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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싹튼 소셜 웹 서비스들


1999년 인터넷 세계에 또 다른 커다란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소셜 웹이 대한민국에서 동이 트려고 하고 있었다. 한 때 대한민국을 동창찾기의 광풍에 몰아넣었던 아이러브 스쿨은 학연을 중심으로 과거에 잊혀졌던 친구들을 모은다는 컨셉으로 1999년 10월에 시작한 일종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다. 이후 소셜 웹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페이스북 역시 하버드 대학의 동창들을 모으는 것에서 시작했고, 친구의 친구를 부른다는 기본적인 내용은 아직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아이러브스쿨은 서비스가 시작되자마자 회원이 1만명이 되더니, 2000년에는 하루 5만명에 이르는 신규 가입자가 늘어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면서 총 회원이 천만 명에 이르는 대성공을 하였으며, 2001년에는 야후에서 거액의 인수제안을 받을 정도로 국민서비스가 되었지만, 지속성이나 재미를 주는 형태로 서비스를 발전시키지 못하면서 초기의 성공을 이어가지 못하고 뒤이어 나온 싸이월드라는 개인 중심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었고, 현재는 과거의 성공은 추억으로만 남은 수준의 서비스가 되어 버렸다.


싸이월드는 1998년, 서울 홍릉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의 이동형, 형용준 등 석박사과정 6명이 결성한 창업동아리 EBIZ클럽에서 창업의 싹이 텄다. 1999년 창업 당시에는 클럽 서비스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나 프리챌, 아이러브스쿨, 다음 카페 등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시기를 지나게 된다. 2000년에는 개인 PIMS 등을 포함한 커뮤니티 포털 형식을 도입했지만 이 역시도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였다. 그러다가 2001년 미니홈피 프로젝트를 통해서 기존의 클럽중심 서비스가 개인 홈페이지 서비스로 변화하면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 이후 미니미, 미니룸, 도토리와 같은 현재의 싸이월드 서비스들이 줄줄이 시작되고, 비즈니스 모델까지 갖추게 되면서 아이러브 스쿨에 이은 성공적인 서비스가 되었다. 싸이월드는 일촌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관계지향 서비스로서의 소셜 웹을 처음으로 상용화한 곳이며, 도토리라는 개념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까지 열게 되었는데, 이후 전세계 글로벌 서비스들이 싸이월드의 여러가지 모델 들을 벤치마킹 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친 서비스이다. 싸이월드는 아이러브스쿨의 서비스에 불만족한 사용자들과 당시 최대의 경쟁자였던 프리챌의 미숙한 유료화 선언 및 회원관리에 따른 이탈자들을 흡수하는 행운까지 겹치면서 최고의 소셜 웹 서비스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고, 2004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이후 페이스북 등의 글로벌 소셜 웹 서비스와의 경쟁에서 조금씩 밀리기 시작하면서 SK커뮤니케이션스의 품을 떠나 다시 독립된 벤처로 분사되는 것으로 결정되는 등 마이스페이스와 유사한 궤적을 걷고 있다.



마이스페이스의 탄생 


마이스페이스에 앞서서 미국에서 처음으로 소셜 웹 서비스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프렌드스터(Friendster)이다. 조나단 아브람스(Jonathan Abrams)와 크리스 엠마뉴얼(Cris Emmanuel)인 2002년 서비스를 시작하고, 2003년에 KPCB 등의 자금을 지원받아 설립한 이 회사는 새로운 사람들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로 서비스를 기획하고 시작하였다. 사람들이 자신의 프로파일을 올리면, 이를 브라우즈 하거나 찾아서 연결할 수 있게 하는데, 그 중에서도 친구의 친구를 연결하는 방식을 이용하면서 친구 네트워크가 급속도로 성장하도록 하는 모델이 잘 먹혀들었다. 2003년 3월 실제 서비스가 시작되자 몇 달만에 3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가입을 하면서 친구 네트워크 전파의 위력을 보여주었는데, 이 때 타임, 에스콰이어 등의 유수 잡지와 US 위클리, 토크쇼 등에 소개가 되면서 커다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 서비스를 유심히 지켜보던 구글은 2003년 프렌드스터 경영진에게 3억 달러의 인수제안을 하지만 프렌드스터의 경영진들은 이 제안을 거부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프렌드스터는 마이스페이스가 등장하면서 미국 시장에서는 경쟁에서 밀리면서 급격하게 퇴조를 하게 되는데, 주로 아시아 시장에 주력하면서 결국 2009년 12월 말레이지아 회사인 MOL 에 인수합병되었다. 현재는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한 소셜 웹 서비스 비즈니스를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2003년 8월에는 마이스페이스(MySpace)가 첫 선을 보였다. 이 프로젝트는 eUniverse 라는 기존의 회사에서 프렌드스터의 서비스를 써보던 사람들에 의해서 기획이 되었는데, eUniverse 창업자이자 CEO인 브래드 그린스펀(Brad Greenspan)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크리스 디울프(Chris DeWolfe), 톰 앤더슨(Tom Anderson), 조시 버만(Josh Berman) 등이 자회사로 설립한 뒤에 eUniverse 의 프로그래머들과 자원들을 활용해서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최초의 마이스페이스 사용자들은 대부분 eUniverse 의 직원들이었다. 직원들이 최초의 씨앗이 되어, 자신들의 친구들을 불러오고, 친구의 친구를 불러오는 방식으로 시작한 서비스는 곧이어 eUniverse 가 가진 2천 만명에 이르는 자사의 서비스 사용자들과 이메일 마케팅을 이용해서 적극적으로 서비스를 프로모션한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프렌드스터를 따돌리고 미국 최대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로 등극하는데 성공했다. 



뉴스코퍼레이션, 마이스페이스를 합병 


마이스페이스는 특히 인디 음악가들이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친구들 사이에 음악을 돌려듣는 서비스 크게 인기를 끌면서 확산속도가 커졌다. 기존의 냅스터 등의 서비스가 음반저작권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데 비해, 마이스페이스는 음악 저작권을 가진 가수들이나 음반제작사, 그리고 매니지먼트 회사 등에서 자발적으로 팬들을 늘리기 위해서 음악과 뮤직비디오 등을 마이스페이스 플러그-인에 결합시켜 배포하는 모델을 이용했기 때문에 이들과 공생과 상호협조 관계가 만들어지면서 음악가들에게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될 서비스가 되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2005년, 전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인수합병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디어의 황제 루퍼트 머독(Rupert Mordoch)이 이끄는 뉴스코퍼레이션이 마이스페이스와 eUniverse를 5억 8천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액을 들여서 인수한 것이다. 


마이스페이스의 M&A 스토리는 당시 협상을 담당했던 톰 앤더슨이 구글+에 상세한 이야기를 해서 잘 알려져 있다. 2006년 마이스페이스의 M&A를 원래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곳은 마이크로소프트였다고 한다. 상대편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담당자는 현재는 구글로 넘어와서 구글+를 지휘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젊은 리더로서 명성을 날리던 빅 군도트라(Vic Gundotra)였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상이 끝나고, 이제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톰 앤더슨은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바로 구글의 투자자이자 가장 중요한 이사회 멤버 중의 하나이고, 최고의 벤처 캐피탈리스트로 불리는 KPCB의 존 도어(John Doerr)였다. 그에게 마이스페이스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상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를 하자마자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구글은 헬리콥터를 띄워서 뉴스코퍼레이션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뉴스코퍼레이션에게 마이스페이스를 인수하고 서비스를 하면 구글이 실적에 따라 9억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의 광고를 줄 수 있다는 제안을 한다. 워낙 커다란 베팅이었기에 뉴스코퍼레이션은 이 계약을 받아들이고, 마이스페이스에게 거액의  M&A를 제안할 수 있게 되었다. 

2003년 첫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2005년 1월 마이스페이스는 월 방문자 1,600만 명에 이르렀고, 뉴스코퍼레이션이 인수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2006년에는 월방문자 6,000만 명을 돌파하였다. 그러나, 마이스페이스는 더욱 뻣어나가지 못하고 정체되면서 페이스북의 급성장에 덜미를 잡히게 되고, 결국 최근에는 음악과 관련한 서비스만 강화하는 반쪽 서비스 업체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마이스페이스의 쇠락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마이스페이스를 합병한 뉴스코퍼레이션이 상장회사였다는 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상장회사는 3개월에 한번 실적보고를 하고, 이것이 회사의 주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데, 이런 이유로 루퍼트 머독은 마이스페이스가 제대로된 시스템 확장이나 준비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수익모델에 대한 지나친 압박을 가하게 되었다. 수익을 위해 여기저기에 광고를 도배하고, 사용자들이 광고를 보지 않으면 제대로 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는 상황들이 연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마이스페이스에 실망하게 되었으며, 뒤따라 나온 페이스북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났다. 결정적으로 2006년 8월에 있었던 구글과의 초대형 계약은 이들에게 결정적인 독이 되어 돌아온다. 그 계약자체는 마이스페이스 입장에서 엄청난 매출을 기록한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구글에게 돈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검색 페이지뷰를 기록해야만 하였다. 이 조건을 지키기위해 마이스페이스는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마는데, 바로 사용자들을 속여서 검색 페이지뷰를 늘리는 시도를 한 것이다. 사용자들의 경험은 뒷전으로 하고 구글이 제시한 페이지뷰를 맞추기 위한 편법적인 행태가 계속되는데, 예를 들어 팝업광고가 음악을 듣는 동안 플레이리스트를 가로막아서 이를 클릭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과 같은 사용자들의 불편을 가중시키되 페이지뷰만 늘리는 등의 시도를 하였다. 사용자들의 경험을 뒷전으로 하고, 비즈니스와 돈만 밝히는 시도를 하면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실패를 경험하는 사례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음악산업이 결국에는 디지털화를 빨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만 고집하다가 망하게 되어버린 회사들 역시 자신들의 돈벌이만 생각하고, 사용자들이 느끼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배려를 하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 되었다. 


톰 앤더슨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마이스페이스에 제시했던 계약은 비록 액수는 그보다 작았지만 조건이 훨씬 유연하고 마이스페이스가 많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었기에, 마이크로소프트와 계약을 했다면 마이스페이스의 미래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후의 운명들이다. 결국 이 계약이 성사가 되지 않으면서 빅 군도트라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서 1년 뒤에 구글에 합류를 했는데, 그의 손에서 크롬과 구글+ 라는 구글의 검색 이후 최고의 프로젝트 들이 탄생했다. 구글은 엄청난 인재를 얻게 되었고, 톰 앤더슨은 빅 군도트라와 함께 구글+ 를 지원하는 우군이 되었다. 

톰 앤더슨이 존 도어를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첫 만남에 단 한 시간동안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계약의 물고가 바뀌었던 것이다. 만약 마이크로소프트와 마이스페이스가 계약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이후 페이스북이 투자를 받으려고 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을 것이고, 반대로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이기기 위해서 과감한 베팅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지고 있는 페이스북의 지분은 구글의 차지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고, 페이스북과 구글이 연합을 하는 엄청난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마이스페이스의 상황도 현재와는 달랐을 것이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하는데, 역사에 있어서도 한 순간의 거래가 당장의 판도를 바꾸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만, 길게 보았을 때에는 반대의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은 듯하다.


무엇이 마이스페이스와 페이스북의 운명을 가른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을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많은 지적을 하는 것은 바로 개방형 혁신과 서비스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서드파티(third party)’로 불리는 외부의 참여자들에 대해 마이스페이스는 자신의 서비스를 개방하지 않았다. 유튜브를 비롯하여 다양한 콘텐츠 제공업체들이 마이스페이스와의 연계를 원했지만, 이들을 받아들이기는 커녕 이들의 콘텐츠에 타격을 입힐 수있는 콘텐츠와 서비스를 직접 개발하면서 협력할 수 없는 구도를 만들었다. 마이스페이스는 콘텐츠 서비스 업체들이 마이스페이스의 유통 네트워크를 타고 커지고 나면, 이들에게 자신이 끌려가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시각은 전통적인 미디어 재벌이었던 뉴스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가 흔히 가질 수 있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에 비해, 페이스북은 개방과 협력 모델을 이용하였다. 누구나 페이스북에 적합한 응용 프로그램, 서비스나 콘텐츠 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였고, 수익이 나오면 이를 개발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수익의 공유를 실현하였다. 그 결과, 많은 협력업체들이 개발한 서비스들과 애플리케이션은 페이스북의 가치를 올려주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페이스북이 플랫폼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틀을 다졌다. 또한 외부업체가 음악이나 책과 같은 제품을 판매하거나 관련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있는 모델도 개발하였는데, 이를 통해 역시 수익을 공유하고, 광고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진화를 시키는데 성공했다. 


마이스페이스의 실패와 페이스북의 성공은, 과거와 같이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자신만의 세계에서 외부와의 협업보다는 돈만 달라고하는 회사는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네트워크의 세상에서 모든 서비스를 혼자서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며, 소비자 중심의 사고가 아니다. 결국 페이스북의 성공에서 새로운 시대의 모델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뒤늦게 페이스북을 따라하게 되지만, 이미 너무 큰 격차로 벌어진 이후라서 과거와 같은 영화는 찾을 수 없었다. 



참고자료

Tom Anderson 의 Google+ 프로필 페이지



P.S. 이 시리즈는 메디치미디어의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라는 책으로 출간이 되었습니다. 전체 내용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책을 구매하셔서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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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컨셉
미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세계라고 합니다. 너무 메마르고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는 세계 각국의 이야기, 그리고 의학과 과학을 포함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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