 디자인 강의에서 듣고 느꼈던 모든 것을 10년 뒤 매킨토시에 구현하면서 전자출판 혁명으로 이끌었다고 고백할 정도였으니, 그 학문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 그가 대학에서 중퇴하지 않았다면, 학교에서 지정하거나 졸업에 필요한 강의를 위주로 들었을 것이며, 마음이 끌리는 강의를 듣지 못했을 것이기에 오늘날의 스티브 잡스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처럼 엔지니어라고 하기에는 예술과 아름다움에 대한 커다란 열정을 가진 독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디자인 서체 강의를 도강하면서 서체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어갔으며, 그 서체 속에 숨어있는 역사와 세상의 일부를 몸으로 느꼈습니다.  그가 스탠포드에서 행한 짧은 14분 남짓되는 연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그의 인생의 열정을 전달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꼭 들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한글자막이 없어서 아쉽습니다만, 여력이 되신다면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영문자막이 있는 영상 임베딩합니다.

 


아타리 컴퓨터를 찾아간 기인

1974년 스티브 잡스는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와서 배짱좋게 당시 실리콘 밸리 최고의 성공가도를 달리던 아타리(Atari)의 문을 두들깁니다.  놀란 부쉬넬이 창업한 아타리는 세계 최초의 상업용 게임으로도 유명한 퐁(Pong)의 대성공으로 세계적인 벤처기업으로 성장 중이었습니다.  이 게임에 매료된 스티브 잡스는 무작정 아타리의 직원이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1974년 가을 아타리를 찾아간 스티브 잡스의 모습은 냄새나는 수염투성이에 장발을 한 더러운 히피(hippie)의 모습 그대로 였다고 전해집니다.  회사의 경비원은 무작정 회사를 찾아와 높은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는 스티브 잡스를 보고, 부랑자가 찾아왔다면서 쫓아내려고 했지만, 당시 아타리의 경영진으로 일하고 있었고, 퐁의 게임 디자이너였던 앨런 알콘(Allan Alcorn)은 18세의 스티브 잡스가 HP에서 일했고, 생각보다 기술적으로 해박한 것을 알게 되어 시간 당 $5 달러에 동전을 넣는 당시의 게임기를 고치는 일에 투입할 요량으로 즉석에서 채용을 결정합니다.  

이 때가 1974년 5월로, 스티브 잡스는 잘 나가는 아타리의 40인의 직원 중의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언제나 맨발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다른 직원들의 일에 간섭을 하고 이상한 말만 하고 다니는 스티브 잡스는 회사의 기피인물 1호가 되어 버립니다.  이에 앨런 알콘은 하는 수 없이 거의 아무도 없는 저녁 시간에만 스티브 잡스가 나와서 일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하는 일은 주로 아타리의 엔지니어들이 만들어 놓은 디자인을 약간씩 변형하는 것이었는데, 회로를 일부 추가하거나, 다른 소리를 집어넣거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야간에 아타리라는 회사에서 스티브 잡스와 희희낙낙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괴짜 스티브 워즈니액입니다.  HP의 엔지니어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던 스티브 워즈니액 역시 아타리의 광팬으로, 심지어는 아타리의 퐁 게임을 자기 마음대로 디자인해서 만든 자신만의 퐁 게임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밤마다 스티브 워즈니액을 아타리 본사로 불러들인 스티브 잡스는 그의 실력을 동료들에게도 자랑을 하였습니다.  스티브 워즈니액의 재능을 알아본 앨런 알콘은 그를 아타리에 스카웃하고 싶어하지만, 자신의 꿈인 전자계산기를 HP에서 만드는 일에 만족하고 있었던 스티브 워즈니액은 그 제의를 거절합니다.

그렇지만, 스티브 잡스를 따라 밤마다 아타리를 찾아서 여러가지 일을 같이 (아니 거의 스티브 워즈니액이 도맡아 해결했다고 합니다) 해결하였는데, 이렇게 어려운 일들을 쉽게 해결을 하자 아타리의 창업자인 놀란 부쉬넬까지 스티브 잡스를 주목하게 됩니다.  6개월 정도 아타리에서 일을 하던 스티브 잡스는 대학시절부터 심취해 있던 인도로의 영혼 여행을 떠나기 위해 회사의 수뇌부들에게 자신에게 인도여행을 보내줄 것을 요구합니다.  신참내기 직원의 황당한 요구에 당황한 앨런 알콘과 놀란 부쉬넬은 때마침 독일에서 터진 아타리의 게임기 문제를 독일에서 해결한다면 인도로의 여행을 허락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바로 짐을 싸서 독일로 날아가서 단 2시간 만에 문제를 해결하고 리드 대학을 다닐 때부터 친구였고, 동시에 향후 애플에서 같이 일을 하게 되는 댄 콧케(Dan Kottke)와 함께 6개월간의 인도 여행을 시작합니다.  다행히 독일에서의 문제는 앨런 알콘이 예상했던 것과 동일했고, 여행을 떠나기 전 앨런에게 고치는 법을 배웠던 스티브 잡스는 별다른 어려움없이 수리를 마칩니다.

스티브 잡스의 인도여행은 그의 기대대로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너무나 가난하고 불행하게 사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최소한의 물질이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 때부터 세상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부가 필요하다는 결심을 한 스티브 잡스는 아타리로 복직을 하는데, 그 때에는 과거의 히피 스타일을 버리고 깨끗하게 삭발과 면도를 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앨런 알콘은 그를 다시 과거와 같이 밤에 일을 시키면서 동시에 친한 친구이자 스티브 잡스의 집에서 같이 살던 댄 콧케에게도 일을 맡깁니다.  


전설의 벽돌깨기 게임의 탄생

이 시기에 아타리는 회사의 여러 게임 프로젝트들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 때 아타리는 원가절감과 함께 벽돌깨기(Breakout) 게임의 디자인과 프로토타입에 대한 사내 아이디어를 수집하면서 하나의 TTL 칩(Transistor-Transistor Logic, 당시 아케이드 게임 대부분에 이용되던 칩)을 줄이는 아이디어에 돈을 겁니다.  보통 하나의 게임에 130~170개 정도의 칩이 들어갔는데, 아타리의 목표는 70~100개 정도로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지원을 해서 사내계약을 따내고, 벽돌깨기 게임의 스펙을 받게 됩니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믿는 구석인 스티브 워즈니액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4일이었고, 아타리에서 약속받은 금액은 50개의 칩 이하로 설계하면 $700 달러, 40개 이하로 만들면 $1000 달러 였지만 스티브 워즈니액은 $700 달러의 반을 받고 보너스는 없는 것으로 합의를 합니다.  그런데, 훗날 스티브 워즈니액의 이야기에 따르면 원래 아타리에서는 4일로 시간을 제한한 적이 없었는데, 스티브 잡스가 임의로 설정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스티브 워즈니액은 4일 밤을 새면서 손으로 게임보드의 프로토타입을 거의 완성합니다.  워즈니액은 TTL 칩의 수를 46개까지 줄이는데 성공을 하였고, 이들의 성과에 감명을 받은 아타리의 경영진들은 스티브 잡스에게 $5,000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하였고,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액에게 원래 약속한 $350 달러만을 주고 오레곤으로 몇 달간의 휴가를 떠납니다.

그런데, 스티브 워즈니액의 디자인은 워낙 컴팩트하고 손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당시의 기계와 아타리의 엔지니어들로서는 양산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만들다시피한 이 게임은 워즈니액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많이 수정해서 1976년에야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 게임은 게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히트작 중의 하나로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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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은 윈도폰 7의 발표로 트위터가 온통 떠들썩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MS가 이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애플과 구글의 판으로 짜여진 차세대 리더 싸움에서 완전히 탈락할 것으로 생각했기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예상한대로 Zune 을 기초로 한 새판 짜기와 XBox 라이브의 결합이라는 최상의 수를 실제로 생각보다 단기간에 구현해서 가능성을 보여주는데 성공한 성공적인 발표회였다는 생각입니다.  

이미 윈도폰 7 자체에 대한 리뷰는 다른 블로거 분들이 많이 해 주셨고, 앞으로도 해주실 것이라 생각하고 저는 약간 쓴소리 관점에서 포지션을 잡고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윈도7 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은 칫솔 님의 리뷰도 괜찮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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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연말 출시, 그 때까지 시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MWC의 발표에 의하면 윈도폰 7은 올 연말 연휴기간 시즌을 대목으로 나오게 될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때까지 소비자들이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더 나아가서는 크롬 운영체제가 장착된 기기들로 옮겨가지 않고 기다려줄까? 입니다.

아마도 올해 여름에는 아이폰 4.0 운영체제와 함께 4G가 선을 보일 가능성이 높고, 안드로이드는 정말 무서운 속도로 개선과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세계 수많은 업체들이 많은 수의 핸드셋을 내놓으면서 대세 장악을 할 것으로 보이는데, 시장 상황이 윈도폰 7을 기다려 줄 수 있을까요?  

일단 다른 쪽으로 몰려가는 대세를 막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가 급하게 발표한 것이라는 느낌.  다시 말해 우리에게 연말까지 말미를 준다면 잘해 보겠다는 읍소로 비쳐지는 것은 저만의 느낌은 아닐 것입니다.  일단 시장의 관심을 끌고, 긍정적 평가를 끌어내는 데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뒤에 언급할 다른 여러 문제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결국 이번 혁신은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조력자들의 신뢰가 깨지는 것이 문제다.

어제 MS 직원들과도 일부 트위터로 말씀을 드렸지만, MS의 진정한 위기는 그동안 워낙 윈도 모바일 시리즈가 죽을 쑨 것도 하나의 이유로 들 수 있으나 MS를 지원하는 조력자들에게 자신의 목줄기를 죄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큰 이유입니다.

이미 우리는 IE 끼워팔기와 액티브X 등을 통해서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되었을 때 MS가 얼마나 위험한 일들을 개발자들과 소비자들에게 강요할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껴왔습니다.  이제는 학습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형태의 시도를 다시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단순히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생태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조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MS의 운영체제로 작업을 해온 많은 제작사들이 MS에게 지불하는 비용뿐만 아니라 시시때대로 들어오는 많은 간섭, 그리고 그들에게 매여서 빼도박도 못하는 난처한 신세를 겪는 것에 대단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윈도폰 7의 경우 개발자들에게 실버라이트 + XNA 를 통한 개발방식을 권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실버라이트가 운영체제 코어에 자리잡으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동안 오피스 2010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RIA(Rich Internet Application) 아키텍처의 핵심엔진으로 만들어 온 것을 감안할 때 실버라이트를 빼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표준화된 프로세스와 개방전략을 펼치는 HTML5 식 접근에 비해, 어찌 되었든 다른 플랫폼에서 MS의 실버라이트를 깔고 이에 대한 지배를 받는 구조를 이미 커다란 상처와 경험이 있는 개발자나 제조사들이 받아들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더 많은 고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실버라이트가 플래쉬처럼 사실 상의 웹 환경에서의 RIA 표준처럼 많이 쓰여서 레거시를 많이 깔아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그보다도 불리한 상황인데 자칫 잘못하면 이번 윈도폰 7의 발표로 실버라이트를 더욱 강력하게 미는 것이 악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반드시 인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소프트웨어 판매회사, 시대가 바뀌어도 그렇게 할건가?

최근의 웹 2.0 을 중심으로 한 개방전략은 애플의 철학조차 상당부분 흔들어 놓았습니다.  특히 애플의 성공은 수많은 외부 개발자들 및 외부의 조력자들이 애플을 도우면 같이 잘 살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개발에 들어가는 리소스도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 않고, 아직도 어느 정도 관리는 하지만 철저히 Outside-In 이 촉진되는 전략을 펼친 것입니다.

안드로이드는 더 합니다.  자유도도 높고, 동시에 이를 따르면 거의 추가적인 부담이 들지 않으면서도 자신들 나름대로의 특화도 일부 가능합니다.  강력한 제조기반과 특성화 서비스를 추가할 수 있는 제조사라면 자신들만의 특화폰도 내놓을 수 있습니다.  개발자들은 자바를 이용한 공짜 개발도구로 마음놓고 개발이 가능합니다.  한마디로 부담이 없습니다.

윈도폰 7은 어떨까요?  MS는 전통적으로 아주 비싼 개발도구를 판매합니다.  개발정보 구독도 비쌉니다.  한 마디로 소프트웨어 힘들게 만들었으니 그만큼의 댓가(그 이상일지도 ...)를 지불하라는 행태를 취합니다.  물론 거의 100%를 장악한 PC 시장에서는 이런 접근방법이 먹힐수도 있습니다.  울며 겨자먹기로 안하면 돈을 벌지 못하니까요 ...  현재의 휴대폰 시장에서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이 시장에서는 MS가 현재 뒤쳐져서 쫓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과감한 비즈니스 모델과 보다 조력자들이 편하게 도와줄 수 있는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쨌든 판은 재미있게 되었다.

이러한 가장 기초적인 우려사항들에 대한 해소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번의 발표는 UI/UX에 대한 것에 집중되었고, 사업전략과 당근 및 신뢰회복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차후에 이야기할 것이라고 하니 좀더 기대를 해봐야 될 것 같습니다.  또한, Zune/XBox 통합 및 PC 기반에서의 탈출이라는 도박적인 시도가 일단은 성공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은 확실합니다.  이제는 누가 더 조력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의 싸움입니다.  

과거 PC 시대의 영화는 잊으십시오.  이제는 15만개가 넘은 앱들을 가지고 거대한 자산가가 되어버린 애플과 개방성과 수많은 개발자 및 제조사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 그리고 막강한 클라우드 서비스로 무장한 구글이라는 경쟁자들은 이미 많이 앞서가고 있습니다.  도전자라면 도전자의 기백과 혁신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시대의 철학이 변하고 있습니다.  투명함과 공유와 협업 중심의 경제가 되어가고 있는데, 이는 일방적인 주도가 아니라 소비자들의 생태계(consumer ecosystem)를 어떻게 구축하고 잘 관리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내부의 자원을 외부로 끌어내서, 외부에 있는 사람들이 내부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사회적 가치를 많이 만들어내는 "Inside-Out" 전략과, 외부에 있는 자원들이 내부의 생태계에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자신들의 가치를 증폭시키도록 도와주는 "Outside-In" 전략을 잘 쓰지 못하는 기업들이 살아남기 힘든 시대입니다.  MS는 과거의 영화와 관련된 기억을 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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