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이 등장하기 전 크게 인기를 끌었던 고퍼(Gopher) from Wikipedia.org



월드와이드웹의 시대로의 전환은 인터넷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했다. 월드와이드웹 이전의 인터넷은 전화를 중심으로 하는 통신망의 연장선에서 고려가 되었던 것이고, 실제로 인터넷 위에서 동작하는 대부분의 애플리케이션들은 이메일이나 파일을 공유하는 서비스, 서버에 원격접속을 통해서 자원을 공유하는 것과 같이 기본적으로 통신과 공유라는 패러다임에서 진행이 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에 비해서 월드와이드웹을 처음으로 탄생시킨 물리학자 그룹들의 관심사는 과학논문에 있었다. 특히 SLAC에서 가지고 있었던 30만 개가 넘는 과학문서들은 거대한 콘텐츠 서버로서 일종의 킬러 서비스가 되었고, 여기에 매료된 전 세계의 물리학자들은 이를 쉽게 브라우징하고 접근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 기술을 목말라 하고 있었다. 여기에 딱 들어맞는 기술이 바로 웹이었던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웹은 통신과 컴퓨터 네트워크 중심의 패러다임을 콘텐츠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였다.


처음 웹이 발표되었을 때, 물리학자들은 열광적이었지만 의외로 일반인들에게는 그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SLAC이 가지고 있는 물리학 중심의 과학문서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시에는 정보를 메뉴방식으로 구성해서 쉽게 정보를 찾아가는 고퍼(Gopher)라는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고퍼와 상당부분 장점이 겹치는 웹은 느린 인터넷 환경에서 그다지 커다란 비교우위를 보여주지 못했기 떄문에 그렇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였다.


고퍼는 정보를 주제별, 종류별로 구분하여 메뉴로 구성해서 인터넷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라도 제공되는 메뉴만 따라가면 쉽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고퍼 서버들 끼리는 서로가 연결되어 있어서, 여러 개의 고퍼 서버를 옮겨다니면서 쉽게 정보를 검색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 기존의 인터넷에서 많이 이용되던 원격접속을 위한 텔넷(telnet) 서비스나 파일전송(ftp), 뉴스(Usenet) 서비스 등도 고퍼 서비스 내에서 간단히 접근할 수 있었기에 많은 인기를 끌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고퍼는 웹과 비슷한 시기인 1991년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교에서 개발되었는데,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스포츠 팀의 마스코트인 땅다람쥐이다. 고퍼를 사용하면서, 베로니카(veronica)나 저그헤드(jughead)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면 수 많은 고퍼 메뉴 중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메뉴만을 탐색하는 것도 가능했다.


인터넷의 패러다임이 콘텐츠와 정보를 중심으로 하는 패러다임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명확한 시점에 거의 동시에 유럽과 미국에서 각각 출발한 웹과 고퍼는 미래의 인터넷의 인프라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라이벌이었다. 1993년까지는 고퍼가 일방적으로 앞서는 분위기였다. 특히 저속의 네트워크는 웹이 그림 등을 포괄하는 풍부한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하면서도 당시로서는 적절하게 텍스트를 기반으로 빠르게 반응하는 고퍼의 손을 들어주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였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1993년 3월에 있었던 IETF의 공식 미팅이었다. IETF에서는 인터넷과 관련한 여러 기술들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지고, 여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각각의 방에 찾아가서 듣는 방식으로 미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각 기술의 인기도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떠오르는 기술로 선정된 고퍼와 웹은 이 때 동시에 다른 방에서 세션을 열었는데, 고퍼를 설명하는 방에는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앉거나 서서 참여를 하였고, 그에 비해 월드와이드웹 세션이 열린 방에는 거의 사람들이 오지 않아서 매우 한산하였다고 한다. 팀 버너스-리가 외롭게 웹 기술이 고퍼보다 우월하다고 역설했지만,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너무나 적었다.


웹이 보급이 늦은 것에는 웹이 구축된 환경이 일반적인 환경이 아니었다는 것도 한 몫하였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웹 기술은 스티브 잡스가 만든 넥스트(NeXT) 컴퓨터의 뛰어난 운영체제인 넥스트스텝(NeXT Step)이었기에 가능한 첨단 하이퍼텍스트 기능에 의존하였는데, 넥스트 컴퓨터나 넥스트스텝 운영체제는 그렇게 상업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웹 기술이 쉽게 전파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결국 더 많은 운영체제를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개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이와 같이 웹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유럽에서 탄생한 웹과 미국에서 탄생한 고퍼 간의 콘텐츠 중심의 인터넷 패러다임 주도권 싸움의 판세를 역전시키는 한 방은 의외로 다시 미국의 NCSA에서 터뜨리게 되는데 ...



(다음 편에 계속 ...)



참고자료:


Gopher 위키피디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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