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포스팅이 여러 사정으로 늦어졌다. 기존의 시리즈 글을 올리기보다 새해에 생각한 조금은 거시적인 글을 올리고자 한다. 참고로 이 글은 <청년의사> 신년호에도 실린 글이다.

2016년 새로운 해가 밝았다. 필자의 올해 소망은 조금은 사회적인 것이 되었다. 보통은 개인적인 소망을 가지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올해에는 그러기가 어려웠다. 그만큼 올해가 역사의 발전단계에서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우리 사회 전반의 변화에서 위기감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과거 역사를 간단히 생각해보자. 농경시대에서 산업시대로 넘어오면서 수 많은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의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사회적 합의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이런 변화와 사회적 합의는 전 세계적으로 다소 간의 시간적인 차이는 있었지만, 결국 전체적으로 비슷비슷한 궤적을 따라갔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우리들이 현재 살고 있는 산업사회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수준의 또 다른 시대로의 전환이 눈앞에 왔다는 느낌이다. 인터넷이 디지털 경제의 도입을 가속화시켰고, 사물인터넷과 무인자동차, 로봇,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등은 디지털 경제를 기존의 산업경제와 연결시키면서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하이브리드 경제체계로의 편입을 이끌고 있다. 이미 일부 산업들은 선행적으로 크게 변했고, 이제 그 속도에 가속이 붙으려고 한다. 


현대 산업사회를 이끌어온 가치관이나 기본 가정들도 깨지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이야기가 "생산성"이 아닌가 싶다. 생산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정말 다양한 연구와 방법론이 나왔고, 기업에서도 어떻게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무수한 노력을 기울여온 것이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좌우 이데올로기의 분화도 기업의 이윤동기를 최대한 보호하는 시장의 기능을 극대화하려는 경향과 생산성을 위해 희생되는 수많은 노동자들에 대한 권익보호와 인간소외 현상에 대한 반발에 의해 태동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생산성에 대한 집착이 오늘날의 풍요로움을 가져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보다 적은 사람들이 보다 적은 자원을 가지고, 더 많은 산출량을 만들어 냈기에 여력이라는 것이 생겼으며 우리는 인류역사의 과거 어느 때보다 풍성한 물질적인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렇지만, 생산성을 극한으로 추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생산성의 증가가 개인의 일자리를 필요 없게 만들고, 자본의 논리에 따라서 같은 규모의 기업의 일자리는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생산성의 증가만큼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면, 기업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강제적인 재배치가 없고 시장에 의존하는 이상 총량적으로 보았을 때 필요로 하는 노동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성장전략을 선택해서 생산성과 시장과 경제가 확대되는 게임의 룰에 의해 과소비를 해도 될 정도로 풍요로운 삶을 유지하면서도 일자리는 확대되었던 평화로운 수십 년을 보냈다. 


그런데, 최근 이런 평화체제가 붕괴될 조짐이 명확해지고 있다. 양극화라는 괴물은 바로 그 체제의 붕괴를 가져오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생산성에 대한 집착보다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경쟁을 중심으로 하는 패러다임과 가치관 및 철학을 바꾸지 않고서는, 어떠한 정책을 들이밀더라도 그것은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다. 


이것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다. 수많은 상품의 풍요로움 속에서 생산된 물품들을 탐욕스럽게 가져갈 수 있었던 기회를 제공하는 "수퍼마켓 경제" 속에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단련되고 빠져서 살았다. 결국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내용은 임노동을 기본으로 생각했던 경제시스템과 원칙에서 자동화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하는 체제로 전환되었다는 가정에서 다시 생각해야 하며, 이로 인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소외계층에 대한 대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영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자동화 세금이나 핀란드를 시작으로 도입되고 있는 기본소득제, 미국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연구되고 있는 공유경제나 협력적 소비와 관련한 실증적 데이터 연구 등은 이런 사회적 담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실험에 나서는 것으로 봐도 될 것이다. 


이제 앞서 나가는 국가들은 사회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완전히 달라진 세상에 대한 체계를 하나 둘 시험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사회적 담론을 꺼내는 것조차 아직 어려운 느낌이다. 올해에는 최소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에 대한 기초적인 담론이라도 광범위하게 이야기하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램이다. 과연 작금의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적 상황에서 이렇게 패러다임 전환적인 시대를 차질 없이 준비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다. 개인의 소망보다 우리 사회에 대한 걱정으로 시작하는 한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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